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로에서 내가 쓴 글들을 집중해서 읽으시는 분은 없겠지만, 만약 그런 분이 계시다면 내가 정치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놈인지 대충 감을 잡으실 것 같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민주당이 사민주의 우파 정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언젠가 댓글로 그런 주장을 했었는데 반응은 시원찮았던 걸로 기억된다. 아마도 뜬금 없는 잠꼬대로 들리셨던듯. 

민주당의 좌클릭에 대해 많은 토론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논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불편함을 느꼈다. 민주당 좌클릭의 구체적인 표현이 바로 3무 1반 (혹은 5무 1반)인데, 이건 민주당이 대놓고 정당의 성격을 사회민주당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이 아니냐는 거였다. 그러면 당연히 그런 부분에 대한 논의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 혹시 한국에서 사회민주주의는 불가능한 제도라는 어떤 선입견이 작동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한국에서 참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은, 대놓고 자본주의를 극복하자는 (돌려말하면 사회주의하자는) 강령을 공표하는 정당은 2개나 되는데, 정작 그보다 온건한 사회민주주의를 하겠다는 정당이나 세력은 아직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막상 한국이 사회민주주의를 기반으로하는 서구 복지국가들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다. 좋은 건 알겠지만 그게 가능하겠느냐 정도이지 그거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심지어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사람들조차 그렇다. 도대체 왜 이런 솔직하지 못한 정치 지형이 생겨났을까?

사회민주주의를 화제로 꺼내면 단골로 등장하는 반박이 있다. 좌파 진영에서는 사회민주주의를 떠받칠 노동자들의 조직화가 미약한 수준인데 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주 메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사회주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그런 현실론을 주장하는걸 보면 참 곤란하고 난감하다. 노동자들이 조직화가 안되서 사회민주주의도 못하는 수준인데, 사회주의는 어떻게 하겠다는건지 알 수는 없다. 그냥 감나무밑에서 로또 맞기를 기다리겠다는 것일까?

그러나 서구 국가들의 사회민주주의에 조직된 노동자들이 꼭 필요했던 이유는, 안정적으로 사회민주당을 찍어줄 표밭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흔들림없이 사민주의 정책을 지지해줄 유권자들과 그들로부터 출연되는 자금이 선결 요건이 되는 것이다. 그들을 중핵으로 삼아 광범위한 대중들을 정책과 노선으로 묶고, 그 힘으로 자본이 생산하는 재화들이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배분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사회민주주의의 요체이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 정치적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이 없다. 그러나 이가 없다고 밥을 못먹는 건 아니다. 한국에는 바로 호남 대중들이 있다. 비록 서구의 조직화된 노동자들에 비해 규율도 부족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는 개인들의 집합이지만, 이미 오랜 시련과 고난속에서 정치적으로 각성되고 훈련된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는데 왜 애써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서구의 조직화된 노동자들도 사민당을 향해 90%가 넘은 투표를 하는지 사뭇 궁금하다. 호남 대중들이 민주당을 향해 단결된 투표력을 보여주는 현상이 단순히 지역 이기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걸까?

민주당의 좌클릭이나 3무 1반에 대한 상반된 반응도 그렇다. 대부분의 보수적인 국민들이나 영남인들이 반사적으로 빨갱이정책이라며 규탄하지만, 호남 대중들은 그 프로세스의 단순함이나 시기적절함을 지적하는 수준이지 정책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민주당이 언제라도 현실성있는 복지국가 마스터플랜을 제시하면 얼마든지 지지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호남 대중들이 아니라 전적으로 민주당의 정책 능력에 있다. 

반대로 보수 진영에서는 사회민주주의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걸고 넘어진다. 매우 지당한 말씀이다. 부모가 최저임금을 받으면 아이들은 시장표 싸구려옷을 입어야만 하고, 부모가 돈을 잘 벌면 아이들도 백화점표 명품옷을 걸칠 수 있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기업들이 돈을 잘 벌어야만 한다. 어쩌면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한 선결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죽어라 파이만 키우는 것이 문제이지, 파이을 키우는 그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시쳇말로 회사에서 뜯어먹을게 있어야 노동운동도 활성화되고 노동자들의 조직화도 더욱 수월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내가 굳이 서두에서 일부러 사민주의 우파라는 용어를 쓴 것이다. 

만약 정상적인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면, 그 정당의 존재 이유와도 같은 복지 제도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의 생산력과 국제경쟁력 확보에 필사적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아무려면 들판에 대충 방목해서 키우는 젖소보다 사료주고 관리해서 토실 토실 살찌운 젖소가 우유도 더 많이 생산할 것 아니겠는가. 되려 한나라당식 비즈니스 프랜들리, 초원에 대충 풀어놓고 각자 알아서 경쟁해서 풀뜯어 먹고 살라는 것보다 하루 세끼 사료도 주고 등도 긁어주고 예방주사도 놔주는 사민주의식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기업들에도 훨씬 좋은 것 아니겠는가라는 이야기다. 물론 아침마다 신선한 우유를 짜내는 고통은 감수해야 하겠지만. 

나는 민주당의 좌클릭 논쟁이 한단계 더 발전하여 사회민주주의의 도입에 대해서도 토론과 논쟁이 벌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호남의 몰표는 지역주의 투표다라는 이상한 색깔론을 벗으면, 한국 사회에서 진보가 걸어가야할 경로가 자동적으로 보일 것이다. 식민지시대와 반공주의와 분단과 영남패권주의로 왜곡된 한국적 정치지형에서, 호남은 그 우회로를 뚫어줄 수 있는 진보적 대중들인 것이다.

사회민주주의가 뭐 별건가? 기업들의 생산력과 경쟁력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하도록 지원하고, 그들이 창출하는 부와 재화를 노동운동과 복지를 통해 골고루 재분배하면 그게 바로 사회민주주의이다. 당의 이름이나 강령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실천하고 있는가? 그게 훨씬 더 중요하다. 이제 민주당이 그 역할을 맡아야할 때가 되었다.

호남을 중핵으로 해서 노동자 농민들과 개혁적인 중산층들과 영남을 제외한 각 지역의 소지역주의를 모두 묶어 포괄하는 진보개혁 + 호남 동맹을 사회민주주의 정책과 노선으로 묶는 것. 이것만이 기득권+영남 동맹인 한나라당을 완전하게 제압하고 한국을 경제성장과 복지를 모두 성공시켜 선진국으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