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커님이 일부러 외면하는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잘 못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바이커님, 김대호님 등의 논의에는 유시민과 유사한 정서적 교감이 있는거 같다. 동아일보 칼럼 유시민의 세상보기를 보면, 당시 정부여당이 김대중과 새천년민주당이었기때문에 그런것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이들이 가지는 김대중과 호남에 대한 편견을 느낄 수 있다. 386세대는 광주때문에 호남에 부채의식을 느끼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작 호남에 필요한 것은 부채의식이 아니다. 이건 어쩌면 광주와 80년대를 겪어보지 않은 386 다음 세대인 나와의 세대차이인 것 같기도 하다. 반호남주의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내가 느끼는 386의 호남에 대한 편견과 부채의식은 비유하자면 김영희와 김태호의 이런 인식차이와 비슷하다. 


왓치맨님이 적은 댓글이다. 

<보너스> 김태호가 생각하는 공익

김혜리: MBC 예능의 전통적 특징은 공익성과 휴머니티의 강조입니다. <무한도전> 역시 ‘사랑의 도서관’, 달력 만들기 등 봉사와 기부 컨셉의 기획을 비롯해 ‘벼농사’ 특집, 자영업자 살리기를 표방한 ‘박명수의 기습공격’을 만들었습니다. 공익성을 강조하는 방법도 자선의 형태부터 사회적 약자의 시선을 보여주는 접근법까지 다양할 텐데요. <무한도전>은 이 부분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나요? 

김태호: 저희가 제일 경계하는 것이 ‘자뻑’이에요. 우리가 높은 데에 있고 베푸는 방식으로 나누는 것이죠. <느낌표>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러브하우스’를 하면서 일종의 거래가 아닐까 고민했어요. 어려운 사람의 신분을 노출하고 슬픔을 다시 끄집어내 상처를 보여준 다음 그 ‘대가’로 집을 지어주고 도움을 주는 게 아닌가 하는 불편함이었죠. 가출 청소년을 찾아다닐 때, 딸을 찾아나선 아버지가 속옷 바람이어야 하는데 제대로 옷을 입고 나와서 헐레벌떡한 느낌이 없다고 선배한테 야단맞은 일이 있어요. 전 표정만으로 다 보여줬다고 생각했고요. ‘러브하우스’도 방송국에서 간다고 말씀드리면 제일 좋은 옷을 입고 화장도 하고 계신데 리얼함이 떨어진다고 지우라고 시키는 일이 있었어요. 그런 게 너무 싫어서 공익은 다시 안 한다고 결심했는데 <무한도전>을 하다 보니 어떻게든 나누고 싶었어요. 3, 4년 전 연말 방영분에서 몰래 어려운 분들의 집 앞에 선물을 놓고 왔죠. 

김혜리: 그런데 도움받은 분들의 반응을 보여주는 장면이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김태호: 그분들을 노출하지 않았지만 다음날 아침 집 앞의 용달차를 보았을 때 가족의 아버지가 모든 걸 함축하는 리액션을 하셨어요. “오, 하나님!” 하는 한마디였죠. 치킨집과 삼겹살집을 찾아간 ‘박명수의 기습공격’은 ‘신동엽의 신장개업’을 저희 방식으로 새롭게 접근한 거예요. 거기서 음식점 주인, 먹으러 간 운동선수들, 돈을 쓰는 박명수, 어느 하나 밑지는 장사가 아니거든요. 초대된 선수들은 잘 먹어서 좋고 장사하시는 분들은 불로소득이 아니니까 떳떳하게 돈을 받을 수 있고 저희는 기쁨을 나눠서 좋고 세 가지가 결부돼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공익도 거품은 빼고 진실을 돋보기처럼 확장해서 보여주는 쪽이 맞지 않나 싶어요


