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이야기하기 훨씬 전에도, 인류에게는 이상적인 사회 혹은 지상 낙원의 도래를 희구하는 지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기독교는 하나님의 나라나 천년 왕국의 예처럼 인류의 심성에 내재된 유토피아적 염원이 상당 부분 반영된 종교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경향은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텐데, 유교에서 말하는 요순 시대나 대승불교의 미륵 사상도 그런 유토피아적 사회를 희구하는 요소라고 볼 수 있고, 홍길동의 율도국은 한국적 유토피아의 전형이라해도 무방할 것 같다.

유토피아는 '지상에는 없는 곳'이라는 본래 뜻대로, 몽상가나 종교인들의 현실성 없는 공상과 가혹한 노동과 착취, 생산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민초들의 소원이 결합한 것이었다. 그런 유토피아를 향한 인류의 열망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는 20세기 내내 사회주의 국가가 지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시도되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과학의 이름으로, 유토피아를 꿈속의 몽상이 아니라 현실의 땅에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설파한 순간 잠재되어 있던 열망이 폭발해 버린 것이다.

소비에트 연방이 자신들을 노동자 농민의 천국이라고 주장하고, 북한이 자신들을 인민들의 낙원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와 유토피아적 열망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어쩌면 사회주의는 이념에 낚인 군중들이 만들어낸 괴물같은 체제가 아니라, 이념의 힘을 빌려 유토피아적 열망을 현실화시키려했던 거대한 운동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시각이 아닐까?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들이 모두 망해버리고,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같은 나라들이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이제 유토피아를 향한 인류의 장구한 열망은 완전히 소멸되어 버린 것만 같다.

이런 의문이 든다. 과연 인간이라는 생물체가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한 유토피아는 어디까지가 한계인가라는 질문이다. 혹시 인간은, 자신이 생산하는 만큼만 소비할 수 있는 사회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존재 아닌가라는 것이다. 만약 어떤 이가 자신이 생산한 혹은 생산에 기여한 것보다 더 많은 재화를 소비하고 있다면, 그 재화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닌 다음에야 분명코 타인이 누려야할 재화를 갈취하거나 양보받은 것임에 틀림이 없다.

어쩌면 이런 명제에는 마르크스도 어느 정도 동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를 동정하고 부르주아에 분노한 것은, 생산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부르주아가 생산하는 프롤레타리아보다 오히려 더 많은 재화를 소비하는 모습에 화가 났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런식으로 따지면 어쩌면 시장주의자들도 마르크스와 같은 입장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시장주의자들이 마르크스와 달랐던 유일한 지점은 부르주아들도 생산에 기여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고, 때문에 그들이 누리는 소비 역시 정당하다는 것이지 않았을까? 어쩌면 이 부분에 대한 견해가 달라지자 모든 것이 다 달라진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 맑스의 견해가 옳다면 자본주의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가 분명할테고, 시장주의자들이 옳다면 자본주의가 오히려 정의에 부합하는 사회가 된다. 만약 그렇다면 자본주의에는 부르주아들에게 배분되는 재화가 기여에 비해 과소한가 과대한가의 문제만이 남아 있게 된다. 그러면 혹시 인류가 도달 가능한 유토피아는 자본주의의 어떤 특수한 한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일까? 어쩌면 유럽식 사민주의 국가 이상을 넘어서는 유토피아를 만들어내려는 모든 시도는 '내가 노동해서 생산한 재화는 나의 소유'라는 인간의 본성적 한계에 반하는 망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능력에 따라 생산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유토피아적 열망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꿈의 영역이 맞다는 것일까?

그러나 지구 위의 모든 국가가 유럽식 사민주의가 작동하는 체제가 된다 할지라도, 인류가 유토피아적 열망을 깨끗하게 포기하고 현실에 만족하면서 살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그 곳에서도 생산은 늘 고통스러운 과정임이 분명할테고, 인류는 여전히 더 나은 유토피아를 꿈꾸며 살 것만 같다. 어쩌면 그 꿈을 접는 순간에, 현실은 다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도 유토피아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향해 몽상가라며 손가락질하는 것에 주저한다. 아직 우리 사회는 유럽식 사민주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 사회이기에 더욱 그렇다. 어쩌면 그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아직 무언가 꿈꾸어야할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런지.

어제 자본주의 연구회라는 일단의 사회주의자들이 경찰에 연행을 당했다고 한다. 어쩌면 몽상을 꿈꾸는 그 사람들보다는, 몽상을 꿈꿀 자유마저 압살하고, 몽상마저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이 사회가 훨씬 위험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