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남인은 호남인을 차별하는가?

전반적으로는 잘 못느끼는데 반해, 그렇게 차별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오프에서는 호남이 화제가 될 일이 없고 솔직히 그런 분위기도 전혀 못느끼고 살았는데, 웹에서의 행태를 보면 내가 만나는 지인들 중에도 혹시 홍어 홍어 거리는 저런 인간군상들이 있는 거 아닐까 의심이 들기는 합니다. 겉으로는 점잖아도 속으로야 뭔 생각을 하는 지 알 수가 없으니..하지만 겉으로 그러는 것은 아직 못봤고, 대놓고 호남 뭐라고 하는 분위기도 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제 좁은 인간관계 기준이고, 제가 나고 자란 동네, 제 생활반경 내에서의 얘기지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2) 그렇다면 영남인이 호남인을 인종주의적으로 차별하는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호남 차별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은 할아버지 세대들 중에 많은데, 그분들 역시 호남인이라서 무조건 싫다 이런 분위기와는 미묘하게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여기에는 상당부분 이념문제가 결부되어 있습니다. 아시다 시피 영남은 친조선일보 친한나라당 성향의 유권자들이 가장 많은 대한민국 보수의 본산입니다. 또 연세가 있으신 분들일 수록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고 북한 정권에 유화적인 햇볕정책을 반대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그 정책을 주도한 민주당과 그 수장 격인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싫어하는 이들이 많지요. 

특히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에는 영남 정권과 주류 언론의 지속적인 분칠 때문에 남파한 빨갱이 간첩으로 진심으로 믿는 이들도 상당합니다. 그래서 김대중 얘기만 나오면 이를 갈고 저주부터 퍼붓는 어른들이, 아마도 꽤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바깥에서 이런 얘기를 거리낌없이 하는 대책없는 분들은 잘 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웹에 만연한 꼰대 수꼴들의 숫자와 활동을 보건데, 점잖은 얼굴을 하고 있는 어르신들 중에도 정치얘기로 깊이 파고들면 그런 혐오감을 분출하는 이들이 꽤 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런 분들일 수록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반감과 비례하여 호남에 대한 어떤 적개심을 갖고 있을 확률이 높겠죠. 극악한 빨갱이 김대중에게 몰표를 주는 호남인들은 같은 한국인으로 볼 수 없다, 혹은 뽀글이 정권의 존속을 위해 대북퍼주기에 올인하는 한심한 민주당과 그 민주당에 몰표를 주는 호남인은 대한민국의 뒤통수를 치는 족속들일 수 밖에 없다, 대충 이런 시선일 건데, 이건 백인이 흑인 차별을 하는 순수한 인종주의와는 거리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과 좌우 대립이라는 역사의 연장선 상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내 손으로 지켜낸다는, 영남 정권이 유포한 그 서사 때문에 이런 분들의 반김대중주의와 호남차별의식은 더이상 악의적인 편견이 아니라 안보의식의 당연한 발로쯤으로 스스로에게서 부터 위장되고 있으니까요..그래서 이 갈등의 해결은 아주 요원한 일인 것 같습니다..

3) 영남에는 호남에 대한 나쁜 편견을 유포하는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게 존재하는가?

영남 내에서도 세대에 따라 동네에 따라 또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제가 커오는 과정에서는 그런 교육을 받은 바가 없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그러는데, 호남이 어쩌고 저쩌고..얘기 하는 애들도 본 적이 없습니다. 다시말해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까지 일컬을 정도로 호남에 대한 얘기가 집안에서 화제가 되는 일이 없고, 밥먹으면서 호남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가정은 더더욱이나 없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다만 선거철이 되어 민주당 몰표 얘기가 나올 때나, 혹은 대북정책 관련한 뉴스가 나올 때 호남인들의 몰표를 삐딱하게 보거나 민주당의 친북적인 태도를 비꼬는 얘기를 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가끔은 호남인들 전부를 싸잡아 한두마디 비아냥 거리는 얘기가 오가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서서히 편견이 자리잡게 되는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정 내에서 호남과 호남인들을 두고 인종주의적 편견을 확대 재생산한다는 식으로 까지 말한다면, 그건 소설 쓰는 거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김대중과 민주당에 대한 터부는 강합니다. 그러니 타지역 보다 호남에 대한 차별의식을 갖기 쉬운 토양인 것은 맞습니다. 윗세대의 일부는 영남 정권이 유포한 반호남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그렇지 않은 다수도 소극적으로 노출되어 있었으며, 아랫세대 역시 밥상머리 교육 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모님의 정치성향을 자연스럽게 물려받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민주당은 줄곧 영남내에서 뿌리내리기가 힘들었고, 한나라당은 우리가 남이가의 정서로 끈끈하게 묶여 있었는데, 노무현의 등장 이전 까지는 그 구도가 흔들림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호남 포위로 정권을 창출하고 지역이권을 존속하자는 나름의 계산도 있었겠지만, 그런 정치공학적인 사후해석을 떠나, 실제 민심의 차원에서는 박정희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향수가 더 큰 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결국 정권이 지역구도를 조장했고, 영남인들이 이에 강하게 호응한 것은, 호남의 배제가 일차적인 목적이었다기 보다, 보릿고개의 탈출과 경제적으로 부강한 시대를 열어준 박정희에 대한 무한한 신뢰, 그 박정희가 영남의 아들이라는 강한 자부심이 한 몫 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남북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긴장감의 외부여건도 김대중=빨갱이 공식에 힘을 실어줬을 거고, 그 모든 조건들이 교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정권이 유포한 반호남 구도에 영남 유권자들이 손쉽게 동원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호남에서도 방어적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적어도 유세장에서 확인하는 그 지역감정은 더 심해져 갔을 거고.. 5.18 이후로는 영남의 원죄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을 거고..

