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심리학에 반증론(falsificationism, 반증주의) 또는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을 들이대면서 진화 심리학이 과학이 아니라 그럴 듯한 이야기만 만들어내는 사이비과학(pseudoscience)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들에 따르면 진화 심리학 가설들은 반증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 가설로 불릴 자격도 없다. 이 글에서는 진화 심리학 가설이 반증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따지기 이전에 포퍼(Karl Popper)의 반증론 자체의 문제를 살펴볼 생각이다.

 

어떤 사람들은 포퍼를 신처럼 떠받들면서 반증 가능성만이 과학의 시금석인처럼 이야기한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쿤(Thomas Kuhn)을 신처럼 떠받들면서 사실은 쿤의 글을 엉터리로 해석하여 아예 미신과 과학 사이의 구분이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나는 포퍼와 쿤의 글이 과학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명의 과학 철학 모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이 글에서는 포퍼의 반증론의 핵심 문제점 중 하나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다.

 

 

 

반증론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수학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수학의 증명 방식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 따르면 수학 공리가 옳다는 보장이 없으며 수학에서 쓰이는 기본적인 추론 절차가 옳다는 보장도 없다.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은 「What the Tortoise Said to Achilles(거북이가 아킬레우스에게 한 말)」이라는 글에서 이런 의혹에 대해 재미 있게 썼다.

http://www.ditext.com/carroll/tortoise.html

http://fair-use.org/mind/1895/04/what-the-tortoise-said-to-achilles

 

그런 식의 의혹을 무시한다면 수학 정리(theorem)는 절대적 진리다. 왜냐하면 공리에서 출발하여 기본적인 추론 절차를 이용해서 완벽하게 증명하기 때문이다.

 

어떤 수학자가 그럴 듯해 보이는 수학 명제를 제시할 때 두 가지 방향에서 검증할 수 있다. 한편으로 공리에서 출발하여 추론 절차를 거쳐 그 명제를 증명하는 길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그 명제가 틀렸음을 보여주는 길이 있다. 만약 그 명제에 대한 반례를 단 하나라도 댈 수 있다면 그 명제가 틀렸다는 것이 증명된다.

 

 

 

이제 포퍼의 주장을 대충 정리해 보겠다. 어떤 과학 가설이 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포퍼에 따르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 가설에 부합하는 사실들을 아무리 많이 댄다 하더라도 그 가설이 참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200년 이상 살 수 없다라는 가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설사 지금까지 태어난 모든 인간들을 다 조사해서 200살이 되기 전에 죽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해도 이 가설이 확실히 입증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태어날 인간 중에 200살 넘게 사는 사례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반면 과학 가설이 거짓임은 증명할 수 있다. 만약 인간 중에 200살이 넘게 사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인간은 200년 이상 살 수 없다라는 가설이 거짓임이 증명된다.

 

수학의 영역에서는 입증이 가능할 때도 있고 반증이 가능할 때도 있다. 반면 과학의 영역에서는 입증은 불가능한 반면 반증은 가능하다. 이것이 포퍼가 반증이 중요하다고 본 이유다. 포퍼의 주장은 상당히 단순하고 깔끔해 보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매혹되는 것 같다.

 

 

 

하지만 누가 과학의 영역에서 수학의 경우처럼 절대적인 진리를 고집한단 말인가? 과학자들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도 만족한다.

 

뉴턴의 중력 이론을 살펴보자. 뉴턴의 중력 이론이 절대적 진리임을 100% 증명할 수 있는가? 포퍼의 말대로 그런 방법은 없다. 아무리 많은 실험을 해서 설사 항상 뉴턴의 중력 이론에 부합하는 결과를 얻었다고 해도 100% 증명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왜 과학자가 수학자처럼 절대적 진리만을 추구하고 절대적 진리가 아니면 버려야 하는가?

 

이런 사고 실험을 해 보자.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등장하기 전에 뉴턴의 중력 이론이 완벽하게 반증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즉 뉴턴의 중력 이론과 명백히 모순되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고 하자. 그러면 포퍼의 말대로 뉴턴의 중력 이론을 버려야 하는가? 아니다. 왜냐하면 뉴턴의 중력 이론은 환상적인 정량 분석으로 훌륭하게 입증된 이론이기 때문이다. 뉴턴의 중력 이론은 수학적 의미에서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과학 이론으로 인정 받기에 충분할 정도로 입증되었다. 다른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뉴턴의 중력 이론은 과학 이론으로 인정 받을 자격이 있을 만큼 충분히 강력한 이론이다. 왜 그렇게 강력한 이론을 단지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버려야 한단 말인가?

 

실제 물리학 역사를 보면 뉴턴의 이론은 폐기되었고 아인슈타인의 이론으로 대체되었다(물론 고등학교에서는 여전히 뉴턴의 이론을 가르치고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공학자들은 여전히 뉴턴의 공식을 사용한다). 그 이유는 뉴턴의 이론이 반증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뉴턴의 이론보다 더 강력한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수학에서는 개념을 지극히 엄밀하게 쓴다. 개념을 직접 정의하지 않고 쓰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애매하게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경우에도 공리 체계를 통해 지극히 엄밀하게 간접적으로 정의된다.

 

반면 과학에서는 개념에 애매함이 있는 경우가 많다. 위에 등장했던 인간은 200년 이상 살 수 없다라는 가설에서 인간은 무엇인가?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인간이라는 개념이 애매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1억 년 전의 우리의 직계 조상을 인간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언제부터가 인간인가? 50만년 전부터? 10만년 전부터? 진화가 연속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누구도 이 질문에 엄밀하게 답할 수 없다.

 

엄밀하기 못한 개념을 바탕으로 절대적 진리를 찾을 수는 없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과학자는 수학만큼 엄밀하지 못한 개념을 사용하더라도, 수학만큼 엄밀하게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만족할 수 있다.

 

 

 

물론 과학 가설은 실증적으로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100% 완벽하게 입증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런 욕심을 버린다면 포퍼처럼 입증의 방향은 무시하고 반증의 방향에만 온 신경을 쏟을 이유가 없다. 또한 입증의 경우든 반증의 경우든 이분법적인 문제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100% 입증되었는가? 또는 100% 반증되었는가?라는 질문 대신 어느 정도 입증되었는가? 또는 어느 정도 반증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진화 심리학의 경우에는 물리학이나 화학보다 개념도 대체로 더 애매하고 검증하기도 대체로 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화 심리학이 과학이라는 지위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물리학의 경우에 수학보다 개념도 더 애매하고 수학처럼 확실히 검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물리학이 과학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2011-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