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은 유전자를 50% 공유한다

 

친족 선택에 대해 설명하는 글 중에 부모와 자식은 유전자를 50% 공유한다는 식의 구절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것은 말도 안 된다.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침팬지와 인간이 유전자를 98% 이상 공유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같은 종에 속하는 부모와 자식이 유전자를 고작 50%만 공유한다니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성급한 사람은 이런 구절만 보고 역시 진화 심리학은 엉터리야라고 외칠지도 모르겠다.

 

전문 진화 심리학자들끼리 이야기할 때에는 부모와 자식은 유전자를 50% 공유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해도 별 문제가 없다. common by descent에서 by descent를 생략했다는 것을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descent는 혈통을 뜻한다. 따라서 common by descent혈통 때문에 공유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혈통 때문에 유전자를 공유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진화 심리학 첫걸음마라는 제목을 붙인 책에서 근친도(degree of relatedness) 또는 근친 계수(coefficient of relatedness, 관련 계수) 개념과 관련된 수학을 깊이 파헤치는 것은 무리다. 여기에서는 엄밀하지는 않지만 알기 쉽게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진화 심리학자가 부모와 자식은 유전자를 50% 공유한다라고 이야기할 때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근친도는 0.5이다. 어떤 유전자좌(locus)의 경우에는 모든 인간의 유전자가 똑같다. 이런 경우에는 친족인지 여부가 유전자를 공유하는지 여부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친족이 아니라도 어차피 유전자가 서로 똑같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유전자좌에 유전자 A를 하나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유전자 A는 지극히 드문 유전자라고 하자. 예컨대 그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비율이 0.001%에 불과하다고 하자. 즉 무작위로 어떤 사람을 고른다면 그 사람이 유전자 A를 가지고 있을 확률은 0.001%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가까운 친족이 유전자 A를 가지고 있을 확률은 얼마인가? 그 사람의 부모나 자식일 경우 그 확률이 50%나 된다. 왜 그런가?

 

우선 그 사람의 자식의 경우를 살펴보자. 그 사람의 자식은 그 사람의 난자 또는 정자 속에 있는 유전자를 물려 받는다. 난자 또는 정자를 만들 때에 감수분열이 일어난다. 이 때 하나의 난자 또는 정자에 유전자 A가 있을 확률은 50%. 따라서 자식에게 유전자 A가 있을 확률 역시 50%.

 

그 사람의 어머니의 경우를 살펴보자. 유전자 A가 어머니에게서 유래했을 확률이 50%이며 아버지에게 유래했을 확률이 50%. 따라서 어머니에게 유전자 A가 있을 확률이 50%.

 

이런 식으로 따져 보면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 동기(sibling, 형제자매) 사이, 사촌 사이의 근친도를 알아낼 수 있다. 아래 링크를 참조하라.

http://en.wikipedia.org/wiki/Coefficient_of_relationship

 

지극히 드문 유전자라 할지라도 가까운 친족일 경우에는 공유할 확률이 높다. common by descent는 친족이기 때문에 공유한다는 뜻이며 지극히 드문 유전자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물론 엄밀한 이해를 위해서는 근친도의 정의와 관련된 수학을 이해해야 하며 근친도를 정의하는 방법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은 유전자를 50% 공유한다는 식으로 by descent를 빼고 거칠게 표현해도 서로 오해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쓰는 글에서 이런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표현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유전적 부모, 친부모, 의붓부모

 

유전적 부모는 누구의 정자 또는 난자를 물려 받았는지를 따진다. 보통 생물학적 부모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유전적 부모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왜냐하면 유전학이 생물학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친부모와 유전적 부모를 동의어로 쓰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DNA를 이용한 친자 확인이라는 구절에서 친자는 유전적 자식을 뜻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두 개념을 구분해서 쓰겠다. 예를 들어 보면 두 개념이 어떻게 다른지 감이 잡힐 것이다. 어떤 남자와 여자가 결혼했다. 결혼 한 후 5년이 지나 자식이 태어났다. 그 자식이 태어나서 자랄 때까지 부부는 이혼하지 않았다. 이 때 그 자식은 그 남자의 친자식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그 자식은 그 남자의 유전적 자식인가? 그것은 확실하지 않다. 만약 여자가 바람을 피웠다면 유전적 자식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의붓부모는 보통 유전적 부모가 아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예를 들어 보겠다. 어떤 남자 A와 여자 B가 결혼했다. 결혼 후 2년 후에 자식이 태어났다. 그리고 또 2년이 지난 후 이혼을 했다. 그리고 B는 다른 남자 C와 재혼했다. 그러면 C는 그 자식의 의붓아버지다. 그리고 A는 그 자식의 친아버지다. 그렇다면 그 자식의 유전적 아버지는 누구인가? 만약 여자가 당시에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면 A가 유전적 아버지일 것이다. 만약 여자가 바람을 피웠다면 다른 남자가 유전적 아버지일 가능성도 있다. 만약 당시에 여자가 C와 바람을 피워서 임신을 했다면 C가 유전적 아버지다. 친아버지가 아니라 의붓아버지가 유전적 아버지인 희한한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근친도는 몇인가? 이것은 어떤 아버지인가에 달렸다. 유전적 아버지라면 0.5. 친아버지라면 몇인가? 그것은 해당 문화권에서 여자가 얼마나 바람을 피우는가에 달려 있다. 만약 해당 문화권에서 친아버지가 유전적 아버지일 확률이 90%라면 친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근친도가 0.45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의붓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근친도는 몇인가? 0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0보다는 조금이라도 클 것이다.

