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일리의 시계

 

설계의 논증(argument from design)는 기원은 오래되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 1743-1805)의 『Natural Theology(자연 신학, 1802)』에서부터 시작하겠다.

 

페일리는 시계의 예를 든다. 잘 작동하는 시계의 구조를 살펴보면 복잡하고, 정교하고, 교묘하기 짝이 없다. 각 부품들은 시각을 알리는 기능을 하도록 서로 잘 맞물려 있다. 페일리는 이런 시계가 저절로 또는 우연히 생길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졌으며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시계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적 존재인 시계공이 있어서 시계를 의식적으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페일리는 이제 인간의 눈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의 눈은 시계보다 더 복잡하고, 더 정교하고, 더 교묘하다. 각 부품들은 시각이라는 기능을 하도록 서로 잘 맞물려 있다. 페일리는 이제 이런 눈이 저절로 또는 우연히 생길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은 던졌으며 마찬가지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l       각막이 투명하기 때문에 빛이 망막까지 도달할 수 있다. 각막이 투명한 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l       수정체가 투명하기 때문에 빛이 망막까지 도달할 수 있다. 수정체가 투명한 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l       수정체의 두께를 조절함으로써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수정체에 달린 근육이 그 두께를 조절할 수 있도록 생긴 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l       망막에 있는 원추체(cone)와 간상체(rod)는 뇌에 연결되어 있어서 시각 정보를 뇌에 전달할 수 있다. 그런 식의 연결이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l       홍채는 빛의 양을 조절할 수 있도록 생겼다. 홍채가 그렇게 생긴 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눈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은 이런 식의 이야기를 담은 목록을 아주 길게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우연히 조합되어서 시각이라는 기능을 잘 하도록 눈이 생겨먹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이상하다. 이런 면에서 눈은 시계와 마찬가지로 아주 특별한 구조이며 특별한 구조에는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다.

 

시계를 설계한 시계공이 있듯이 눈을 설계한 지적 존재가 있어야 말이 된다는 것이 페일리의 결론이며 그가 보기에 그런 지적 존재는 신이다. 이로써 페일리는 신의 존재를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다윈의 『종의 기원』

 

젊은 시절에 다윈은 페일리의 글을 읽었으며 설계의 논증에 매혹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연 선택 이론을 발견하면서 페일리의 설계의 논증을 반쯤은 거부하게 된다. 반쯤 거부했다는 말을 뒤집어보면 반쯤은 여전히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다윈은 페일리의 이야기 중 무엇을 거부하고 무엇을 받아들였나?

 

다윈 역시 페일리처럼 시계나 동물의 눈처럼 교묘하기 짝이 없는 구조에는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저절로 또는 우연히 그런 구조가 생길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다윈은 설계의 논증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다윈은 신이 의식적으로 눈을 설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에 따르면 자연 선택이라는 특별한 과정이 특별한 구조인 눈을 설계했다. 이런 면에서 다윈은 페일리 생각을 거부했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어떻게 자연 선택이 눈처럼 교묘한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했다. 요컨대 페일리는 특별한 구조가 있을 때 그것이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보았고 다윈은 그것이 자연 선택이 작동했다는 증거라고 보았다.

 

 

 

 

 

다윈 이후

 

다윈 이후에 여러 진화 생물학자들과 진화 심리학자들이 설계의 논증을 아주 좋아했다. 여기에서는 몇 명만 살펴보겠다.

 

아마 설계의 논증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인용되는 진화 생물학자는 조지 윌리엄스(George C. Williams)인 것 같다. 윌리엄스는 1966년에 출간한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 A Critique of Some Current Evolutionary Thought』와 1996년에 출간한 『진화의 미스터리: 조지 윌리엄스가 들려주는 자연 선택의 힘』에서 설계의 논증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화의 미스터리』는 대중을 위해 쓴 책이고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는 생물학자를 위해 쓴 책이기 때문에 우선 쉬운 전자부터 읽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윌리엄스를 몹시 좋아하는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역시 설계의 논증을 좋아한다. 1986(초판)년에 출간 『눈먼 시계공: 진화론은 세계가 설계되지 않았음을 어떻게 밝혀내는가(The Blind Watchmaker: Why the evidence of evolution reveals a universe without design)』에서 도킨스는 설계의 논증에 대해 상세히 다룬다. 페일리를 떠올리게 하는 시계공 앞에 눈먼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자연 선택이 의식적 설계가 아니라 무의식적 과정임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설계의 논증에 대해 궁금한 사람에게는 상당히 쉬운 이 책을 제일 먼저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진화 심리학자들 중에는 주요 논문들을 공동 명의로 발표한 존 투비(John Tooby) & 리더 코스미디스(Leda Cosmides)가 특히 설계의 논증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들의 글은 초보자가 읽기에는 상당히 어렵다. 우선 다음 두 편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진화 심리학의 개념적 기초」, http://cafe.daum.net/Psychoanalyse/Glrk/44

Conceptual Foundations of Evolutionary Psychology(2005), The Handbook of Evolutionary Psychology, edited by David M. Buss. http://www.psych.ucsb.edu/research/cep/papers/bussconceptual05.pdf

 

The Psychological Foundations of Culture(문화의 심리적 기초, 1992), The Adapted Mind: Evolutionary Psychology and the Generation of Culture, edited by Jerome H. Barkow, Leda Cosmides, and John Tooby, http://www.psych.ucsb.edu/research/cep/papers/pfc92.pdf

 

