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말하는 보편성은 수학적 의미의 엄밀한 보편성이 아니다. 수학에서는 반례가 단 하나만 있어도 보편성 명제가 부정된다. 인간 과학에서 그런 식으로 보편성 개념을 정의하면 보편성 개념 자체가 별로 쓸모가 없어진다. 예컨대 인간은 보편적으로 손가락이 열 개다라는 명제도 성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선천적 기형이나 사고 때문에 손가락이 열 개가 아닌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보편성 개념을 수학에서보다 느슨하게 쓸 것이다.

 

또한 보편성 개념을 인간 중 일부에게만 적용하기도 할 것이다. 예컨대 여자에게는 보편적으로 자궁이 있다라는 명제는 전체 인간이 아니라 여자에게만 적용한 것이다. 젖니의 보편성은 특정한 연령 집단에게만 적용된다. 심지어 임신한 여자에게서 나타나는 보편성과 같은 방식으로 적용할 수도 있다.

 

 

 

대체로 보편성은 선천성이나 인간 본성과 연결되고 다양성은 후천성이나 문화와 연결된다. 따라서 보편적인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이것은 인간 본성이다라는 본성 가설에 대한 검증에 쓸 수 있다. 물론 100% 확실한 검증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모든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이 반드시 선천적 인간 본성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어쩌면 수평적 문화적 전파에 의해 보편성을 획득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명 사회와 전혀 접촉이 없었던 원시 부족에게서도 똑 같은 특성이 관찰된다면 수평적 문화적 전파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어쩌면 수직적 문화적 전달 때문에 보편적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인류의 직계 조상이 멸종 직전까지 가서 전체 인구가 수천 명 정도로 줄어들었을 때가 있었다고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 때의 문화 중 일부가 모든 문화권에 수직적으로 전달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모든 문화권에 공통적인 환경 때문에 보편성이 나타나는지도 모른다. 예컨대 태양이라는 개념이 보편적이라고 해서 태양 개념이 선천적인 인간 본성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모든 인간들이 사는 곳에서 태양이 보이기 때문에 그런 개념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 본성이다는 본성 가설이다. 반면 이것은 적응이다는 적응 가설이다. 이 두 가지 형태의 가설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인간 본성 중에는 부산물도 있다. 예컨대 뼈의 흰 색과 피의 빨간 색은 부산물로 보는 것이 대세다. 모든 문화권의 (거의) 모든 사람들의 뼈가 흰 색이라는 것이 밝혀질 때 뼈가 흰 색인 것은 인간 본성이다라고 어느 정도 확신 있게 결론 내려도 될 것이다. 하지만 뼈의 흰 색은 적응이다. 즉 우리 조상들 중에 뼈가 흰 색이었던 조상이 그렇지 않았던 조상에 비해 그 흰 색 덕분에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뼈가 흰 색이 되는 방향으로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는 적응 명제가 보편성으로 입증되었다고 보면 안 된다.

 

보편성을 보이지 않을 때에는 본성 가설 또는 적응 가설을 심각하게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인간은 종교를 믿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는 식의 적응 가설을 살펴보자. 인간은 보편적으로 종교를 믿는가? 아니다. 예컨대, 한국인의 절반 정도는 비종교인이다.

 

물론 한국인의 절반 정도가 비종교인이라고 해서 본성 가설이 100% 무너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것은 어떤 희한한 왕국의 희한한 왕이 그 왕국의 인구 절반의 새끼 손가락을 절단하도록 만들었다고 해서 인간의 손가락은 열 개다라는 본성 명제가 무너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종교를 믿는 것이 인간 본성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어떤 희한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인구의 절반 정도가 비종교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이런 설명이 거의 가망성이 없어 보이지만 어쨌든 이런 식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보편성을 인류의 수준에서 찾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유인원의 보편성을 따져볼 수도 있고, 영장류의 보편성을 따져볼 수도 있고, 포유류의 보편성을 따져볼 수도 있고, 척추 동물의 보편성을 따져볼 수도 있다.

 

만약 어떤 특성이 포유류 수준에서 보편성을 보인다면 인간 본성 가설이 힘을 얻을 것이다. 예컨대 어머니-아들 사이의 근친 상간을 피하는 경향은 포유류에게서 거의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사실은 근친 상간 회피 경향은 적응이다라는 가설에 힘을 더해 준다. 하지만 속단은 금물이다. 포유류에게서 거의 보편적으로 나타난다고 해서 꼭 인간에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보장은 없다. 인간이 예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요컨대, 보편성 여부를 따져보는 것은 본성 가설을 검증하는 괜찮은 전략이다. 이 때 본성 가설과 적응 가설이 다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보편성이 나타난다고 해서 곧바로 인간 본성이다이라는 결론으로 직행해서도 안 되고, 보편성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인간 본성이 아니다라는 결론으로 직행해서도 안 된다. 더 확실한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는 다른 증거들도 수집해야 한다.

 

 

 

2011-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