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어느 할머니가 신자가 되는 과정을 묘사한 글이다.

 

할머니가 있었다. 그 할머니는 돈도 없고, 빽도 없고, 가족도 잘 찾아보지 않는다. 이제는 마실갈 곳도 없고,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는 소외된 할머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반가운 마음에 나가보았더니 두 할머니가 전도를 하러 방문한 것이었다. 달리 할 일도 없었던 할머니는 신자도 아닌데 그냥 구경 삼아 교회에 가 봐도 되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전도하러 온 할머니들은 그래도 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할머니는 교회에 한 번 가 보았다. 그랬더니 20명이나 되는 할머니 신자들이 손을 잡아 주면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목사도 잘 오셨다고 반겨주었다. 신자가 아닌데도 교회에 이렇게 와도 되느냐고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모두가 괜찮으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고 따뜻하게 답해 주었다.

 

목사의 설교가 좀 따분하긴 했지만 예배를 마친 후 다른 할머니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거웠다. 다음 주에도 할머니는 그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여전히 성경 말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다른 할머니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교회에 꼬박꼬박 출석하게 되면서 성경 말씀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아버지 하느님이 모든 인간을 보살펴준다는 이야기며, 진심으로 회개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며, 못된 짓을 하면 하느님한테 혼난다는 이야기에 이제는 익숙해졌다. 한번은 “하느님이 진짜로 계셔서 나같이 보잘것없는 할망구도 따뜻하게 보살펴주셨으면, 나도 천국에 갈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6개월이 흘렀다. 그리고 어느새 할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

 

 

 

할머니가 왜 신자가 되었는지 설명하기 위해 심리학자들이 네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첫째 가설을 제기한 심리학자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그 심리학자에 따르면 할머니의 신앙은 합리적인 숙고의 결과였다. 이 가설은 “기독교 만세 가설”이라고 불린다.

 

천하를 호령할 것 같던 뉴턴 역학은 3백 년도 못 버티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자리를 내 주었다. 그리고 상대성 이론은 이제 백 년 밖에 안 된 이론이다. 반면 성경은 무려 2천 년 동안이나 버티고 있다. 이것은 성경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주는 증거다.

 

현명한 할머니는 성경 말씀을 듣고 숙고한 끝에 신을 믿게 되었다. 이것은 이성 또는 합리성의 승리였다. 이런 합리성은 20세기 물리학자들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뉴턴 역학보다 낫다”는 점을 온갖 실험과 관찰을 통해 입증할 때도 발휘되었다. 다만 할머니의 합리성이 물리학자의 합리성보다 666억 배나 더 우월하다는 차이가 있긴 하다.

 

불행하게도 이 가설은 심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전혀 인기가 없다. 하지만 그 심리학자는 그 가설을 지금까지 꿋꿋하게 믿고 있다.

 

 

 

둘째 가설은 “할머니 바보 가설”이라고 불린다.

 

그 할머니는 지능이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에 쉽게 속는다. 그 할머니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라면 무턱대고 믿는다. 평범한 포도주와 빵을 가져다가 만병통치약이라고 거짓말을 해도 쉽게 믿을 것이다.

 

그 심리학자는 가게에서 천 원짜리 빵과 5천 원짜리 포도주를 사 들고 다른 심리학자들과 함께 할머니를 방문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열심히 썰을 풀어서 만병통치약으로 속여 팔려고 했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서 속여 팔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가설을 입증하고 싶었을 뿐이며 자신의 가설이 입증되면 할머니에게 한턱 크게 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호락호락하게 속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본 결과 할머니의 지능이 적어도 평균 이상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할머니 바보 가설”을 제출한 심리학자는 풀이 죽어서 가설을 철회했다. 그 꼴을 본 할머니가 그 심리학자에게 한턱 크게 쏘았다.

 

 

 

셋째 가설은 “소망적 사고 가설”이라고 불린다. 그 가설을 제출한 사람이 프로이트주의자라는 말도 있고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말도 있다. 심지어 아편 중독자라는 말도 있다.

