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마넹(Bernard Manin, 베르나르 마냉),『선거는 민주적인가』


마넹의 『선거는 민주적인가』는 <현대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입니다.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로 1, 2, 3장에서는 역사적 방법론을 사용해서 고대에서 근세까지 서구의 역사에서 나타났던 여러 정체들에 관해 고찰하여 선거제도의 민주성에 관해 논하고 있습니다. 4, 5장에서는 나아가 선거를 포함한 대의제의 원리들에 대한 본격적인 이론적 분석이 시도되고 있고, 6장에서는 4, 5장에서 논한 내용에 기초하여 현대의 대의정체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으신 분들이라면, 앞쪽은 주마간산으로 훑으시고 4, 5, 6장만 꼼꼼히 읽으셔도 어느 정도 내용 파악은 되실 것으로 보입니다.(이 글의 경우도, 시간이 없으시다면 3절부터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개인적으로는, 1장의 경우 이전에 서양 고대사/고대철학을 좀 뒤적거리면서 주워들은 게 좀 있어서 쉽게쉽게 넘어갔습니다만, 그 이후부터는 제 정치학이나 역사에 대한 지식 수준이 너무 초보적인 수준이라 생각보다 잘 읽히지가 않았습니다. 문장은 평이하다면 평이하지만, 번역이 좀 좋지 못해서(대체로 직역투가 많은 편이고, 때로 비문도 종종 보입니다) 약간 읽기 불편했고요. 그래도 내용 이해에 무리가 갈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 제가 관련 지식이 너무 없기 때문에.. 이 글은 주로 비판적 논평보다는 내용의 충실한 요약에 초점이 맞춰질 것입니다. 읽으면서 약간씩 메모했던 내용을 기초로 하여 서술하면서 보강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내용은 거의 없다 싶은 정도입니다. 이런 형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쓰다 보니 쓸데없이 길어져서 이것만 쓰는 데에도 힘이 다 빠져 버렸네요. 에고..-.-;;
# [n]은 미주(尾註).



1. 고대에서 르네상스기까지의 추첨제와 선거제
고대부터 중세까지의 여러 정치제도 중에는, 결정권자 선출과 임명의 여러 단계에서 선거와 추첨이 혼합되어 있는 체제가 다수 존재했습니다. 이 책에서 대표적으로 분석하는 정체는 그 중에서도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 로마 공화정, 이탈리아 도시 공화국, 피렌체 공화정, 베네치아 체제의 다섯 종류입니다. 각각 서로 다른 방식의 제도가 존재하고 있었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1)많은 정체에서 추첨과 선거는 공존하는 양상을 보였고, (2)대부분의 정체에서 추첨과 비교했을 때 선거제도는 비민주적이고 과두적인 것으로 여겨졌다는 점입니다.


