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뉴에님이 호남차별에 대한 의문에 대하여 라히툼히님이 경제적 이유를 원인으로 제시했지만 납득하지 못하였습니다.
여러 자료를 보면 군사정권 이전에도 호남에 대한 서울 충청지역의 차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조선시대 후기를 장식한 세도정치 안동김씨 정확하게는 장동김씨와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사실 안동김씨는 개성이후 500년동안 문과급제자를 한명도 내지 못하다가 유성룡의 조상 인 풍산유씨 집안과 혼맥을 맺으면서 음서로 진출하고 안동권씨 가문과 통혼하므로 힘을 얻게되고 성종조에 이르러 겨우 문과 급제자가 생깁니다

그 후로도 특별한 인재가 없다가 서울로 이사한 후 혼맥을 통하여 경제력과 사회적인 위치를 점유하며 서인에 속하여 노론의 지배계급에 편입합니다
영남이 남인이 많아서 소외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송시열의 문하생들이 영남에도 상당한 수가 있었고 서울로 이주한 장동김씨는 여전히 안동 향리에 연고를 두고 교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김상헌때 비로서 가문이 일어나기 시작하다 왕비를 배출하면서 세도정치를 통하여 권문세족이 됩니다

결국 조선 후기 서울의 여론을 장악하는 권력자들은 노론들이었고 그 중에서도 장동김씨를 비롯한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의 정적은 사실상 왕실이었고 이 왕실의 기반은 전주 이씨였으며 호남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호남에 대한 좋지 않은 평을 퍼뜨리고 권세가를 따르는 여러사람들이 그 말을 신임하고 따르므로 호남에 대한 비토가 형성이 되었습니다

옛날 민도가 낮을 때 권력가나 대단한 양반들의 의도적으로 퍼뜨리는 마타도어는 충분히 먹히고 게다가 호남은 물산이 풍부하고
다른 지역이 굶주릴때도 배불리 먹는 지역이어서  타 지역민의 질시와 부러움의 대상이었기에
여러지역민들이 호남비난에 가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경제 개발이 시작되고 농촌수탈로 이농이 이루어지면서 호남사람의 수도권 진출로 일제시대 조선사람들이 일본에서 차별받고 방을 얻을수 없고 비난 받은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