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펜로즈가 쓴 <실체에 이르는 길> 의 말을 인용합니다.



대부분의 수학자들은(적어도 내가 아는 수학자 대부분은) 수학을 '인간이 창조한 문화적 산물'이 아니라 '자생력을 갖고 스스로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 간주한다.

<실체에 이르는 길1> page24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도 있다.  "이상적인 수학세계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서 걸러진 '신뢰할 만한' 아이디어의 집합체에 불과하며, 이미 마음속에서 정제과정을 거쳤으므로 모든 면에서 타당하게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식의 논리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 모든 면에서 타당하다' 는 것이,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보기에 타당하다'는 뜻인가? 아니면 '수학 박사학위(플라톤이 살던 시대에는 그런 게 없었지만)를 가진 사람이 보기에 타당하다' 는 뜻인가? 타당성을 판별하는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이런 식으로 따지다 보면 논리의 무한 궤도에 빠지기 쉽다. 그(혹은 그녀)가 '올바른 생각을 가졌는지' 여부를 판단하려면 외부 기준이 어느 정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다수결로 채택되는 여론처럼 비과학적인 성질을 갖는 몇몇 기준을 빼고는 '타당성' 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다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지만, 과학에서는 천만의 말씀이다.) 아무리 뛰어난 수학자라 해도, 엄밀한 수학을 자신의 마음속에 원형 그대로 담을 수는 없다. 새로운 수학을 연구하건, 누군가가 이미 이루어 놓은 업적을 응용하건 간에, 수학자들은 인간의 개인적 의견을 훨씬 초월해 있는 객관적 세계를 탐험하는 듯한 느낌에 종종 빠져들곤 한다. 제 아무리 뛰어난 사고력의 소유자라 해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 실체에 이르는 길1> page 53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어느 누구도(심지어 집합의 세부 구조가 보이는 놀라운 복잡성을 처음 접한 베노이트 만델브로트 자신마저도) 이 집합이 만들어 낼 다채로운 풍경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만델브로토 집합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집합이 아니라, 수학 자체 내에 원래부터 존재하던 것이었다. 이 집합은 인간의 마음 속에 다 담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한 속성을 갖고 있다. 가장 뛰어난 컴퓨터로 이 집합을 재현한다 해도, 극히 일부의 '그림자' 만을 재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만델브로트 집합이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정의된다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달라지지 않으며, 어떤 컴퓨터로 재현해도 동일한 모습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만델브로트 집합은 인간의 마음 속이 아닌 플라톤의 이상적 수학세계에 존재하고 있다. 

아직 많은 독자가 수학 구조에 어떤 모양새로건 실존을 부여하는 일에 거부감을 갖는다는 사실을 내 모르는 바 아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존재' 라는 단어의 개념을 좀 더 넓게 확장하기를 권하고 싶다. 플라톤의 세계의 수학적 형태는 책상이나 의자 같은 일상적인 물체와 전혀 다르다. 그들은 공간을 점유하지 않으며, 시간 속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객관적인 수학 개념은 시간을 초월한 존재로 봐야만 하며, 인간이 처음 인식한 그 순간에 실존을 획득했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그림 1.2(c), (d) 에 나와 있는 만델브로트 집합의 독특한 소용돌이는 컴퓨터 모니터나 프린터를 통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보였을 때 실존을 얻은 것이 아니다. 만델브로트 집합의 근원이 되는 일반적 개념을 인류가 처음으로 발견했을 때도 아니다. (만델브로트 집합은 1981년에 브룩스와 마텔스키가 처음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 전에 다른 사람이 이미 발견했다는 주장도 있다.) 과연 브룩스와 마텔스키, 그리고 만델브로트는 이 집합을 발견하기 전부터 그림1.2(c), (d)와 같이 복잡한 구조를 머리속에 그리고 있었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 구조는 시간의 탄생 이전에 이미 시간과 무관한 잠재적인 영역에 존재했으며, 장차 구조를 인지하게 될 존재가 구조를 펼쳐 보기로 결심하는 시간과 장소가 언제 어디였든지 간에, 오늘날 우리가 인지하는 바로 이 모습으로 나타날 운명이었다. 

<실체에 이르는 길1> page 58~59




수학적 대상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초월적 세계에 존재한다는 펜로즈의 주장을 듣고 있으면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솔직히 이런 분야에 대해 제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이런 의문이 떠오르는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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