# 아테네 민주정
# 아테네 정치제도의 개략[1]
아테네 정치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인 평의회, 시민 법정, 입법 위원회는 추첨을 통해 선발되는 의원들로 이루어진 별도의 기관이었기 때문에, 결코 아테네 민중들과 동일시되는 기관이 아니었습니다. 그에 따른 책임이 막중했고, 따라서 추첨에 지원하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테네 정체를 "직접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할 때 이들이 민중들에 대한 사실상의 반영이기 때문이라는 데에서 근거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보다 그 근거는 이들이 '추첨'을 통해서 선출되었다는 점에서 찾는 것이 합리적이겠지요. 고대 헬라스 세계의 많은 저술들에서는 추첨 형식이 민주정의 전형적인 선출 방식이며, 선거는 비교적 과두정치나 귀족주의적인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추첨을 통해 집정관을 지명하는 것은 민주적인 것이고, 선거에 의한 것은 과두적이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지 추첨을 민주적이라고 여기는 데에서 나아가, 때에 따라 추첨과 선거를 혼합하는 선출 방식을 수립하여 민주적 제도와 과두적 제도를 잘 종합했을 경우, 한쪽만의 특성을 가진 경우보다 더 나은 헌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일반적인 아테네인들은 전문성을 그것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불신했고, 민주 체제와 상충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권력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우려하여), 가능하면 여러 직위들이 지속적으로 교체될 수 있도록 하여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동일성을 강화하는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그리스적인 의미에서 '평등'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비례적 평등과 산술적 평등. 비례적 평등은 A와 B에 분배된 몫 a, b의 가치 비율이 두 사람 사이의 가치 비율과 같을 경우(A/B = a/b)를 의미한 반면에, 산술적 평등은 비례적 평등의 특수한 사례로서 모든 사람의 가치 비율이 같다고 여겨지는 경우(A=B; 즉 a=b)입니다. 많은 그리스 사상가들은 산술적 평등과 추첨을, 반면에 비례적 평등과 선거를 연결해서 생각했습니다.(확률 개념이 모호했기 때문에 추첨의 경우 피추첨자들에게 동등한 권력의 기대값을 배분한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는 없었지만) 많은 철학자들이 비례적 평등이 정의에 가까울 것이라고 지적하기는 했지만, 산술적 평등은 좀더 민주적인 평등으로 여겨졌고, 아테네 민주주의자들은 선거가 선출을 원하는 모든 시민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배당할 수 없으리라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 로마 공화정에서의 추첨의 사용[2]
# 피렌체 공화정
중세에서 르네상스기에 걸쳐 많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에서 선거와 추첨은 여전히 혼합 양상을 유지했습니다. 이때 역시 추첨은 평등주의적이고 보다 민주적인 선출 방식으로 여겨졌지만, 아테네에서와 같은 정도로 추첨을 널리 활용한 국가는 매우 적었습니다. 추첨에 대해 근본적인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저술가들도 등장했습니다. 한 예로, 15세기 전반부에 피렌체 공화국의 총리를 역임하기도 했던 L.브루니는, 시민들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경쟁해야 하고, 그들의 평판을 공개적으로 내걸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훌륭하게 처신하려는 동기를 가지게 될 것인 반면에 추첨에서는 그러한 요인이 없기 때문에 추첨을 반대했습니다.

피렌체 공화정에서는 고대 아테네 체제에서와는 다르게 이러한 추첨의 취약점을 다른 방식으로 보완했습니다. 피렌체 정체의 행정관 선출에서는 최종적인 추첨을 통해 선발되기 전에 반드시 선거를 통해 일정 수 이상의 표를 얻어야만 했지요. 이는 아테네 체제에서보다 직접적인 미달자 여과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아테네 체제에서는 주관적인 판단에 의지해서 추첨을 보완했던 반면에, 피렌체 체제에서는 좀더 직접적으로 걸러내기를 거쳐야 했습니다.[3]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에서 추첨을 사용할 경우, 그 이유는 주로 중립적이고 공정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피렌체의 추첨제에서 특기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15세기 말에 권력을 장악한 메디치가가 잠시 축출되고 다시 공화정이 수립되었을 때, 혁명을 주도한 민중 정부는 처음에 선거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 판단하여 선거제를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선거제를 통해 차츰 유력 시민들이 더 많이 당선되기 시작했고, 결국 그들이 특권과 영향력을 다시 장악하게 되어 혁명 이전의 양상으로 회귀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때문에 선거는 다시 단계적으로 폐기되고, 추첨이 재도입되었습니다.



2. 선거제의 "승리"
그 이전 시기까지의 사회에서와 확연히 다르게, 근세의 정치 행위자들은 사실상 추첨을 통해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저술가들이 선거제를 옹호하는 논변을 전개하였는데, 이 시기에는 일반적으로 추첨이 민주정적 성격을 가지며 선거가 귀족정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예컨대 몽테스키외는 선거제도를 옹호하면서, "민중은 최고를 선출하지만, 최고는 대개 상위 계급에 속한다"고 논평하여 사실상 선거의 귀족정적 성격을 옹호하고 있지요. 루소의 경우, 한 발 더 나아가 상당히 설득력 있게 추첨은 순수한 민주정에 적합하며, 선거는 귀족정에 적합함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세기 말 대의제 정부의 본격적인 수립이 시작되자 거의 모든 정치체제 수립자들이 추첨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4]

