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일상의 괴리 - “나는 가수다”를 보고


MBC의 <나는 가수다>를 1회분 재방송을 시청하고 나름 괜찮은 프로라고 생각이 들어 이번 일요일엔 본방을 사수하면서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배신을 때릴 수가 있는가? 한마디로 엄청난 불쾌감을 넘어 모욕감마저 느꼈다.

최근 가요시장을 아이돌 가수들 중심의 댄스곡이 장악하고 그 소비대상들도 10대와 20대로 제한적인데다가 일회적 소비성이 강한 노래가 대부분이라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대가수들의 최선을 다하는 노래들은 깊이와 울림이 있어 나에게 새로운 감흥을 안겨주었다. 친숙한 노래들인데도 이번에는 내 삶으로 들어와 있는 듯하고, 마치 20대 때 본 옛 영화를 나이 40이 넘어 다시 보았을 때 그간의 내 인생이 투영되어 다시 그 영화가 새롭게 보이는 느낌이랄까, 정신도 고상해지는 것 같은, 카타르시스 같기도 하고, 아무튼 색다른 경험이었다.

<나는 가수다>는 7명의 가수들이 각자의 미션을 2주에 걸쳐 연습하고 무대에서 경연을  펼친 후, 500명의 방청평가단의 투표에 따라 꼴지가 탈락하고 다음 회에는 새로운 가수가 투입되는 서바이벌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가수를 순위로 매겨 서바이벌 경쟁으로 내모는 것은 예술을 모독하는 것이라는 혹평도 하는 이도 있었지만, 가수들에게 긴장감과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하게 함으로써 한 차원 높은 노래를 대중들에게 선사할 수 있고, 대중들은 새롭고 다르게 해석하고 감상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장점에 묻혀 버렸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이번 회에서 김건모가 7등 꼴찌가 되자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프로그램의 룰은 MBC 제작진이 정하는 것이지만, 출연한 가수와 방청하고 투표를 한 방청객, <나는 가수다>를 시청하는 시청자 모두가 동의한 것이고 이를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제작진과 출연진(가수와 매니저로 나온 개그맨)에 의해 그 룰이 무참히 깨어졌다. 방청객과 시청자는 완전히 객체로 전락해 버렸고, 노래를 통해 가수와 관객이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도 깨져 버렸다.

필자가 더욱 화가 난 것은 이 사태를 몰고온 인물들에 대한 실망과 그 과정에서 엿보이는 우리들의 일상과 이상과의 괴리였다. 출연한 가수들이 나름 의식이 있는(물론 1~2명은 아닌 것 같으나) 인물이었고, 윤도현의 매니저로 나온 김제동은 사회적 문제에 관심도 많은 개그맨이고, 김영희 PD는 인간미가 넘치는 예능 프로그램을 만든 능력 있는 PD였다.  김제동이 먼저 퍼포먼스는 노래 외적 요소로 김건모가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해 재도전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제기하고, 이소라가 뛰쳐 나갈 때까지는 어색한 분위기를 수습하고 꼴찌를 한 김건모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지, 룰을 깰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김영희 PD가 긴급대책회의를 하고 김건모에게 재도전 의사를 물을 때까지도 김 PD도 사태 해결을 김건모에게 넘겨 버린다고 그 무책임함을 거론했을 뿐이었지, 설마 김건모가 재도전 의사를 밝힐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건모가 재도전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것도 후배들의 간곡한(?) 부탁을 핑계로. 이 순간 필자는 배신감, 모욕감, 심지어 분노까지 치밀어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나왔다.
그리고 순간 임지현 한양대 교수의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파쇼를 극력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열심히 외쳤던 우리들이 일상에서 행하고 있는 가부장적 가족관계, 권위주의적 조직관리, 동남아인에 대한 배타적 태도, 근본주의적 민족 우선 관점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요구한 책이다.

기존의 권위를 부정하고 조롱하던 힙합과 락 가수들이 일상에서는 가수 세계의 선후배 위계와 권위주의에는 굴종하는 이중성을 보여준 것이다. 사회적 문제에 바른 말을 하던 김제동도 공적인 룰이 사적인 자기 의견이나 감정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잠재되어 있었다. 물론 김제동은 상대를 배려하는 차원의 형식적인 멘트를 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사적 배려의 관철을 통해 자기의 정체성이나 이미지 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순간적으로 판단했다고 말하면 필자가 오버해서 생각하는 것일까?

김영희 PD는 두 가지 잘못을 했다. 곤혹스런 상황을 김건모에게 넘겨버리는 무책임함을 보였고, 관계 구성원(시청자, 방청평가단, MBC 제작진, 출연 가수)들의 합의를 소수의 사람들의 결정으로 엎어버렸다. 애초에 <나는 가수다>에서 내걸었던 가수와 방청객(시청자)의 소통은 공염불이었고, 방청객과 시청자는 예능 프로그램의 단순한 소비자이고 시청률을 올려주는 객체일 뿐, 진정으로 함께하는 주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순위의 결정권은 500명의 청중평가단에게 있었으며, 출연진(가수와 개그맨)과 제작진이 그들의 결정을 번복할 권리는 없었다. 인기있는 개그맨이라고 500명의 결정을 엎을 수 없으며, 국민가수라고 해서 결과를 거부할 수 없고, 선배를 배려하는 사적 감정도 이를 어길 수 없다. 제작을 책임지는 제작진이라 해서 출연진과의 협의만으로 룰을 수정할 권한은 없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악의를 갖고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의로 포장된 의도나 욕심은 평상시에는 드러나거나 문제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지나친 겸손과 배려가 개인적인 영역을 벗어나 공적인 공간에서는 자칫 독약으로 작동할 수 있고, (보이지 않는)그 해악이 오히려 노골적으로 보이는 악의보다도 더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사태가 보여준 것 같다.

이번 사건으로 시청자(국민)들이 왜 분노하는지 출연진과 제작진들은 되새겨 보아야 한다. 노래 하나로, 혹은 가수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또 우리의 현실을 투영해 보고 있다는 사실을.


* 필자는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김제동을 좋아하고 윤도현도 좋아하며, 출연한 가수들(김건모 빼고)의 노래를 좋아한다.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가 앞으로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