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과 '김정일 장군 만세'


현정은 현대회장이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면담후 5개 정도의 성과를 챙겨왔다 (기사링크). 정부는 "민간 차원 합의일 뿐"이라고 선을 긋고 있는 실정이다 (기사링크).

필자는 부친이 중학교때 평양에서 월남을 한 '월남자 가족의 아들'이다. 이번 합의 사항중에 '추석때 이산가족 상봉'에 관한 생각을 나눠보고 싶다.

얼마전 지난 5월 오랜 암 투병 끝에 작고하신 장영희 교수의 유고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었다. 소제목중에 '오마니가 해야할 일'이란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을 읽기 전까지는 필자는 장영희 교수의 부모님께서도 이북 출신이시라는 걸 몰랐다. 아무튼 '오마니가 해야할 일' 이란 부분을 읽다 보면 고향을 등지고 38선을 넘은 월남자들의 애끓는 망향가과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며 남쪽 출신들과는 다른 자기 정체성을 구축하게 되는 월남자 가족의 자녀들 이야기가 나온다.

이중에 한 단락을 인용해 보겠다.

'남쪽에서 올라간 어느 아버지는 나이 50에 이가 다 빠지고 깡마르고 초라해진 아들 손을 잡고 서럽게 울다가 이북 TV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밀자 갑자기 일어나서 "김정일 장군 만세"를 외쳤다. 한 살도 안 된 젖먹이를 두고 와서 50년 동안 죄의식을 품고 살다가 이제 아버지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 장면을 보도하면서 남쪽의 기자는 "갑자기 카메라에 대고 김정일을 찬양하는 ㄱ씨의 모습은 주위 사람들을 처연하게 했다"고 썼다. 나는 이제껏 신문지상에서 '처연하다'는 말이 쓰인 것도, 또 그렇게 적합하게 쓰인 것도 처음 보았다.'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p. 191)

오랜 세월 부친의 모습을 보고 자란 탓인지 50년만에 자신보다 더 늙어 보이는 아들을 끌어 안고 울던 어떤 아버지의 모습이 남의 얘기같이 보이지가 않았다. 저 부분을 읽으며 참 많이 울었다.

필자의 부친은 평양제2중학교 재학중에 홀홀단신 월남을 하셨다. 부모님 고향이 평양인 분들에겐 저 학교가 무얼 뜻하는지 알거다. 이미 고향을 떠나온지가 내일모레면 60년인데도 아직 평이중, 평고보와 서문고녀출신들이 모여서 대동강이라는 잡지도 펴내고 있다. 자녀들을 위한 장학사업도 하고 나중에 통일이 되면 평양으로 가서 모교를 다시 세우실 꿈도 꾸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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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많지도 않은 친척들이 모이면 강렬한(?) 이북 사투리도 간간히 들을 수 있었다. 필자가 아는 평양사투리는 쟁개비(냄비), 넙차개(호주머니) 그리고 '개쎄마 땅~~' (준비 땅~~) 정도이다. 특히 '개쎄마 땅~~'의 경우 남한에선 '요이(用意:ようい) 땅~~' 이란 일본말이 우세했던 반면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일찌감치 진출한 평양에선 'Get set up 땅~~'이란 영어가 개쎄마 땅~~ 이란 말로 변형되어 전수되었다. 뭐 No touch 가 노다지가 된 경우와 비슷하지 싶다. 겨울이면 아버지께서 손수 만들어 주시던 김치말이도 생각이 난다. 남한에선 김치말이 국수가 유명하지만 평양사람들은 아래 사진처럼 밥을 말아서 김치말이를.. 그것도 한겨울에 자주 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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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말이 (사진 출처: http://wonmidong.tistory.com/69)


이명박 정부야 이미 대선 기간부터 대북 강경노선을 앞세웠으니 자신들의 집권철학에 맞춰 대북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 맞기는 맞을 거다. 지난 10년간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수행한 정부가 집권을 했었고 이유야 어찌되었건 그 반대방향으로 가자는 국민들의 의견이 대선과 총선에 반영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남북 이산가족 상봉같은 이슈는.. 부탁인데 대북 압박의 지랫대로 사용하지 말아주기를 간절히 부탁한다.

논리나 근거따위는 없다.

헤어진 가족간에 생사라도 확인하게 해주고 편지라도 왕래할 수 있게 정부가 좀 신경 써 주면 좋겠다. 자식 새끼에게 해 줄 것이 이북 TV 카메라에 대고 '김정일 장군 만세'라고 외치는 것 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절규가 뭘 의미하는지 좀 헤아려 달라는 말이다.

오늘따라 고향땅도 다시 밟아보지 못하시고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더 간절히 난다. 보고 싶다. '강산에'씨의 '라구요'라는 노래를 들어 본다. "...고향 생각나실 때면 소주가 필요하다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아버지..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