이러한 선거제의 승리는 크게 두 가지 요인에 근거합니다. 첫째는 추첨으로 통치자를 선출하는 일이 거대한 근대국가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추첨의 경우 그 대상이 너무 커지면 임의성이 따라서 증가하여 사실상 어느 영역에서의 대표성도 획득할 수 없고, 그래서 정치적 의무감을 창출하기 어려운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죠. 둘째는 보다 역사/문화적이고 더 중요한 요인인데, 그 당시에 설득력을 얻었던 계약론적 직관, 즉 '선출된 사람들의 권력은 피지배자의 동의에 기초한 것이어야만 정당성이 있다'는 믿음 때문에 적절한 형식적 동의를 창출하지 못하는 추첨이 배제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요인이 보다 중요한 이유는, 대의제 수립 초기에 첫째 요인이 엄격하게 적용되기 힘들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실제로 18세기 말, 어떤 서유럽 국가 혹은 미국에서도 군 단위 선거권자의 수는 고대 아테네 혹은 피렌체와 비교했을 때 대부분 더 많다고 볼 수 없었지요.

결국 이 두 번째 요인, 요컨대 '동의의 원칙'이 보급되면서 추첨은 선출 제도에서 차츰 추방되다가 사라져 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다 실질적인 측면에서 전체적으로 추첨이 사라진 동기를 추측할 수도 있습니다. 보수파들의 경우 선거가 추첨보다 자신의 권력 획득에 더 쉬울 것이라는 점 때문에 당연히 이에 반대할 동기가 없었고, 반면 진보파들은 추첨을 옹호하기에는 동의의 원칙에 너무 애착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어찌 되었건, 이 역사적 결과가 선거제 자체의 비민주성과 결합되면서, 대의 정부의 설립을 즈음하여 새로운 시민권의 개념이 등장합니다. 이제 대의제 하에서의 새로운 시민들은, 스스로 관직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로서만 간주되는 처지로 전락한 것입니다.



3. 선거제의 이중성
미국 독립 초기 비준논쟁에서의 연방주의자들과 반연방주의자들의 토론을 통해, 대의제에서의 대표성에 관한 개념이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 논쟁에 관해 책에서는 꽤 길게 다루고 있습니다만, 이 주제에 관련된 결과를 요약하자면 단순합니다. (1) 선거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속성은 바로 사회적 지위와 부유함이다. (2) 선거를 통해 드러날 귀족정의 유형은 고전적인 봉건적/세습적 귀족과는 무관하며, 사회에서 보다 우월한 지위를 누리는 사람들에게 진입이 유리하다.― 비록 이러한 주장들이 제대로 정당화되지는 못하였고 직관에 의존하는 부분이 아직도 컸지만, 그 영향력에 있어서는 획기적이었지요. 만약 고전적인 선거의 귀족주의적 속성에 관한 학설과 미국의 논쟁을 통해 공식화된 직관이 사실이라면, 참정권의 확장과 의원 자격 요건의 폐지 등과는 무관하게 다음 두 현상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오직 선거에 기초한 정부에서는 모든 시민이 공직을 가질 동등한 기회를 누릴 수 없다. (2) 대표의 지위는 보다 우월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나 보다 높은 사회 계급의 구성원으로 국한될 것이다.


# 선거의 귀족주의적 특성에 대한 정당화: 네 가지 논거들
저자는 이제 역사적 분석에서 탈피하여 이러한 선거의 귀족적 특성에 관해 본격적인 정당화를 시도합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논거들은 총 네 가지 종류인데, 이들에 관해 간략히 서술하겠습니다.

