사실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다수 (심지어 저를 포함하여) 는 우리나라 유림의 역사가 영남을 중심으로 그리고 기호학파라 불리는 서울경기 충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호남은 별다른 인물이나 학자가 없는 듯이 생각을 합니다

또한 안동으로 대변되는 양반의 이미지를 영남이 갖고 있는데 실은 이것이 군사정권의 상징조작이라는 것입니다
좀 거칠기는 하지만 나름 근거를 찾아서 쓴글이라 네이버에서 퍼왔습니다


   

건국초 부터 60년대까지 전라도는 우파성향 경상도는 좌파성향이 강한지역이었읍니다.

  건국세력인 한민당은 전라도가 본거지이며
. 경상도는 남노당이 주도하는 대구폭동등 좌파성향 폭동이 많았던 지역입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더 많았다는 겁니다.

  대구폭동은 건국후 최초로 발생한 좌파성향폭동으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매우 큰 사건으로 계엄령 선포되고 이후에도 영남지역은 경찰서 습격등 치안이 불안한 지역이었으며 다른지역 반란의 도화선이 됩니다.

  그런데 역사는 축소하거나 대충 넘어가지요 이건 무얼 의미할까요

  그런데 박정희 이후 경상도 독점 이후 민주주의 자본주의 수호자인양 얼굴이 싹 바뀝니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엉뚱하게 전라도에 좌파니 빨갱이니 하는 논조로 왜곡합니다. 공부좀 하는 영남인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라도의 주장은 독재하지 말자는 것, 민주화 하자는 운동, 경상도만 독점하지 말자는 주장등 좌파하고는 거리가 먼 것들입니다.

  

역사적인 악평

  역사적인 기록이라며 전라도 악담이 많이 나오죠, 이거 죄다 발췌하면 악담없는 도가 없습니다.
 경상도 더 심한 악평 많습니다..(경상도 위주로 역사 악담 모으면 얼굴 못들고 다닙니다).
상대적으로 전라도에 좋은평이 많습니다.
호남이 없으면 조선도 없다, 충절 예의 지향이다 등등 그리고 각 지역마다 악담이 계속 등장하는 것은 왕조국가 특성상 견제에 의한 통치방법입니다.

  

전주와 나주는 과거 작은 한양으로 불리웠으며 가장 번화 하였습니다....한양 다음으로 전주를 따라올 도시는 없었으며,,,, 나주의 대성전은 성균관에 버금가는 가장큰 국립대학이였읍니다.....

  

조선조 최고의 명신인 황희 정승은 장수 황씨 이며 문무를 겸비한 최고의 신하인 김종서는 호남인이며 세조의 장자방 신숙주 또한 호남인입니다...
.이후 주기론 주리론을 융합 사림의 시대를 연 기대승, 이발, 정철, 박순 등 당대의 인물을 배출하며 절정에 이릅니다... 또한 예학의 태두 김장생(논산인물설, 논산은 과거 호남임)은 광산김씨이며 그 아들인 김집과 함께 문묘에 배향되는 전무후무한 영광을 누립니다..... 또한 병자호란등 혼란기때 정국을 주도한 최명길 또한 호남인입니다.....

  또한 이후로도 성리학 뿐만 아니라 양명학, 실학, 동학등 새로운 사조의 산실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영남분에게는 미안하지만 영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위에 있던 곳이 바로 호남입니다....

  이후 경화 사족화 진행으로 18세기 19세기 호남 과거 급제율이 떨어지긴 하나,,,
, 조선조 전체 8% 영남 12% 영남의 절반정도인 사이즈에서 이정도면 훌륭하지 않나요?
 또한 영남은 조선조 전체를 통털어 급제율이 10%를 넘었다곤 하나 이는 그만큼 고위관료와는 거리가 먼 하급관료형태의 지방관 형태에 머물면서 서울 경기에 정착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호남은 당대의 가문이 중앙정계에 진출 경화 사족화 되면서 18,19세기에 과거급제율이 하락하였다고 보면 됩니다...... 사림 등장시 호남의 급제율은 14%에 이르고 다수의 장원급제자를 재출 이후 정계를 장악합니다......