설계의 논증을 좋아하는 진화론자들에 따르면 눈처럼 교묘한 구조를 설명할 수 있는 방식이 지금까지 두 가지 밖에 제시되지 않았다. 첫째는 신이나 외계인 같은 지적인 존재가 의식적으로 설계했다는 설명이고, 둘째는 자연 선택이라는 무의식적 과정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만약 신이나 외계인에 의한 설계를 믿지 않는다면 자연 선택 말고 다른 대안이 없다. 복잡계 이론이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연 선택과 결합되지 않고 복잡계 이론 혼자서 눈과 같은 구조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현대 진화 생물학자들은 눈과 같은 구조에 설계의 논증을 적용하는 것에는 거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 같다. 즉 눈이 자연 선택에 의한 적응이라는 설명에 거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 같다. 적응론에 따르면, 우리에게 지금과 같은 눈이 있는 이유는 우리 조상들 중에 더 잘 보았던 개체가 그렇지 못했던 개체보다 더 잘 번식했기에 자연 선택에 의해 눈이 점점 더 복잡하고, 정교하고, 교묘하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거미줄

 

설계의 논증은 생물의 몸에 있는 구조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거미줄과 같이 몸 바깥에 있는 것에도 설계의 논증이 적용될 수 있다. 인간의 눈만큼은 못할지라도 거미줄도 만만치 않게 교묘하게 생겨 먹었다. 그리고 작은 곤충을 잡는 기능을 아주 잘 하도록 생겨 먹었다.

 

많은 진화 생물학자들이 거미줄에 설계의 논증을 적용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 것 같다. 옛날에 더 잘 보았던 인간의 조상이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자연 선택에 의해 현재의 인간의 눈과 같은 구조가 진화했듯이, 옛날에 거미줄을 더 잘 쳐서 먹이를 더 잘 잡아먹었던 거미의 조상이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자연 선택에 의해 현재의 거미의 거미줄과 같은 구조가 진화했다는 식의 설명이다.

 

 

 

 

 

컴퓨터

 

그렇다면 컴퓨터는 어떤가? 컴퓨터도 그 교묘함이 대단하다. CPU, 메모리, 하드 드라이브, 마우스, 키보드, 모니터 등이 잘 결합되어 어떤 일을 상당히 잘 해낸다. 그렇다면 거미줄처럼 컴퓨터도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인 적응(adaptation)인가? 옛날에 컴퓨터를 더 잘 만들었던 인간이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컴퓨터가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한 것인가?

 

물론 아니다. 거미 또는 거미의 조상이 거미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 되었기 때문에 자연 선택에 의해 거미줄이 더 세련되게 진화할 수 있었다. 반면 인간이 컴퓨터를 만든 기간은 인간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찰나에 불과하다. 따라서 컴퓨터가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인 적응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컴퓨터가 저절로 또는 우연히 생기는 것도 아니다. 컴퓨터의 특별한 구조에는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컴퓨터의 기원을 알고 있다. 컴퓨터는 지적 존재인 인간이 만들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지능의 기원은 무엇인가? 여기에 자연 선택이 개입된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인간은 지능이 높아지고 복잡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했으며 여기에 자연 선택이 개입되었다.

 

컴퓨터는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한 인간 지능의 부산물(by-product)이다. 인간의 눈이나 거미의 거미줄이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인 적응이라면 컴퓨터는 자연 선택의 간접적 산물인 부산물이다.

 

교묘한 어떤 구조가 있다고 해서 항상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인 적응이라고 볼 수는 없다. 어쨌든 교묘한 구조에는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며 여전히 우리에게는 신 말고는 자연 선택이 유일한 설명이다. 복잡계 이론을 이용한 설명도 자연 선택과 결합해야 힘을 발휘한다. 따라서 컴퓨터와 같은 교묘한 인공물, 피아노 연주와 갈은 교묘한 능력 등 역시 결국 자연 선택을 이용해서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것들은 자연 선택의 간접적 산물인 부산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산물은 항상 어떤 적응의 부산물이기 때문에 컴퓨터와 같은 것들도 결국 적응론적 설명을 피해갈 수 없다.

 

 

 

 

 

과거를 몰라도 때가 있다

 

눈과 같이 어떤 기능을 잘 하도록 정교하게 생겨 먹은 신체 구조를 어떤 동물에게서 발견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구조는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인 적응이거나 간접적 산물인 부산물이다. 부산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동물의 과거 진화 역사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그 구조가 적응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진화론적 설명에는 보통 과거 진화 역사에 대한 재구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설계의 논증의 경우에는 그런 재구성 없이도 적응론적 결론에 이를 수 있을 때가 있다.

 

 

 

 

 

복잡하지 않을

 

눈처럼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고, 교묘한 구조는 적응이거나 적응의 부산물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복잡하지 않고, 정교하지 않고, 교묘하지 않은 조잡한 구조가 적응이 아닌 것은 아니다. 조잡한 적응도 존재할 수 있다. 인간의 눈의 진화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의 조상의 눈은 조잡했을 것이다. 이 때에도 눈은 적응이었다.

 

자연 선택이 항상 복잡성, 정교함, 교묘함의 증가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신체 구조에 큰 변화가 없이 몸집이 커지거나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도 자연 선택이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복잡성, 정교함, 교묘함이 작아지는 방향으로 자연 선택이 일어날 수도 있다. 잘 작동하며 복잡하게 생긴 눈이 있는 동물이 빛이 사실상 들어오지 않는 동굴에서 살기 시작해서 오랜 기간 진화하면 보통 결국 눈이 완전히 퇴화한다(자체 발광하는 희한한 생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아마 쓸모도 없는 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원을 절약하여 다른 곳에 쓰는 개체가 더 잘 번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럴 때에는 자연 선택에 의한 퇴화가 일어나서 오히려 복잡성이 감소한다.

 

 

 

 

 

2011-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