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저 역시 인터넷 자체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런 저런 친목도모 사이트를 둘러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상사가 되었고, 인터넷이 우리 실제 생활에 큰 파장을 일으킬 때는 인터넷이라는 시스템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끼기까지 합니다. 요즘들어 관심있게 지켜보는 것은 '소셜 미디어'라는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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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미디어(Social Media)' 는 말 그대로 사회 매체라는 말입니다. 이전의 매체가 사회와 거리를 두고 사회를 보는 눈이었다고 한다면, 소셜 미디어는 사실상 미디어의 경계가 사라졌단 말과 같습니다. 또한 기존 미디어의 감춰진 권력(정보의 제한적 배급을 통한 통제)이 무의미 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정보생산자가 제한되어 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누구나 정보생산자가 될 수 있습니다. UCC, 블로그, 트위터, 커뮤니티 사이트에서의 글쓰기 등, 과거에 기자와 같은 소수만이 할 수 있었던 일들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세상이 왔습니다.


가만보면, 최근에 트위터로 부각되고 있는 '소셜 미디어'는 새로운 혁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터넷을 사용했을 때 부터 있어왔던 이런 저런 소통 방법이 '소셜 미디어'라는 단어로 이미지화 되었을뿐이죠. 그렇다면 왜 지금에 와서 '소셜 미디어'가 각광받게 되는 것일까요?

여러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우선 기존 매체의 역할을 톡톡히 한 트위터의 힘이 큽니다.  트위터는 모바일과의 결합이라는 아이디어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느 매체보다 뛰어난 신속성을 가지게 됩니다. 중국 지진이 일어나고 몇 분후에 전세계(전세계란 말이 인터넷에서 무의미하긴 합니다만)로 퍼진 트위터 메시지는 트위터를 유명하게 만든 하나의 사건이었고, 이란 시위 때는 트위터를 통한 시위를 보기도 했습니다. 비단 트위터 뿐만이 아닙니다. 한창 건설중인 CCTV 본사 부속건물에 화재가 났을 때, 제가 가장 먼저 접한 영상은 CCTV, CNN break news가 아닌 youtube.com이 작게 박힌 영상이었고, 황우석씨의 줄기세포 논란의 시발점이 BRIC의 소리마당과 DC인사이드의 과학갤러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졌죠.




소셜 미디어는 기존 언론과 달리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즉각적인 피드백이 가능한 시스템이고, 또한 즉각적인 피드백을 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빠른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건 트위터를 개설하기도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my.barackobama.com 역시 소셜 미디어를 '알아챈' 정치인의 한 예입니다.

예)
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09&no=103833 (2009.02.18, 매일경제)
위 링크의 기사는 오바마 정부가 소셜 미디어만의 피드백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기사입니다. 
오바마를 향한 이런 저런 정보생산(비판 혹은 지지)를 무시하지 않고 보고 있다는 대통령의 갖가지 제스춰는 국민들과 눈높이를 같이 한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냈습니다. 이것은 역사상, 그리고 동시대 어떤 대통령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성과라고 봅니다.


과연 '소셜 미디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진화할 수 있을까요?
사실상 '소셜 미디어'라는 단어는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학자들이 선점한 단어에 불과합니다. 누구나, 너무나도 쉽게, 엄청난 파급을 가졌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런 파급은 독단적이지 않고 유연하기까지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능적 측면에서 진화라는 단어는 더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설사 획기적인 기술발전으로 지금은 상상치도 못한 어떤 방법으로 인터넷과 연동된다고 해도, '소셜미디어'는 변화하지 않습니다. 더 '소셜 미디어' 다워질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셜 미디어'가 완벽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분명히 결점이 존재합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결점은 한두개가 아닙니다.


셀수없이 많습니다. 바로 무의미한 정보죠. 


'소셜 미디어'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여과장치가 필요합니다. 이 여과장치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기술적인 보완대책 역시 아닙니다. 또다른 '소셜 미디어'의 한 부분입니다. 정보의 바다 속에서 재미있는 혹은 유익한 정보를 모아서 새로운 정보를 만드는 편집자가 존재합니다. 무의미한 정보는 사라질 수 없고, 또한 제어 할 수 없기 때문에, 나오는 것을 막을 수도 없지만 양질의 정보를 모아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로듀싱을 또다른 '소셜 미디어'가 하고 있습니다.

예1)
http://www.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installment_id=267&article_id=4629 (2009.8.12 딴지일보)
위 링크의 기사는 인터넷상에 산발적으로 퍼져있는 정보를 모아 만든 딴지 일보의 기사입니다.

예2)
http://skynet.tistory.com/939 (skynet 블로그)
위 링크의 블로그는 독자투고라는 형식을 통해, 양질의 정보생산을 장려합니다. 정보생산자에게는 많은 이들에게 글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동시에 블로그는 양질의 컨텐츠를 축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흔히 트위터 붐으로 알려지는 '우리나라'의 소셜 미디어 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글자수 제한이라는 시스템적 한계도 있지만, 그보다 현재 우리나라 트위터는 소셜미디어라는 블루오션을 발견한 발빠른 이미지 메이커들만이 산재해 있는 상황으로 보이고, 열광하는 분위기가 사그러질 때쯤이면, 원래라면 진국들이 남아야하는 상황이지만, 글자수 제한이라는 한계로 인해 자연 도태 되지 않을까 하는 섵부른 추측을 해봅니다.

그렇지만 이미 우리가 어색해하지 않는 갖가지 소셜 미디어(수많은 커뮤니티 사이트, 블로그, 개인홈페이지, 인터넷 언론)는 이미 '소셜 미디어' 답게 정착했습니다. '소셜미디어' , 인터넷 사용자 간의 무한한 정보교류를 통한 경이로운 사건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
http://pann.nate.com/b200107174 (네이트 판, 실종된 동생을 찾는 글)
위 링크는 현재 진행 중인 상황입니다. 경이롭다는 말을 동생을 아직 찾지 못한 상황에서 쓰는 것이 스스로 불편하지만,


"여러분께서 많은 글을 올려주셔서 단서가 잡히기 시작했네요 ㅠㅠ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라고 쓴 누나의 글을 볼 수 있듯이, 이 글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댓글, 메일, 전화 등을 통해 동생에 대한 목격담, 찾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올려 주고 있습니다. 정말 찾게된다면, 찾게 되겠지만, 진정으로 경이로운 일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보의 교류라는 흔한 케이스가 아닌, 정보의 대립을 주로 다룬다는 측면에서 acro 역시 소셜 미디어를 말하는데 훌륭한 예 입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소셜미디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인터넷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세대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은 기술에 밀릴거라고 말하던 SF문학, 영화가 틀렸다는 것을 말해주는 드라마입니다. '소셜 미디어'는 경이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인간은 아무리봐도 조금 경이로운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