이 글을 보면서 난 김태호의 생각에 더 친숙함을 느낀다. 386다음세대인 내가 유시민의 칼럼, 바이커님의 지역주의를 부정하는 듯한 미묘한 태도, 김대호님의 '호남기득권'(최근에는 이런 용어를 '호남과잉대표성'으로 바꾼 듯하다)을 전제로 한 민주당 비판에서 느끼는 이질감과 비슷하다. 호남차별 문제를 제기하면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을 무의식속에서 끄집어내며 마지못해 긍정하는 듯한 태도나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진보적인 척하는 태도는 보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내가 지역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된건 별거 없다. 의식화의 영향도 아니고, 무슨 대단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whataday님도 가끔 언급하시는 불쾌할 정도로 매너없는 경상도 사투리와 그들끼리의 패거리즘, 그에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호남출신들의 출신지역 감추기와 출신지역 노출에 대한 미묘한 두려움들을 느끼면서 부터이다. 본격적인 영남인 커뮤니티에 들어오면서 타지인인 나조차 수도 없이 들었던 호남인들에 대한 편견, 비방... 그런 것들을 보면서 소위 '밥상머리' 교육이란 것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바이커님 블로그에 댓글 다는 분이나 아크로에 몇몇 분들 호남향우회 얘기 목구멍까지 올라올것 아는데, 호남향우회는 그 관련커뮤니티에 들어가지 않으면 별 상관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반호남주의는 일상적으로 때로는 공공연하게 때로는 은밀하게 지속된다. 내가 생각하는 지역주의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은 간단하다. 호남인들도 당신들이 가지고 있고 긍정하는 욕망을 똑같이 가지고 있다는 것만 인정하면 된다. 난 영남사람들만이 무식하고 매너없고 탐욕스럽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개별적인 사례들이 특정집단에 대한 편견으로 확대되고 집요하게 반복재생되는 것을 난 이전에는 본적이 없고, 다른 지역에 적용되는 경우를 본적이 없다. 

다행히 내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거나, 내가 어려서 그런 속내를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난 이 문제가 생각보다 견고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매우 가학적이며 변태적이라서 참을 수가 없다. 내가 유시민에게 극단적인 거부감을 내비치는 것은 유시민과 '영남'개혁세력이란 자들이 호남에게 강요하는 정치구조가 폭력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한나라당보다 더 양아치스럽고 더 잔인하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에 유시민이 적은 칼럼들을 보자. 


<모래시계 세대가 보는 DJ>

김영삼씨는 DJ를 독재자로 규정했다전임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을 이렇게 비난한 일은 일찍이 없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한술 더 떠 제민주화 투쟁을 벌이겠노라고 선언했다. YS는 문민정부의 정통성을 자랑하기 위해 틈날 때마다 6월 민주항쟁을 예찬하곤 했다이총재도 '2'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걸 보면 유신과 5공 시대 반독재투쟁의 역사적 정통성을 흔쾌히 인정하는 모양이다어쩐 일일까정작 반독재투쟁으로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던 모래시계 또는 386세대 유권자들은 두 분의 의분과 비장감에 별로 공감하는 기색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변함없이 반복되는 국회의 날치기 파동을청와대만 바라보는 집권여당 국민회의의 무기력을일하는 건 시원치도 않으면서 제몫 챙기는 데는 고래심줄 같은 공동여당 자민련을 바라보면서 '모래시계'들은 정권교체만으로는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짙은 실망감을 토로한다이들은 지금 김대중 정부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지를 놓고 고민중이다.


그 고민의 중심에는 20년째 이런 의문이 놓여 있다. "우리에게 DJ는 무엇인가?"


이제 마흔 고개에 들어선 모래시계 세대에게 80년의 봄의 DJ는 그저 유력한 야당 대통령 후보에 불과했다.


하지만 5.18 '광주만의 희생'에 대한 집단적 채무의식을 낳았고이것은 87년 대선에서 DJ에 대한 재야의 비판적 지지라는 정치적 연대로 표출됐다. "우리 당을 발판으로 진보세력의 정치적 진출을 도모하라"고 공언한 DJ의 상대적 진보성 또는 개방적 자세는 일부에서는 독립적 진보세력의 정치적 진출을 방해하기 위한 술책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폭넓은 호응을 얻었다.


내각제를 고리로 한 DJP연합과 보수행보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안이 없었던 모래시계들은 97년 대선에서 DJ의 마지막 정치도박을 마지못해 추인했다.


DJ는 이른바 3김 시대에 속한 정치인 가운데 다음 세대의 가치관과 소망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마음의 문을 연 유일한 지도자이다.


DJ집권 2년째를 맞은 지금 80년 광주 이후 지속되어온 둘 사이의 정치적 연대는 다시 한번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험대에 올라있다.


16대 총선을 코앞에 두고 '젊은 피 수혈'을 추진하는 김대통령은 참여연대 국제인권센터 차미경 국장이 이 단체 기관지 ;참여사회' 99 2월호에서 한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을 것같다.