첫째 논거는 후보에 대한 투표자들의 불평등한 대우입니다. 선거에 있어서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선택할 때, 어떤 편파적인 기준을 사용해서 후보자를 평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유권자들은 완벽한 정치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때로 단기적 판단이나 신상의 문제, 혹은 파당적 기준에 근거해서 후보자를 평가합니다. 비록 이 정도로 전체 후보자들의 선호가 편향되는 것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둘째 논거는 선택의 상황에서 요구되는 후보자들의 탁월함입니다. 만약 투표자들이 광범위하게 공유하는 성질에 근거해 후보자를 판단한다면, 일반적인 자질을 공유하는 다수의 사람들 중에서 누구를 골라야 하는지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되겠지요. 즉 적어도 몇몇 특성들에 있어서는 소수만이 가진 특성에 기초해야 합니다. 이때 투표자들은 선택을 내리기 위해 대부분 쉽게 식별할 수 있는 특성을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후보자가 가진 탁월한 특성의 존재 여부가 불확실하다면, 다른 후보자들과의 경쟁에서 끊임없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에 그 후보자는 그런 특성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증거를 어느 시점에선가 제시할 압력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합리적인 후보라면 몇몇 결정적으로 탁월한 특성을 실제로 소유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가능한 반론 중 유력한 것은 투표자들이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소공동체의 특성과의 유사성에만 의거해서 후보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물론 이것은 탁월성이라고 볼 수 없는 속성입니다) 만일 실제로 '완전한 유사성'이 판단 기준이 된다면, 대부분의 후보자들은 투표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겠지요. 따라서 이때 차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러한 특성과의 최소 거리가 될 겁니다. 만약 그런 방식에 의거해서 후보가 선출되었다면, 그 사람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특성과 후보들 중에서 가장 유사하다는 것에 근거해 선출된 것이고, 그러면 그 후보는 바로 이 점에서 그들이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그들 중 대다수가 가지지 못한 속성을 가지고 있게 되지요. 그러므로 이 반론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셋째 논거는 눈에 띄는 특성이 부여하는 인식상의 장점입니다. 저자는 이 논거를 다루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기본적으로 두드러진 항목 또는 개인에 맞추어지며, 두드러진 자극은 평가적 지각에 영향을 주어 강한 평가적 판단을 유도한다는 인지심리학의 연구 결과에 부분적으로 근거해서 논의하고 있습니다.[5] 이러한 결과를 선거에 적용하면, 관심을 끌어내고 강한 긍정적 판단을 유도하기 위해 후보들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어떤 특성으로 인해 눈에 띄어야 합니다. 두드러지지 못한 후보는 주목받지 못하여 당선 가능성이 사라질 것이고, 부정적 특성으로 인해 눈에 띈 후보들은 당연히 거부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긍정적 명성에 의한 불평등을 초래하는데, 왜냐하면 긍정적 명성으로 인해 두드러진 개인은 일상적인 사회관계 속에서 암묵적인 선거 운동을 계속하는 꼴이 되어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논거는 정보를 확산시키는 비용의 문제입니다. 투표자들에게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서 후보자들은 선거 운동을 해야 하는데, 이 자금은 통상적으로 만만치 않으므로(후보자들끼리 경쟁하기 때문에 더 커지는 측면도 있고요) 부유한 계급의 이점이 즉각적으로 드러납니다. 반면 후원자들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으려 할 때, 통상적으로 부유층 후원자에게 더 큰 후원을 받을 수 있으므로, 후보자는 상대적으로 부유층 후원자들의 이익에 더 큰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결국 어느 쪽을 보아도 선거 절차는 부유한 계층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 선거제의 이중적 속성과 안정성
저자는 여기서 다시 선거제가 이중적인 속성을 가진 체제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선거에 의한 대의제는 충분히 귀족주의적이긴 하지만, 모든 시민이 선거권을 지니고 있고 모두가 합법적으로 공직 진출 자격을 가진 체제입니다. 어쩌면 보다 중요한 것은 임기 막바지에 집단적 선호가 존재한다면 통치자를 면직시킬 힘을 모두가 동등하게 공유한다는 점이겠지요. 즉 반대로 선거가 평등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바로 앞까지는 오늘날에는 선거의 귀족주의적 측면이 상당히 잊혀지거나 잘못된 원인들 탓으로 돌려지기 때문에 이를 강조했었지만, 선거가 귀족주의적인 만큼이나 그보다 더 나쁜 체제와 비교한다면(예컨대 전체주의나 절대 왕정) 훨씬 민주적인 체제라는 것은 분명하지요.