 

아이와 친어머니 사이 그리고 아이와 유전적 어머니 사이 모두 근친도가 0.5. 남편이 아무리 바람을 피워도 여자의 입장에서는 자기 뱃속에서 나온 자식은 자신의 유전적 자식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산부인과 병원에서 자식이 바뀌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무시해도 될 것 같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근친도는 0.5라는 구절에도 이런 복잡한 사정이 있다. 따라서 문맥을 잘 살펴야 한다.

 

 

 

 

 

완전 동기와 절반 동기

 

완전 동기(同氣)full sibling의 번역어이며 절반 동기(同氣)half sibling의 번역어이다. 이 번역어들은 내가 생각해낸 것이다. 더 나은 번역어를 누군가 제시하기 전까지는 이 번역어를 쓸 생각이다.

 

완전 동기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같은 경우를 말하고, 절반 동기는 어머니 또는 아버지가 다른 경우를 말한다. 예컨대 배다른 형제는 절반 동기다. 보통 완전 동기의 근친도는 0.5이며 절반 동기의 근친도는 0.25라고 이야기한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틀린 말이라고 볼 수 없지만 여기에도 복잡한 사정은 있다.

 

완전 동기는 두 가지 다른 것을 뜻할 수 있다. 형제인 AB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A의 친아버지는 C이며 B의 친아버지도 C이다. A의 친어머니는 D이며 B의 친어머니도 D이다. 이 때 AB는 완전 동기인가? 절반 동기인가? 친부모 개념에서 이끌어낸 개념을 쓰면 완전 동기이다. 하지만 유전적 부모 개념에서 이끌어낸 개념을 쓰면 완전 동기가 아닐 수도 있다. A의 유전적 아버지는 C이며 B의 유전적 아버지는 E인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때에는 유전적 부모 개념에서 이끌어낸 개념을 쓰면 AB는 절반 동기이다.

 

따라서 어떤 의미의 완전 동기 사이의 근친도는 0.5이며 다른 의미의 완전 동기 사이의 근친도는 0.5보다 약간은 작다.

 

절반 동기의 경우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절반 동기로 알려진 사이이지만 유전자를 살펴보면 남남일지도 모른다. 예컨대 형제 AB의 친아버지가 C라고 하자. A의 친어머니는 D이며 B의 친어머니는 E라고 하자. 이 때 형제 A, B는 통상적으로 절반 동기라고 부른다. A의 유전적 아버지는 C이며 B의 유전적 아버지는 F라고 하자. 그러면 AB는 유전적으로는 남남이다.

 

따라서 완전 동기와 절반 동기에 대한 이야기를 볼 때에도 문맥을 잘 살펴야 한다.

 

가끔 일란성 쌍둥이도 태어난다. 사실상 유전자를 완벽하게 공유하는 일란성 쌍둥이의 근친도는 1이다. 일란성 쌍둥이의 존재 때문에 동기 사이의 근친도를 따질 때 더 복잡해진다.

 

 

 

 

 

개미와 벌거숭이 두더지

 

단수배수성(haplodiploidy, 반배수성)인 개미의 경우에는 인간과 상황이 많이 다르다. 어머니가 한 수컷하고만 교미했을 때 자매 사이의 근친도가 0.5가 아니라 0.75. 벌거숭이 두더지 쥐(naked mole rat)는 근친 교배(inbreeding)가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종이다. 근친 교배를 하면 흔히 알려진 숫자보다 근친도가 더 높다.

 

개미와 벌거숭이 두더지 쥐는 모두 진사회성(eusociality)이라는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 번식을 전혀 또는 거의 하지 않는 일꾼(worker)이 존재하는 것이다. 친족 선택을 좋아하는 진화론자들은 단수배수성이나 근친 교배 때문에 근친도가 통상적인 수준보다 월등이 높기 때문에 극단적인 이타성의 예인 진사회성이 진화했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동기 사이의 근친도가 무조건 0.5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단수배수성은 아닌지, 근친 교배가 많이 이루어지지는 않는지 따져야 한다. 인간의 경우 벌거숭이 두더지 쥐만큼 극단적으로 근친 교배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사촌끼리 흔히 결혼하는 문화권도 있으며 이것이 근친도에 조금은 영향을 끼친다.

 

 

 

 

 

감수분열 구동

 

근친도를 따질 때 가정되는 것이 하나 있다. 감수분열을 해서 정자나 난자가 만들어질 때 모든 유전자좌에 있는 한 쌍의 유전자 각각에게 정확히 50%씩 기회가 부여된다고 가정된다. 하지만 이런 가정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감수분열 구동(meiotic drive)이란 어떤 유전자좌에 있는 한 쌍 중 하나가 50% 이상의 비율로 정자나 난자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이런 면에서도 근친도 개념과 관련하여 복잡한 사정이 있다.

 

엄밀한 수학에 대해서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는데도 초보자가 보기에는 근친도 개념이 상당히 골치 아프다.

 

 

 

 

 

2011-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