"개혁에 대한 기대와 아시아의 만델라로 불리는 인권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이미 사라지고 있다그 배신의 기분이 자못 우울하다더 이상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나는 인권개혁과 관련해 마지막 희망을 깨끗이 지워버리고 싶다한가닥의 미련보다는 깨끗한 절망이 오히려 새벽공기처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을테니까"


차국장이 '한가닥의 미련'을 완전히 끊어버렸다는 증거는 아직은 없다하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회의는 직시해야 한다. '젊은 피몇몇을 수혈하는 정도로는 정치적 사상적 다원주의와 민주적 리더십을 바라는 젊은 세대를 사로잡을 수 없다는 것을.


80년대 '1민주화 운동'이 타도대상으로 겨냥했던 민정당을 승계한 한나라당에도 진심으로 권고한다반독재투쟁에 앞서 권력의 금단증상과 지역주의의 유혹을 이겨내기 위한 '자기와의 투쟁'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라고. (동아일보, 유시민의 세상보기 1999.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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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12월에 이루어진 것은 정권교체가 아니라 DJ '대통령 취직'이었던 것인지 모른다


청와대 비서실은 DJ면담 예정자들을 상대로 혹시 할지도 모를 '싫은 소리'를 서면으로 제출받아 미리미리 솎아내는 일에 열심이라고 한다. 의도적 조작의 혐의가 짙은 여론조사로 장난을 치는 아부꾼들에게 곁을 주고, 하필이면 눈곱만큼의 개혁의지도 없는 법무장관을 감싸느라 '여론충돌 실험'을 감행하는 DJ를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돈선거 실상을 폭로한 신문사를 고소하는 적반하장, 특검제와 인사청문회 공약을 저버림으로써 자초한 '김태정 파동', 개혁의 종언을 예고하는 제2기 내각의 면모, 준법각서라는 괴이한 변종을 낳은 인권정책 등 '국민의 정부'는 스스로를 과거의 정권과 구별짓는 데 실패했다.


힘은 힘대로 썼지만 재벌개혁에는 별 진전이 없고, 송장이 된 은행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 동안 대다수 근로계층은 임금삭감과 정리해고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에 필수적인 세무행정 인프라를 갖추지도 않은 채 국민연금 확대를 강행함으로써 그 훌륭한 제도를 원망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외환위기 극복의 공적이나 일관성있는 대북정책은 마땅히 높이 평가해야 하나, 한 두가지 잘한 점도 없는 정부가 어디 있겠는가.


작금의 위기는 외환이 아니라 내우이다. 야당은 지리멸렬하고 시민단체는 우호적이며 '반개혁 세력'이 조직화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김대중 정권의 위기는 고관집도둑사건과 돈으로 도배한 재보궐선거, 옷로비 사건등에서 노출된 집권세력의 '정치적 방탕'과 국민연금 및 한일어업협정 파동에서 드러난 정책적 무능에서 빚어진 것이다. 남을 욕할 이유가 없다.


DJP연합의 기반인 호남과 충청 유권자들은 할 말이 없다.


오랜 세월 연대감을 표명했던 모래시계 세대와 386세대는 한가닥 남겨놓았던 DJ에 대한 미련을 끊어야 할 때가 왔음을 예감한다. (하략) (동아일보, 유시민의 세상보기 1999.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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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반 주사파의 출현의 심리적 배경은 민족주의적 '체제열등감'이다. (중략) 그로부터 15,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인민의 먹을거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북한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우수한 국민경제를 만들었다. 온 국민이 힘을 모아 군사독재를 마감하고 절차적 정통성을 확보한 민주정부를 세웠다. 항일과 친일의 화해할 수 없는 길을 걸었던 세대는 이미 현실의 무대를 떠났다. 이제 '체제 열등감'의 근거는 사라졌다 (하략)(동아일보, 유시민의 세상보기, 1999.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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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님께>


미증유의 경제 난국을 극복하느라 불철주야 애쓴 노고에 우선 깊은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보도에 따르면 99년 경제성장률이 무려 10%에 육박할 거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바닥을 치고 있으며, 집권당 국민회의는 '수평적 정권교체'의 기쁨을 맛본 지 불과 2년만에 간판을 내리게 됐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던 것일까요?