  
이익(성호사설),이중환(택리지) 이 두분은 남인 인사로 비영남인물이며 경기출신이지요,,,,
그런데 이 두분은 노론 광산김씨에게 탄핵된 분들로 재야 인사급이네요,,, 광산 김씨가 어딘줄 아시나요! 그리고 이 두권 말고 수많은 조선조 사료는 다 어디 있나요?

  더군나나 이익과 이중환은 증손자 지간입니다.... 즉 일개 재야인사 집안이 특정파벌에 원한을 가지고 기록한 글을 특정지하 폄하에 동원한다는 것는 영남분들이 보기에도 어이 없지 않나요 ?

  즉 지금 5급정도 관료가 은퇴후 쓴 기행문이 200년후 부각되어 지역감정에 이용되는 어이없는 경우라 할 수 있겠습니다.

 

  광산김씨는 연리광김(연안 이씨,광산 김씨)이라 하여 조선조 양반중의 양반이라 불리웠으며 ,
 최씨중에는 전주최씨가 으뜸이고,
박씨중에는 반남박씨가 벼슬연력이 가장 화려합니다.
 전주이씨는 당연히 왕족이므로 다른 씨족과 비교 불가이구요; 이들 성씨는 조선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경제적으로는 물론이려니와 수많은 가사문학과 고전소설(춘향전,흥부놀부 등) 판소리등 죄다 호남 기반 아닌가요,, 또한 정치적으로도 훈구파를 거쳐 동인 서인, 노론,소론등 정치적 주류계층이었습니다.

  
영남에 유리한 자료가 많고 부각된 상태에서 역사적 인물 보니 이황,유성룡 등 몇분빼고는 대부분이 하급관료이거나 재야인사급이더군요,,,,
그럼 그 수많은 고위관료와 인사는 다 어디 있을까요?
해답은 전주이씨와 광산김씨 스토리를 보고 답을 얻었습니다.... 이분들이 조선조 내내 과거시험은 물론 고위관료까지 압도를 하였네요,

즉 출생지 기준으로 대과급제자를 따지면 경북지역에 편중되고 하급관료 형태가 많다고 할 수 있으며 고위관료는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조선후기로 갈수록 이런 경향은 두드러집니다.

  예시) 반남박씨의 경우,, 전체 인구 빈약하고 대과 급제자도 상위권은 아니나 판서급(장관급)이상 고위관료를 무수히 배출합니다.....

  예시) 조선초기 훈구파 집권시 영남은 비주류였으나, 호남은 김종서, 신숙주 등 지속적으로 영의정을 배출하면서 주류계층이었슴을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출생지 기준이지요)

  또한 사실상 조선과 유교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곳은 조선의 제2의 수도라 할 수 있는 전주입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한옥이 있으며 한양처럼 도심에 성곽이 있는 유서깊은 곳입니다. 안동은 일개 고장에 불과합니다. 후기 안동김씨 세도와도 전혀 관련없는 곳이지요 안동이 조선을 대표하는 고장인양 부각된것은 애향심이 지나친 경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조선 후기 세도가인 안동김씨는 서울 경기지역이 주류이고 그들 스스로도 실질 거주지인 장동김씨라고 자칭하였습니다. 굳이 안동김씨임을 내세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호학파 영남학파는 현대의 분류기준이고, 조선조 이런 분류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며 지역 특색 없습니다.

  이황의 주리론 계열은 별 정치적 영향력 없이 소멸합니다...(대표적인 주리론 인사는 유성룡,김성일에서 그치지요) 이황 본인이 정치세력과 무관합니다.

  이이의 주기론이 이후 서인,동인, 남인 ,북인,노론,소론의 정치적 기반이 됩니다.

