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황산벌>에서 김유신(정진영)은 이런 말을 한다.

 

세상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기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기야!

 

 

 

자연 선택을 이야기할 때 “최적자 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fitness”를 “적응도” 또는 “적합도”라고 번역한다.

 

<자연선택벌>이라는 영화를 만든다면 이런 대사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자연 선택은 적합한 자가 살아남는 기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적합한 기야!

 

자연 선택이 결국 생존 경쟁이라기보다는 번식 경쟁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 선택은 적합한 자가 잘 번식하는 기 아니라 잘 번식하는 자가 적합한 기야!

 

 

 

만약 “더 적합한 자”가 무슨 뜻이냐는 말에 “더 잘 번식하는 자”라고 답한다면 자연 선택 이론은 이상해진다. “더 적합한 자가 더 잘 번식한다”는 말이 “더 잘 번식하는 자가 더 잘 번식한다”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두고 동어반복(tautology)이라고 한다. “더 잘 번식하는 자가 더 잘 번식한다”는 옳은 말이긴 하지만 이런 말은 한다고 해서 과학적 이해가 증진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이런 말은 쓸모가 없다.

 

실제로 일부 과학 철학자들과 생물 철학자들이 자연 선택 이론은 동어반복일 뿐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으며 창조론자들은 신이 나서 그들의 말을 인용했다.

 

 

 

나는 자연 선택 이론이 동어반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그 이유를 써 보겠다.

 

 

 

“더 적합한 자”라는 말을 할 때 진화 생물학자는 “더 잘 번식하는 자”가 아니라 “더 잘 번식할 것 같은 자”라는 뜻으로 쓴다. 얼핏 보면 이 둘 사이에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중대한 차이가 있다.

 

사냥-채집 사회에 동갑내기 남자 둘이 있다고 하자. AB에 비해 더 잘 생기고, 더 똑똑하고, 더 건강하다. 그런데 사춘기 때 A가 벼락을 맞아서 즉사했다. 그래서 자식을 전혀 남기지 못했다. 그리고 친족을 별로 돕지도 못했다. 반면 B는 평균보다는 못 미쳤지만 나름대로 자식도 남기고 친족도 도왔다.

 

여기서 친족 돕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포괄 적합도 이론에 따르면 자신의 자식을 남기는 직접 번식도 중요하지만 친족의 직접 번식을 도움으로 달성하는 간접 번식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포괄 적합도 이론에서는 직계 자손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방계 자손(예컨대 동생의 자손)도 따진다.

 

이 때 “더 잘 번식할 것 같은 자”는 A인 반면 “더 잘 번식하는 자”는 B.

 

자연 선택 이론은 “더 잘 번식하는 자가 더 잘 번식한다가 아니라더 잘 번식할 것 같은 자가 대체로 더 잘 번식한다이다. 세상에는 가끔 AB의 경우처럼 더 잘 번식할 것 같은 자가 오히려 번식에 실패하는 일도 있지만 대규모 집단을 보면 대체로 더 잘 번식할 것 같은 자가 실제로도 더 잘 번식한다.

 

 

 

더 잘 번식할 것 같은 자가 대체로 더 잘 번식한다가 “더 잘 번식하는 자가 더 잘 번식한다만큼 노골적인(?) 동어반복은 아니지만 여전히 동어반복이라는 혐의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 봤자 여전히 동어반복이 아닐까?

 

만약 적합도를 이야기할 때 “더 잘 번식할 것 같은 자”라는 말만 한다면 동어반복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싼 것 같다. 하지만 진화 생물학자들은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위의 예에서 A는 “더 잘 번식할 것 같은 자”다. 그리고 그 이유는 A가 더 잘 생기고, 더 똑똑하고, 더 건강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더 잘 생긴 자가 대체로 더 잘 번식한다”, “더 똑똑한 자가 대체로 더 잘 번식한다”, “더 건강한 자가 대체로 더 잘 번식한다”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그리고 이것은 동어반복이 아니며 적어도 원리적으로는(in principle) 과학적 검증이 가능하다.

 

 

 

진화 생물학자들이 “더 건강한 남자가 대체로 더 잘 번식한다”라는 명제를 믿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더 건강한 남자가 더 잘 생존할 수 있으며 생존을 해야 번식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건강은 번식에 도움이 된다.

 

진화 심리학자라면 여기에 덧붙여서 다음과 같은 생각도 할 수 있다:

 

여자는 더 건강한 남자와 짝짓기하려는 경향을 진화시켰다. 따라서 건강한 남자는 짝짓기 기회를 더 많이 얻을 것이다. 건강한 남자는 생존도 더 잘 할 뿐 아니라 생존할 동안 짝짓기도 더 많이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건강한 남자가 대체로 잘 번식한다.

 

 

 

여기에서 진짜로 여자가 그런 경향을 진화시켰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글의 초점은 “자연 선택 이론은 동어반복인가?”라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설사 “여자는 더 건강한 남자와 짝짓기하려는 경향을 진화시켰다”라는 가설이 틀렸다는 것이 드러났다 하더라도 이 글의 주장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연 선택 이론에 바탕을 둔 가설이 틀렸다는 것이 입증된다면 자연 선택 이론이 동어반복이 아니라는 점이 입증된 셈이다. 동어반복은 반증될 수조차 없기 때문에 과학자들에게 무시 당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진화 생물학자들은 “더 잘 번식할 것 같은 자”라는 말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떤 형질이 번식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이런 저런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하려고 한다. “목이 더 긴 기린이 긴 목 덕분에 더 높이 있는 잎을 먹을 수 있어서 대체로 더 잘 번식한다”, “더 빠른 치타가 속도 덕분에 사냥을 더 잘 할 수 있어서 대체로 더 잘 번식한다”, “등껍질이 더 딱딱한 거북이가 더 딱딱한 껍질 덕분에 남들에게 덜 잡아 먹혀서 대체로 더 잘 번식한다”와 같은 이야기도 하는 것이다.

 

형질과 번식률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가설들 덕분에 자연 선택 이론이 동어반복이라는 욕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