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크로북에 숨바님께서 저에게 질문을 하는 댓글을 다신 것을 읽었는데, 오늘 답변을 드릴려 했더니 해당 댓글을 삭제를 하셨네요. 대략 기억나는 부분은 현재 지역주의 문제에 있어서 두가지의 상이한 진보관이 충돌하고 있는거 같다는 문장이었습니다. (아마 정확하지는 않을겁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아마도 숨바님께서는 저의 '호남 지역주의는 진보다'라는 주장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워 하시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숨바님의 혼란스러움을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합니다. 사실 상식적인 측면에서 지역주의는 결코 진보주의자가 가져서는 안되는 정치적 태도가 맞겠죠. 또한 민주 공화국에서 권장될만한 것도 아니겠구요. 특정 지역에서 매우 쉽게 국회의원이 되는 사람들, 공천을 받기만 하면 선거해보나 마나 국민의 대표가 되어버리는 이상한 모습, 당내 예선만으로 본 게임이 결정되어 버리는 현상 등등... 그런식으로 당선된 사람들을 과연 올바른 국민의 대표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상식적인 측면에서 당연한 문제 제기가 될 것입니다. 

지역주의를 망국병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측면에 주목해서 만들어진 말이겠죠. 유권자들 앞에서 각 후보들이 치열한 경쟁을 거쳐 당선이 되는게 아니라, 정당의 공천장이 금뱃지 교환권이 되는 것은 결코 상식이어서는 안되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호남의 지역주의가 진보라니 당체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라는 생각이 드시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죠.

그러나 지역주의에 대해 얼핏 상식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인식은, 대한민국은 상식이 작동하고 있는 국가라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만약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상식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국가라면?

예를 들어보죠. 가령 어떤 사람들이 남의 집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강제로 끌어내 데려가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고 해보죠. 상식과 원칙에 입각해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거겠죠. 그러나 만약 그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고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때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웃집 주민이 "그래도 아이들은 부모가 키워야 정상이지"라는 상식적이고 입바른 소리를 합니다. 과연 맞을까요?  이렇듯 비상식적인 상황에서는 비상식적인 대응이 가장 상식적인 것이 되는 역설이 존재합니다. 제가 숨바님의 지역주의에 대한 인식과 해법이 매우 피상적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바로 숨바님의 지역주의에 대한 인식이 예시한 이웃집 주인과 비슷한 것이기 때문이죠. 

다른 예는 또 있습니다. 어느 회사의 노동자들이 일은 안하고 파업을 하고 있습니다. 죽어라 북치고 노래하며 농성을 합니다. 현상만 놓고 보면 당연히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기업의 모습은 아니겠죠.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고, 경영자는 열심히 경영하는 것이 상식적인 기업의 모습일겁니다. 그런데 누군가 다음과 같은 입바른 소리를 합니다. "직장에 취업했으면 당연히 일을 해야지 저렇게 일 안하고 그러면 쓰나?" 과연 이 사람은 누구 편을 들고 있는 걸까요? 이 사람은 과연 상식과 원칙에 입각해 맞는 소리를 한 걸까요?

노무현이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면서 상식과 원칙을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지역주의가 없어진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보자고 했을겁니다.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왜 실패했을까요? 숨바님처럼 지역주의를 그저 비합리적인 우상적 감정에 불과하다는 매우 상식적인(?) 입장에서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이들은 부모가 키워야지 쯧쯧" 이랬던 겁니다.

과연 현재의 지역주의 문제에 있어서 어떤 것이 올바른 상식이고 원칙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