  참고로 조선조 막대한 영향을 끼친 주기론은 기대승-이이-김장생등(광산김씨 계열)-송시열 등으로 이어지네요

  또한 최초 붕당인 동인 서인에서도 지도자급 호남출신이 나타나며 영향력이 상당햇음을 알수 있습니다. 한번쯤은 들어봄직한 인물을 올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서인(심의겸) - 정철(서인의 영수로 기대승의 문하생이며 호남인사)

  동인(김윤후) - 이발(동인의 지도자로 호남 출생),

또한 대북영수 이이첨 (경기), 소북영수 유영경(전주유씨), 남인영수 윤휴(호남),윤선도(호남), 서인및노론 영수 박순(호남) 김계휘(호남), 김장생(광산김씨), 송시열(충청),최명길(호남),이이명(호남), 소론영수 윤증(논산)최석정(전주최씨)박세채(호남), 등 가히 호남은 사림등장부터 이후 4색당파의 중심에서 경기,충청과 더불어 주축세력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남은 유성룡(동인),정인홍(대북)정도라고 볼 수 있읍니다...영남은 오히려 재야 학자층에 유명인물이 많으며 정치적 세력과는 거의 관련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사림등장후 훈구파와의 수많은 사화의 그 중심에는 기호사림과 더불어 호남사림이 있었읍니다..... 동인을 흔히 영남학파로 오해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으며 호남세력이 서인 뿐만 아니라 동인에서도 주류 세력이었습니다...영남사림은 비주류였습니다.......

  

* 참고로 사대사화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무오사화 : 영남사림이(김종직 등) 많이 희생당하는데 그 탄압세력이 유자광(호남)등 훈구파 세력이네요

갑자사회 : 이때 폐비윤씨와 연루된 훈구파와 영남사림이 결정적인 타격을 받습니다....

  즉 양대 사화에서 영남사림의 정치적 세력이 사실상 결정적인 타격을 받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이후 영남사림은 정치화를 꺼리게 된 계기가 되지요....이황, 유성룡 두분도 사실상 정치판과 거리를 두고 은거를 하지요....이런 연유로 희생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기묘사화 : 조광조 위훈 사건사건인데 이때 조광조 뿐만 아니라 호남사림이 희생을 당합니다....(역사상 전혀 부각이 안되지요)

  을사사화 : 흔히 윤임 윤원형 훈구파 외척간의 다툼으로 알고 있는데 이때도 호남 사림이 희생당합니다..

  기축옥사 :서인이 동인세력을 탄압한 사건으로 흔히 정여립 모반사건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때 호남 사림이 가장 큰 타격을 받습니다.....즉 호남 사림은 서인뿐만 아니라 동인에서도 주류세력이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이와 같이 사림등장시 호남의 영향력이 상당했고 사실상 훈구파 시대를 끝내고 사림의 시대를 연 주축세력이 바로 호남 사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로도 호남은 4색당파에서 지도자급 인물을 배출합니다...(이 시기 허균은 저서에서 호남을 인재의 보고라 칭하였지요)

    기대승이란 인물은 호남출신으로, 역사상 대표적으로 저평가된 인물로 부제학까지 지내셧으며, 이황선생과 사단칠정으로 유명한 분입니다.....한때 이황선생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이후로도 서로 학문적인 교분을 쌓으면서 상호존중하는 관계지요. 기대승과 이이선생은 사제지간은 아니지만 기대승의 주기론은 이이선생이 완성합니다.

  

박순(호남)은 이이 성혼과 더불어 서인의 영수로 서경덕의 문하생이고 중년에는 이황선생에게도 수학하였던 분으로 훈구파 윤원형(파평윤씨)등을 목숨을 걸고 탄핵하여 세도를 끝내고 사림의 시대를 열게한 장본인입니다...조선 정치사에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한 분입니다...(당시 정황과 분위기가 영화 글라디에이터의 막시무스장군 역할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더군다나 이황선생에게 대제학을 양보하는 아름다운 일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며, 선조의 총애를 받고 영의정등 관직생활 40연간 재산을 모으지 않고 주위를 돕는 청렴한 분이기도 합니다. 만약 영남출신이라면 상당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만한 업적과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요....아마도 호남출신이므로 전혀 부각이 안되었다고 봐야지요

  

즉 이와 같이 기대승, 박순, 이황선생 관계만 보아도 과거에는 전혀 지역감정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어리석은 지역감정의 단초를 제공한 일제 식민사관의 폐혜가 상당함을 이들 관계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선조때 사림이 득세하며 토착화된 출생지 기준으로 영남인 최조 영의정이 탄생하게 되는데 유성룔(주리론)입니다.영의정이므로 영남인사가 많아 졋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림(주기론,주리론)이등장하면서 영남인 최초의 영의정이라는 의미입니다.....주기론 주리론은 학풍으로 끝나고,정치적인 세력은 당리당략입니다.

