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황해문화 '복지 논쟁, 제대로 논의하기' 특집

이와 관련돠어 김대호 소장님의 글과 홍경준 교수님 글 그리고 김진석 교수의 글에 대한 약간의 비평을 하자면,

1.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기고문 '정의 없는 복지 없다'를 통해 "복지가 진보의 핵심 의제여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진보의 입장에 서 있는 김 소장은 "한국 특유의 고통 불안 증폭 구조는 낮은 복지 수준이 주된 것이 아니라, 일자리 소득 인재 권력(자리) 명예 등 핵심적 경제사회 자원을 분배하는 1차 분배구조의 불합리성이 주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의 진보가 "2차 분배구조를 개선할 '작은 복지' 담론만 갖고 있을 뿐 1차 분배구조를 개선할 '큰 복지' 담론, 즉 민주주의 담론을 갖고 있지 않다"며, 진보의 복지 담론을 "번지수 잘못 찾은 반신자유주의"에 갇힌 것으로 비판한다. 김 소장은 "복지만으로는 부족하다. 보수는 앞바퀴에 성장을, 뒷바퀴에 복지를 끼우면 될지 모르지만 진보는 왼쪽 바퀴에 복지를, 오른쪽 바퀴에는 정의를 끼우고 이를 평화와 도덕성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가 보기엔 영남패권이 대표적인 정의의 문제로 보이는데 김대호소장은 이에 대해서는 꿀멍은 벙어리셔서 좀 그렇군요. 정의가 1차적 분배라는 것도 조금 그렇네요. 경제학에서 자원의 배분은 원칙적으로 시장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문제는 차별성장론, 자유주의교환론에 의해 부분적으로 파괴된 정의를 회복하는 과정을 바로 2차적 분배 즉 소득 재분배문제라고 봐여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다면 차별성장에 피해를 본 호남차별 강원차별의 경우는 대표적인 소득 재분배=정의=2차적 분배의 문제라고 볼 수 있고 이를 위해서는 affirmative action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하이에크도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노력을 소득 재분배로 정의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김대호소장님이 주장하듯 노동계의 일부 과도한 몫에 대한 시정도 포함시키므로써 이른바 공정한 잣대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불균형도 당연 포합됩니다. 이 과정에서 세금개혁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나아가 김대호소장님은 2차적 분배가 비로서 복지의 문제라고 하셨는데 오히려 복지는 시장모랄을 잠식하는 테제입니다. 바로 1차적 재분배 즉 시장기구, 자유주의교환론, 차별성장론의 대안으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하이에크도 이것을 연대모랄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보편적 복지는 연대모델의 핵심인 반면, 차별적 복지는 하이에크와 같은 시장주의자들도 최소한의 언저리그룹에게 시혜적으로 베풀어 체제유지를 위한 목적상 수용하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복지가 2차적 분배=정의=소득재분배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구별된다는 취지입니다.

따라서 민주당이 1차적 재분배(김대호소장님의 표현) 즉 정의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표현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남패권으로 인한 성장차별의 문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문제제기 집단이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입니다.

2.

["반면 홍경준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가 정치의 대세가 된 오늘의 사정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그는 기고문 '최근 복지국가논의의 정치경제적 함의'에서 1970년대 이후 미국의 경제적 양극화가 보수주의 운동에 의한 것임을 논증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의 이론을 인용하며 "복지의 문제는 정치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홍 교수는 "1인당 GDP 같은 경제적 변수 못지않게 복지 발전을 결정짓는 것은 권력구조나 선거제도 같은 정치적 변수"라고 지적한다.

홍 교수는 그러나 현재의 '보편적 복지 대 선별적 복지' 형태의 정치적 대립 구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는 "진보는 평등주의적 지향이 강한 스웨덴형 보편적 복지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그는 "스웨덴의 복지 원칙은 시기에 따라 상이했으며, 그것은 거시경제적 조건 변화와 그에 대응하는 사회민주당의 정치적 동원 전략에 의해 결정됐다"고 강조한다.

홍 교수에 따르면 스웨덴의 평등주의적 복지는 생애주기의 위험을 분산하는 복지로 이미 전환됐다. 그는 수직적 소득재분배 효과가 줄어들었음에도 스웨덴인들이 사회민주당을 지지하는 이유를 "사무ㆍ관리직 노동자 등 신중간층의 확대"로 꼽으며 '보편 대 선별'의 대립에서 탈피한 정치적 시각을 갖출 것을 주문한다. 또한 그는 "상대적으로 낮은 조세수입 구조를 개선해나간다 하더라도 복지 재정 확대를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홍교수의 주장은 상당부분 맞습니다. 나아가 보편적 복지와 차별적 복지가 조화되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보편적 복지가 꼭 필요한 영역도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의료 교육 양육을 들고 있습니다. 나아가 시장모랄의 함정을 타파하는 측면에서 보편적 복지의 일정부분 구축은 꼭 필요한 것이라고 봅니다. 나아가 사회간접자본으로서의 복지가 반드시 경제성장과 배치된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실질적 자유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3.

[김진석 교수는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는 것이 진보적 태도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복지정책은 결코 진보나 좌파의 독점적 의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19세기 중반 이후 독일과 프랑스에서 복지정책을 강하게 추진한 정부는 대부분 국가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가졌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보수정당도 국민적 통합과 정권의 이익을 위해 복지 확대 정책을 펴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나폴레옹 3세의 보나파르티시즘 체제나 비스마르크 체제 이때에 일부 복지가 의제가 되기도 했습니다.(유럽에서 가장 먼저 사회보장제도가 확립된게 비스마르크 시절 입니다.) 하지만 대표적인 진보의 의제인 노동법은 진보정권 즉 영국의 노동당정권하에 들어왔는지 묻고 싶습니다. 영국만 해도 글래스턴(자유당)시기 노동조합법이 제정되어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이 합법성을 가지게 되었는는데 그렇다면 이것도 자유주의적 가치(우리나라 진보진영에서는 자유주의까지 싸잡아 보수로 분류)로 부를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나아가 보나파르티시즘 체제에서는 협동 조합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김진석 교수님 논리에 의하면 노동법이 들어선 것도 보수정당이 국민통합과 정권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도입했으므로 보수적 가치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진보라는 가치를 누가 시작했는지로 따지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합니다. 중요한 것이 그것이 가지는 가치적 의미입니다. 복지는 시장모랄과는 분명 다른 관점에 있습니다. 오히려 시장모랄의 한계를 설정하는 기능이 분명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관점에서 복지를 진보적 의제로 보는 것이 그리 문제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누가 시작했느냐보다 그 범위설정의 문제에 있어서 좌우파간의 차별성이 있으므로 더욱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