선거체제는 추첨체제보다 덜 민주적이고, 더 귀족적인 반면에 세습체제 등보다는 더 민주적이고 덜 귀족적입니다. 이렇게 선거제도에 민주적이면서 귀족적인 속성이 공존한다는 것은 거꾸로 생각하면 선거제도가 가지고 있는 안정성의 근원일 수 있습니다. 선거제도 하에서 이중적 속성이 잘 혼합되어 있기만 하다면, 거기서 엘리트들과 평범한 시민들은 똑같이 그들이 원하는 바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선거에 기반한 대의제 하에서는, 그들 모두에게 헌법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인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4. 대의제의 속성
이제 선거에 기반한 대의제의 속성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대의제도는 통치자의 결정과 유권자의 정책 선호 사이에 어떤 연계성을 만들어 내는가, 즉 "국민은 정말 그 스스로에 의해 통치받는 것인가"의 문제는 상당히 집요한 논쟁거리일 것입니다. 제도적 측면에서 볼 때, 대의 정부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에게 유권자의 선호로부터의 독립성을 형식적으로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대의제도는 대표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는 구속적 위임(imperative mandate), 대표의 임의적 해임(discretionary revocability), 대표의 소환(recall) 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18세기 말 이래 설립된 어떤 대의 정부도 유권자의 명령에 대해 법적 구속력을 부여한 적은 없습니다.[6] 물론 강령이나 공약을 내세우는 것과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형식은 대표의 행동 패턴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대표 자신이기 때문에 더 급한 사안이 존재한다면 얼마든 뒤집힐 수 있게 되지요. 결국, 대의제는 대표의 부분적 독립성을 인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선거의 반복성과 회고적 투표
비록 많은 대의제를 받아들인 국가들이 여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대의제 하에서 여론의 실질적인 반영 방식은 주로 수동적입니다. 여론은 분열되어 있다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며, 반면 결집되어 있다면 그 자체로 권력자에 대한 하나의 위협이 됩니다. 가장 주된 여론 반영 방식은 무엇보다 선거 자체인데, 이는 유권자가 대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대의제 정부에서 선거는 반복되며, 반복되는 선거는 낙마하기 싫다면 여론을 참작하고자 하는 동기를 집권자에게 제공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미래의 정책에 대한 유권자의 선호는 공적 결정에서 제한적 영향만 미칠 수 있습니다. 기술한 바와 같이, 어떤 강령이나 공약을 내세운 후보를 뽑는다 해도 그 후보가 그것을 반드시 이행한다는 보증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제시되는 것이 바로 유권자들의 회고적 판단입니다. 즉, 과거 대표자가 제시했던 내용과 실제 대표자가 사용했던 정책에 대한 판단입니다. 현 대표자가 낙마를 피하기 위해 유권자들의 선호에 의한 판단을 예측하려 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할 수 있는 것은 과거에 대한 것이며, 그러한 판단은 표현되는 순간 과거와 연관됩니다. 또한 유권자가 회고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대표는 더 큰 자율성(적어도 과거의 사안들에 대해서)을 부여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제도와 이러한 제도가 대표에게 창출하는 동기 측면에서, 회고적 판단에 근거해 투표함으로써 투표자들은 통치자의 결정에 가장 쉽게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나아가, 투표자들이 공공 결정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기 원한다면, 반드시 회고적 의견을 바탕으로 투표해야 합니다.[7]

(이외에 저자는 '토론을 통한 판결'이라는 특성을 강조하며, 이것을 대의제의 원칙으로까지 제시합니다. 이는 선거에 기반한 대의제의 불완전한 민주적 특성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최선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에 관해서는 상술하지 않겠습니다.)



5. 대의제의 여러 형태
책의 마지막 장은  대의 정부의 세 가지 형태에 관해 논하는 데에 할애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논해지는 것은 '의회 정치', '정당 민주주의', '청중 민주주의'입니다. 이 세 형태는 각각 역사적인 순서를 따릅니다. 조금 섬세하지 못할 수 있지만 대략 자르자면, 의회 정치기가 주로 대의 정체의 도입기인 18세기 말~19세기 말이고, 정당 민주주의기가 19세기 말~20세기 중후반, 그리고 청중 민주주의기가 20세기 중후반부터 그 이후로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 세 형태를 각각, (1)선출된 대표, (2)대표의 부분적 자율성, (3)여론의 자유, (4)토론을 통한 판결이라는 네 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비교분석해 나갑니다.