서인 동인 남인 북인 이후 뭐 시파 벽파 등장하는데 지역 특색 전혀 없고 학풍론쪽으로는 주기론이 대세를 이루고 주리론은 밀려나게 됩니다. 이런한 정파역시 주류는 서해안 지역 권력가입니다. 그리고 영남은 세가 약한 파에서 영남인사를 끌어들이는 형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2중대 역활이지요 즉 영남독자 정치화되어서 권력 다툼을 한 케이스는 전혀 없습니다....

  ..인조반정후대북파제거시영남도 희생을 당하는데 이때 경상우도가 관직등용 금지됩니다.

  이후 노론 소론으로 이어지는데 이또한 서해안 지역권세가들이 무대이지요

  이때도 세가약한 소론이 남인계열을 끌어들이는데 이때 영남인도 다수 등장합니다.그런데 남인 또한 서해안 권력가가 주류이지 영남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인좌난 이후 서해안 지역 남인이 실각하자 영남 남인은 정계진출 통로가 사라지게 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인좌 난은 소론이 주축이고 반란은충청도에서 발생하였으며 충청 호남의 소론, 남인계열도 가담하였습니다..

  그런데 진압이후 엉뚱하게충청도가 아닌 영남이 피해를 봅니다.. 즉 호남 충청은 노론의 텃밭이므로 처벌할 수 없었던 겁니다,,,, 영남의 경우는 그동안 소외감이 폭팔한 케이스로 영남 남인 가담이 많았고 저항이 심했습니다.....그러한 관계로 평영남비를 세우고 관직등용 금지됩니다....

  따라서 대북파 제거시 경상우도, 이인좌 난 계기 경상도 전체, 영남차별의 역사가 200년이 넘는 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따라서 학풍에 의한 주리론의 대가 이황선생의 업적만 해도 영남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만한 것입니다....

 

하지만 영남이 독자적으로 정치세력화해서 권력다툼을 한 경우는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기호학파 영남학파로 분류하여 마치 영남이 권력이 양분한 것같은 착시현상을 보이게 한 것은 심각한 조작에 가까운 왜곡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기호학파라 칭하며 충청일부와 호남을 배제하는 명칭을 쓰는데 정말 이러면 안됩니다.... 호남은 노론 소론 주류 정치세력이 대세였습니다....

  

반역반란

  반역 반란인데 이거 경상도 정말 할 말 없습니다. 젤 많았습니다.(이유는 농경사회에서 변방이었고 먹고살기 힘들었기 때문이지요). 단 다른지역 반란건만 부각시킨거지요.
 그리고 같은 반역이라 하더라도 피해를 심하게 당했습니다. 호남은 고려조 조선조 반역 반란 8도에서 최저입니다.
  동학혁명 이후는 외세에 대한 저항이므로 이런것까지 설마 호남폄하에 이용하진 않겠지요

 

예를 들면 고려시대내내 김사미 효심난,경주민란,진주민란,밀성(밀양),최산 이유의 난등 신라부흥운동 성격의 반란이 발생하고 무수히 진압당합니다. 그나마 우대해주던 경주까지 천민주거지역으로 강등되었고 경상도는 명칭까지 바뀝니다.(상진안동도) 천민집단 주거지인 향소부곡 400군데 중 50%가 경상도에 지정될 정도입니다. 고려시대 경상도 인구는 전체 10%~20%정도입니다.

 

참고로 향소부곡은 군현에 포함되지 않는 행정구역으로 피정복민,반란지역,등에 지정되고 거주지 제한됩니다.

 

다른지역보다 경상도 지역에 서민들 성씨가 많고 스포츠에서 좋은 타자와 힘 있는 장사들이 많이 배출되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평야지역은 상대적으로 학자, 예술가들이 많이 배출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