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지지자들 (이하 유빠) 을 영남패권주의자들로 부르는 것에 대해서, 본인들은 매우 억울해하는 것 같다. 또한 호남혐오주의자로 부르는 것에도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인다. 그들의 항변에 대해서 영남B급 인재론 또는 강남 좌파론등 다양한 버전의 공박이 있을텐데, 나는 그들의 다른 측면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를테면 유빠들 자신들은 지역주의에도 반대하고 호남도 결코 미워하지 않고 있는데, 왜 그런 누명을 씌우느냐는 항변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사모들이 애용하던 구호가 있었다. 영남에서 콩이면 호남에서도 콩이다라는 유명한 말이다. 이것은 노무현의 지역주의에 대한 인식, 즉 영남과 호남이 서로 구분되지 않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라는 뜻을 담은 말로써, 당시 호남 유권자들의 심금마저 울리던 구호였다. 영호남이 따로 구분되지 않으니 당연히 차별은 없을 것이고, 그러면 지역주의도 사라질 것은 자명해보였다. 지역차별에 고통받던 대다수 호남인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있었을까?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영남콩 호남콩 구호야말로 현재의 유빠들을 만들어내게 되는 비극의 씨앗이 될 줄은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애초 영호남이 구분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의 의미에는 영남인들의 상식 회복을 호소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호남의 몰표 또한 비정상인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 있었다. 만약 영남인들이 정신차려서 한나라당 몰표를 자제한다면, 호남에서도 민주당 몰표를 멈추어야 한다는 속내가 숨어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언뜻 듣기에는 당연한 상식처럼 들리는 말 같지만, 그것은 지역주의를 어떤 잘못된 정치 문화쯤으로 안일하게 파악하는 오류였다. 설명하자면 영남과 호남이라는 지역 자체는 서로 구분이 안되는 대한민국의 균질한 일부분인데,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뭔가에 홀려 지역주의 정당들에 몰표를 던지고 있다고 파악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역간 대립 의식이라는게 애초에 영남기득권의 의도적인 호남 차별로 인한 물적 토대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라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고민하기보다 그저 상층부의 정치 문화만 고치면 된다는 식의 계몽적 호소로 접근했던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지역주의가 발생한 역사, 그것을 지탱하는 물질적 조건같은거에는 애시당초 눈을 감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한 인식위에서 민주당은 매우 쉽게 상식과 원칙에 맞지 않는 정당으로 분류되어 버렸고, 호남인들의 몰표 현상 역시 궁물족(?)들이 거는 지역주의 마법에 홀렸기 때문으로 해석되었다. 특히 후단협 활동은 그런 생각을 증명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좋은 사례가 되었다. 결국 노무현 당선 이후 영남에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시도와 함께 (물론 그것은 명분이었고 실제로는 영남친노들의 공간 확대가 목적이었지만)  민주당을 개조하려는 권력투쟁이 동시에 벌어지게 된다. 그런 목적를 달성하기 위해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었고, 호남의 정치인들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그 작업의 선봉장이 바로 영남 친노의 돌격대 유시민이었다.

물론 그들의 생각이 마냥 틀린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 호남에도 어느 지역에서나 발호하는 지역토호들이 존재했고, 그들이 호남의 몰표 뒤에 숨어서 사적인 이득을 챙기는 현상 역시 존재했다. 문제는 그런 세력들의 타파를 한국 정치의 어떤 본질적이고 가장 중요한 과제인것처럼 확대해서 인식하고, 호남의 몰표는 그런 세력을 보호하는 어떤 방패막인 것으로 여기는 태도였다. 결국 갑자기 궁지에 몰린 지역토호 세력들은 민주당의 분당에 반대하는 정치인들과 연합하고 한나라당까지 끌어들여 대통령 탄핵을 벌이게 된다. 

마침내 영남콩 호남콩이라는 진정성(?)과 토호세력 타파라는 명분과 탄핵 역풍까지 합쳐져 열린우리당은 원내 과반수를 석권하게 된다. 그리고  창당의 목적인 "영남 교두보 확보와 호남의 재구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애초에 하부의 차별적인 물적 토대를 개선하려는 아무런 노력도 없이, 상층부의 의식 계몽으로만 진행되는 지역주의 타파 시도가 성공할리가 없었다. 영남의 저항은 교두보조차 허락하지 않는 막강한 봉쇄력을 보여줬고, 호남도 점점 그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영남의 저항에는 아부를, 호남의 몰표에는 사정없이 지역주의의 딱지를 붙이는 그들의 행태가 오래 지속되는 것은 불가능한 노릇이었다. 결국 진퇴양난의 길목에서 궁지에 몰린 영남친노들은 마침내 영남콩 호남콩을 완수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을 동원하게 되는데, 그 것이 바로 대연정 제안이었다.

대연정 제안으로 드디어 영남콩 호남콩에 담긴 진정한 의미가 드러나게 되었다. 바로 영남의 절반과 호남의 절반이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그 나머지 절반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아름다운 양당제가 작동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목표였다. 그러나 현실의 모습은 영남의 콧털도 건드리지 못한 채 아부로 일관하고, 만만한 호남만 두들겨패는 난센스를 벌이는 것이었다. 지역간의 경제적 사회적 평등을 달성하여 마침내 지역주의를 해소하겠다는 노력은 애초에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 딜레마 속에서 대연정 제안마저 실패하자, 드디어 참여정부는 부산정권이다는 망발까지 터지게되었다. 이후 전개되는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몰락의 늪이었다. 

마침내 열린우리당은 공중분해됐고, 만신창이가 된 민주개혁세력은 변변한 저항조차 한번 못하고 정권을 내주게 된다. 그러나 사태가 그 지경까지 되었는데도, 영남콩 호남콩을 포기하지 못한 작자가 있었으니 바로 유시민이었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꼬마 버전인 참여당을 만들어냈고, 영남콩 호남콩의 새로운 대장정에 나섰다. 그리고 그런 사기술로 점철된 진정성의 마법에 홀린 극렬 유빠들이 옥쇄의 각오로 모여들었다. 오로지 자신들만이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이해를 가장 올바르게 대변하는 세력이라는 자뻑과 함께.

그러므로 유빠들에게 영남콩 호남콩의 현신인 유시민은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점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수호신이다. 완벽하게 옳은 자신들과 완벽하게 옳은 유시민.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마지막 희망이자 구세주. 그래서 유빠들앞에 유시민의 털끝이라도 건드리는 모든 정치세력들과 네티즌들은 타도해야 할 적이 되어야 하고, 민주당은 그들이 증오하는 최우선 개조대상이 되었다. 바로 영남콩 호남콩이 잉태한 비극이자 그 사생아들인 것이다. 

영남의 밭에서는 콩이 자라고, 호남의 황폐한 빈들에서는 쭉정이가 자란다. 호남의 황폐한 땅을 콩밭으로 바꾸지 않는 한, 결코 영남의 콩과 호남의 콩은 같은 것이 될 수 없다. 이 평범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 그들이 바로 유빠들이다.

이제 그만 영남콩 호남콩의 어리석은 장정을 멈추라. 그 정도 했으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