 

신은 인자한 아버지처럼 인간을 보살펴준다고들 한다. 인간 세상에서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할머니라 하더라도 신은 반드시 챙겨준다는 것이다. 이런 신이 있다고 믿게 되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게다가 신이 마련한 천국에서 호강할 수 있다는 희망까지 품을 수 있다. 이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줄여준다. 정의로운 신인 야훼가 할머니를 괴롭히는 못된 놈은 혼내준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

 

할머니에게는 “누군가 나를 보살펴주었으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었으면”, “힘 없는 나를 괴롭히는 놈들을 누군가 혼내주었으면” 하는 소망들이 있었다. 신을 믿으면 이런 소망을 성취할 수 있게 된다. 적어도 소망이 성취된다고 착각하게 된다. 요컨대 신을 믿으면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할머니가 신을 믿게 된 것이다.

 

이렇게 소망이 사고 왜곡을 일으키는 것을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라고 한다. 이것이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적 과정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과정 때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어쨌든 소망의 힘이 모종의 과정을 거쳐 사고 왜곡이라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그 결과 할머니가 신을 믿게 된 것이다.

 

 

 

넷째 가설을 제기한 진화 심리학자도 역시 일종의 사고 왜곡이 일어났다고 보았다. 하지만 소망적 사고는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진화 심리학자가 소망적 사고에 회의적인 이유가 궁금하다면 다음 글을 참조하라.

 

소망적 사고는 없다 (version 0.1)

http://cafe.daum.net/Psychoanalyse/GoAb/23

 

그 진화 심리학자가 제출한 가설은 “내집단 추종 가설”이라고 불린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그냥 사람이 좋아서 교회에 열심히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다른 할머니들과 친해지다 보니 그 교회는 그 할머니의 내집단(ingroup)이 되었다. 교회에 대한 소속감이 생긴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의 믿음을 어느 정도는 무턱대고 받아들이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 그 이유는 그래야 왕따 당할 가능성이 적어지고 우정 시장이나 짝짓기 시장에 더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내집단 믿음 추종 기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내집단 믿음 추종 기제가 작동하여 할머니가 기독교를 믿게 된 것이다.

 

 

 

소망적 사고 가설 제출했던 심리학자는 내집단 추종 가설을 듣고 한 가지 반론(?)을 제기했다.

 

내집단 추종 가설도 결국 소망적 사고 가설 같다.

 

“신을 믿으면 천국에서 호강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할머니는 신을 믿게 되었다”가 소망적 사고 가설의 핵심이다. 내집단 추종 가설의 핵심은 “신을 믿으면 교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할머니는 신을 믿게 되었다”인 것 같다.

 

천국에서 호강하고 싶다는 소망이 사고 왜곡을 일으켰는지, 아니면 다른 할머니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소망이 사고 왜곡을 일으켰는지, 둘 다 참인지, 둘 다 참이라면 어느 요인이 큰 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있다. 어쩌면 다른 할머니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소망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소망적 사고 가설이다.

 

 

 

그러자 내집단 추종 가설을 제출한 진화 심리학자가 답한다.

 

할머니가 “신을 믿어야 다른 할머니들과 어울릴 수 있다”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했을 가능성이야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내집단 추종 가설에 따르면 그런 생각 때문에 사고 왜곡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

 

“내집단의 믿음을 추종해야 왕따를 면할 수 있다”는 진화 생물학자들이 말하는 선택압(selection pressure)이다. 이런 선택압 때문에 내집단 믿음 추종 기제가 진화했다. 그리고 바로 그 심리 기제가 작동했기 때문에 할머니가 신을 믿게 된 것이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 밥을 먹는다”는 선택압 수준의 설명이며 이것을 궁극 원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면 “배가 고파서 밥을 먹는다”는 심리 기제 수준의 설명이며 이것을 근접 원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대인이 굶주릴 때 “이렇게 계속 못 먹다가는 에너지 부족 때문에 결국 죽게 되겠군”이라는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인도 밥을 먹는 이유는 보통 그런 생각 때문이 아니라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즉 식욕 조절 기제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에너지 개념을 알 것 같지 않은 원시인들도 밥을 먹고, 갓난아기도 밥을 먹고, 다른 동물들도 밥을 먹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할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신을 믿어야 다른 할머니들과 어울릴 수 있다”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내집단 믿음 추종 기제가 작동했기 때문에 사고 왜곡이 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