그렇게 접점을 못찾던 것이 2000년 전후로 붐이 일었던 안티조선 운동과 그 후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던 반한나라당의 정서, 그리고 노무현의 드라마틱한 집권에 이르기 까지, 그 역동적인 시기를 거치면서 영남에서도 운동권이 아닌 부류, 또 운동권 이후의 세대들 사이에서 정치의식이 강하게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차츰 한나라당을 이반한 개혁세력 지지자들이 많이 생겨나게 됐었죠. 그들 중 대부분은 노무현의 민주당(=그러나 민주당이 아닌 인간 노무현)에 포섭됐고 소수는 진보정당 지지자가 됐으며, 참여정부의 좌초와 분당의 흐름속에서 지지자들의 정체성은 온건 노빠에서 극렬 유빠로 까지 점진적으로 분화되어 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진보정당 지지자들도 노조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경우는 거진 다 페이퍼 당원으로 전락하고 말았죠. 그렇게 2000년이 저물어가면서 정치에 대한 환멸과 피로감이 깊어갔고, 결국 참여정부 말기에는 영남출신 이명박에 대한 기대심리가 지배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으로 갈아탄 이들도 많았고, 표는 주지 않더라도 노무현 보다 낫겠지라는 분위기도 만연했었으니까요..암튼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4) 평균적인 영남인들의 호남에 대한 생각은 어떤 종류의 것일까?

끝으로 여기서 정치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내용들, 평균적인 영남인(+일반 시민)들은 하나도 모릅니다. 개혁세력이 발흥하던 밀레니엄 전후로 반짝 정치에 관심있는 이들이 생겨났지만, 이제 그런 분위기도 다 죽고 먹고사니즘 때문에 다 각개약진 하기에 바쁩니다. 영남정권의 호남배제, 평균적인 영남인(+일반 시민)들이 이런 것을 알리가 없습니다. 물론 알지 못한다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관심이 없다라는 거지요. 그러니 흉노소리만 나와도 발끈하는 이들이 있는 거겠고, 혹여 지역감정의 그 연원과 내막을 안다고 해도 북한이 존재하는 이상, 빨갱이 공식에 끼워맞춰서 편의적으로 해석해 버릴 여지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 것을 다 떠나 영남이 호남을 차별했다, 근데 그게 왜? 나랑 무슨 상관인데? 이렇게 되묻는 애들은 훨씬 더더더더 많을 것입니다. 당장 같은 지역, 같은 반 친구를 왕따시키는 것에도 무감각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자기랑 상관없는 호남의 차별, 그것도 자기가 직접적으로 연루되지도 않은 지난 역사의 실상을 들려준다고, 그것에 고무되어 가슴이 뜨거워지거나 부끄러워할 친구들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호남의 반응을 과도한 피해의식으로 몰아가는 것일테고, 그 피해의식에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경우에는 저렴한 홍어족으로 손쉽게 정체성을 갈아타는 것이겠죠. 마찬가지로 그 공격이 영남 외의 지역을 향한다면, 해당 지역 애들도 거진 비슷한 반응을 보일텐데, 웹상에서 주로 영호남이 마찰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형국에서는 물타기식으로 그 유희에 섞여들어오는 애들도 많겠지요. 영남인이라면 대개 영남의 편에서 홍어 소리를 할테고, 호남인이라면 호남의 편에서 흉노라고 맞받아칠테고, 제 삼자라면 처음 그 장면을 목격했을 때의 자기 인상에 따라 어느 한쪽 편을 들겠지요. 이 유희의 가해자가 영남이라고 해도, 그 짓을 한 애는 그다지 죄의식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하는 꼴이 짜증나서 홍어라고 깐 것 뿐인데? 유희로 즐겼다면 이 정도 핑계로 합리화를 하겠죠. 진짜로 호남에 대한 편견에서 그 짓을 대대적으로 조장했다면, 분명 김대중 빨갱이 타령을 하는 놈일 건데, 얘들은 애초에 역사의식 자체가 삐뚤어져 있기 때문에 자기 딴에는 잘하는 짓이다고 굳게 믿고 저러는 것이겠죠..그러니 답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럴 때는 걍 맞받아서 같이 욕하고 유희로 즐기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봅니다. 상대가 홍어 소리로 자극하면 흉노소리로 세배 네배 더 되돌려 주면 되는 거고, 다만 홍어 소리 한다고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여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겠죠. 그렇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당사자 앞에서는 마음껏 스트레스를 발산하시되, 그 저렴한 인간군상과 무관한 영남 유권자 일반에게 까지 동일한 양의 분노를 발산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잘못한 놈만 조진다, 뭐 이런 마인드면 족하겠지요..특히 자기 정견을 밝힐 때에는 필요이상으로 영남을 향해 악감정을 뿜어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유시민이 주도하는 그 요상한 치킨게임을 향해서가 아니라면, 영남 일반을 싸잡는 수사가 우선 이곳을 드나드는 영남 눈팅족들에게 예의가 아닌 거니까요. 그렇게 각자가 최소한의 룰만 잘 지키면서 갔으면 좋겠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잡설 한 줄 남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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