저는 김대중 정부의 성공과 나라의 번영을 바라는 유권자로서 대통령님의 상황인식과 대처방식에 대한 이견을 말하고자 합니다. 5월 김태정씨를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했을 때 참여연대는 '신은 너무 멀리 있고 황제는 너무 높이 있다'는 러시아 속담을 인용하면서 청와대로 보내던 '개혁통신'을 중단한 바 있습니다. 그 때 저는 국민여론에 맞서 '정치적 충돌실험'을 감행하는 대통령이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정치인 김대중'이 맞는지를 물었습니다. 대통령님은 이 모든 항의를 묵살했습니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인의 장막'을 경계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저는 대통령님이 현금의 정치적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내놓은 대안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가칭'새천년 민주신당'은 정치적 신념과 전력을 따지지 않고 사람을 끌어 모아 무슨 개혁을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습니다.


87년 평민당을 창당하면서 "대통령 선거에서 지면 좋은 정당을 만들겠노라"고 한 말을 기억합니까? 이 약속은 아직 지켜지지 않았고, 이대로 나가면 민주신당 역시 민주적으로 스스로 노선과 정책을 결정하지 못하고 총재의 뜻만을 받드는 'DJ'이 되고말 것입니다.


경제분야와 대북정책에서 거둔 성공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이 정치적 궁지에 빠진 원인이 무엇입니까. '수구세력의 저항과 음모'때문이 아니라 개혁의지를 포기하고 제풀에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인사청문회와 특검제 등 중요한 선거공약을 폐기하거나 지키는 시늉만 했습니다. 국정원과 검찰 등 권력기관을 곁에 두고 편하게 정치를 하는 길로 너무 일찍 들어서버린 탓으로 '언론문건 파동' '옷로비 은폐조작 파문' 따위의 정치적 추문이 연이어 터진 것입니다.


'동교동계 참모의 전진배치'로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님은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자리를 이른바 '동교동 가신'으로 채웠습니다. 민주신당에서 조직과 기획을 담당하는 요직도 모두 동교동계 의원들이 차지했습니다. 게다가 대통령님은 며칠전 국민회의 의원들을 불러모아 거의 혼자서만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애당심'을 특별히 강조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간 국민회의를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줍니다. 나름의 뚜렷한 소신과 역량을 가진 정치인들이 국민회의에 많이 있는데도 대통령님께서 '예스 맨'만을 중요한다는 비판이 들리지 않는지요.


대통령님.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십시오. 대통령님의 독선을 지적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저 개인은 앞으로 대통령님을 비판하지 않을 것입니다. 희망과 애정을 잃으면 비판할 의욕도 잃게 됩니다.


저는 대통령님에 대한 기대를 이제 온전히 접었습니다. 2년이면 실망하기에 충분히 긴 세월이었습니다. 미움보다 더 아픈 것이 냉소와 무관심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통령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동아일보, 유시민의 세상보기 1999.12.07)




유시민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민주정부를 노태우 정부로 본다. 형식논리로 보면 틀린 것은 없다. 그러나, 글 행간에서 미묘하게 느껴지는 김대중에 대한 편견, 그리고 소위 모래시계 386세대의 입을 빌어 김대중에 대한 평가는 김대중의 진보성과 민주성을 흔쾌히 인정하지 않고,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때문에, 김대중의 '정치도박'을 마지못해 추인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다. 


그러나, 김영삼의 반독재투쟁, 이회창의 제2의 민주화 등에 대해서는 386세대가 '별로 공감하는 기색'이 없다고 에둘러 비판한다. 김대중 정권의 위기는 '수구세력의 음모와 저항이 아니라 개혁의지의 실종'때문이며, 외환이 아니라 내우라고 규정한다. 영남지역주의세력의 3당야합 역시 김종필의 내각제를 조건으로 이루어졌고, 그들의 수구성, 보수성은 말할 필요도 없음에도 그런 것들에 대해서 어떤 공개적 비판을 했는지 모르겠다. 나아가, DJP연합의 지지기반인 호남과 충청의 유권자는 할말이 없다며 유권자를 비난하는 지경에 이른다. 

87년의 지역별 몰표는 모두 같았지만 그 책임은 김대중에게 더 물었고, 영남패권세력의 3당야합을 승인하고 초원복집 사건을 묵인하고 영남패권세력의 정권연장의 기반이 된 영남유권자는 김대중 정권 탄생전에도 그 후에도, 유시민이 경애해 마지 않는 노무현 정권 탄생 전에도 그 후에도 달라진 것이 없다. 호남인들의 전폭적 지지를 이끌어내고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초석이 됐던 부산공터연설과 합동유세를 기억해보자. 허태열은 '살기좋아졌다는 청중에게 전라도에서 왔냐고 조롱을 하고, 전라도 정권 밑에서 경상도의 아들딸들은 서울대를나와도 전라도 정권의 노예로 일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영남사람들은 부산싸나이 노무현이 '전라도당'이기 때문에 찍어줄 수 없다며 허태열에게 압도적으로 지지를 보냈다. 그 뒤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난 잘 모르겠다. 



난 유시민을 반대한다. 유시민이 김대중을 향해 쏟아냈던 수많은 독설과 모래시계 386의 입을 빌어 토해낸 정치개혁에 대한 많은 비판들은 세월이 지나 고스란히 노무현과 그 노무현을 망친(?) 유시민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시민이 비판했던 '여론충돌실험'은 노무현 정부에서 정점에 달했고, 코드정치 비판에 동교동계의 전진배치를 비판했던 유시민은 '코드정치는 당연한 것'이라며 스스로 말한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의 역할을 다했다. 동일한 사안에서도 수시로 바뀌는 말과 입장, 그리고 민주당에 대한 증오를 쏟아내고 분당을 주도하고(유시민은 나중에 합류한 것일뿐이라는 구차한 변명은 하지 말자) 결국엔 지지층의 분열을 이끌어냈다. 


한국정치사상 유래없는 과반수 이상 의석을 획득한 정당의 핵심적 인물이었음에도 정치투쟁에 골몰하며 정치력을 낭비하고도 '수구언론과 한나라당 탓' 하면서 여론충돌실험을 강행했던 그가 이룬 개혁은 도대체 무엇인지. 정치신념과 전력을 따지지 않고 사람을 끌어모아 무슨 개혁을 하냐던 유시민은 영남출신 한나라당 출신들을 끌어모으고, 수구세력 5공 인사의 당선을 위해 발벗고 뛰면서 영남1석이 호남10석보다 중요하다고(신기남의 발언이라고 할 사람들 있을 것이다. 유시민이 직접 한 말이 아니니 관계없다는 구차한 변명도 하지말자) 10조원 투자 운운하는 천박한 정치를 주도했다. 정치신의를 말하는 유시민이 정치신의를 보여준 적이 있을까, 신뢰를 말하는 유시민이 신뢰를 보여준 적이 있던가. 


유시민이 말한 민주정부 수립 후 15년, 민주당과 국민들은 노무현을 당선시켰고, 그뒤로 다시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노무현 5년 동안 전방위적으로 강행된 '여론충돌실험' 으로 지지층은 분열됐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생각은 바뀌었지만 유시민과 그에게 관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많은 호남인들이 광주에 대한 집단적 채무의식을 버리고 정상적인 거래를 해주길 원하지만, 유시민과 일부 386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80년 광주를 인정했다'는  자뻑으로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자신들이 높은 곳에서 베풀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반호남주의의 시선을 버리지 못하는 유시민과 일부 386들은 김대중의 '진보성'과 위대함, 호남의 기여를 제대로 보지도 인정하지도 못하는 것같다. 부채의식도 투쟁의 기억도 없는 386 이후 세대인 나는 한편으로는 그들이 지나온 시간을 이해하면서도 그들의 한계가 안타깝다. 


김영희PD의 퇴출을 보면서 나는 방송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이 같은 수준의 의식으로 정치를 바라봐주길 희망한다. 민주당과 호남기득권을 앵무새처럼 뇌까리는 유시민은 과거 자신이 가졌던 편견과 기억에서 한치의 진전도 발전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와 함께 혜성처럼 등장해 누구보다 많은 정치적 특혜를 받았지만 한국정치의 진보를 가로막고, 퇴행을 가져온 '정치도박 중독자' 유시민은 노무현의 죽음과 함께 퇴출됐어야 하는 정치인이라고 믿는다. 유시민에게 남은 참여정부의 정치적 몫은 없다. 배당은 이미 끝났고, 이익은 실현된지 오래다. 


한나라당 정두언보다도 허접한 정치인 유시민에게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반한나라당세력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