# 의회 정치
―대표 선출 : 의회 정치에서는 대체로 의회 내에서의 당파성이 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신뢰 관계는 본질적으로 유권자와의 직접적 접촉을 통해 형성되어 개인적인 특성을 갖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적 연고가 강했고, 일반적인 유형에서의 엘리트, 즉 '명사'가 선출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대표의 자율성 : 선출된 대표들은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지보다는, 개별적으로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한 상태로 개인적 양심과 판단에 근거해서 권력을 행사합니다. 이는 논리적 요인보다는 역사적인 요인에 근거합니다.
―여론 : 의회 정치기에는 대의제가 충분히 정착되지 않은 초기이기 때문에, 의회 자체의 권력에 근거하지 않은 상태로 정치권의 외부에 초의회적으로 존재하는 운동이 산재했습니다. 이들은 초정당적인 균열을 반영했고, 대의제 정체 내부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에 선거 표현과 그러한 초정당적인 여론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습니다. 또한 의회가 여론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인식할 경우 군중들은 의회권력에 기초하지 않은 집단적 시위를 통해 의회에 긴장을 고조시켰습니다.
―토론을 통한 판결 : 후보의 자율성이 상당 부분 보장되었고, 그들을 결속시키는 강력한 정당 권력이 아직 없었기 때문에, 의회 내부에서의 토론은 상당히 활발했습니다.


# 정당 민주주의
―대표 선출: 차츰 선거권과 유권자의 규모가 커지면서, 유권자와 대표 사이의 개인적 관계는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유권자들은 후보자 개개인보다는 그 사람이 속한 정당의 색깔을 보고 투표합니다. 대중 정당이 등장하고, 명사들은 상대적으로 몰락합니다. 주로 투표는 정당의 활동가에게 주어져서, 정당 관료층을 형성하는 근간이 됩니다. 이때의 정당은 계급관계를 반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유권자는 정당에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모습을 보고, 거기서 지명된 후보에 대해 동질감을 형성합니다.
―대표의 자율성 : 대표는 소속 정당의 압력에 의해 일정한 기본 방침이 정강 등으로 지정됩니다. 이에 따라 개개인의 대표는 행동의 자율성이 상당 부분 제약됩니다.
―여론 : 정당 내에서 의견은 대체로 합의되기 쉬우며, 유권자들이 후보자보다는 정당을 고르기 때문에 집단적인 여론이 큰 폭으로 갈리는 경우는 있더라도, 그 각각의 여론과 해당하는 정당의 입장은 상당히 가까운 편입니다.
―토론을 통한 판결 : 의회에서는 주로 당간 협상과 당내 논쟁이 벌어집니다. 무엇보다 당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볼 때 최종 의결에서 토론의 입지는 좁아집니다. 다만 경우에 따라 당내 논쟁은 더욱 활기를 띠는 경우도 있습니다.


# 청중 민주주의
―대표 선출 : 미디어 영역에서의 진보에 의해, 대표자와 유권자가 라디오나 텔레비전, 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해 정당의 매개 없이 생생하게 직접 의사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표자가 첨단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부각시킬 수 있게 되어 다시 유권자-대표자 간의 관계에서 개인적 요소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공적인 후보들은 미디어 활용과 의사소통에 능숙해야 합니다. 또한 정치 지형도가 더욱 복잡해짐에 따라, 정치 상황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이 증가하였고, 후보자의 결단력에 의존하는 부분이 증가했습니다. 비교적 정강이나 공약 등의 중요성은 퇴색한 반면, 후보 개인의 판단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대표의 자율성 : 더욱 복잡해진 정치 상황과 미디어의 범람 때문에, 오늘날 일반적으로 대표들은 그 개인적 이미지와 그 사람이 속한 정당의 이미지, 그리고 상대적으로 모호한 공약의 이미지에 바탕을 두고 선출됩니다. 이러한 이미지는 적어도 상대편과는 '구별되고', 상대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서 차별화 전략을 구사해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다지 변별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 이미지 구사는 상대적으로 애매모호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선출된 후에 후보자들은 적어도 그 애매모호성의 정도만큼은 반사적인 자율성을 갖게 됩니다.
―여론 : 청중 민주주의기에 여론에 관한 핵심적인 사실은, 대중적인 의사소통의 통로들(신문, 텔레비전 등)이 대개, 주류의 수준에서는 정치적으로 비당파적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이들이 정치적 선호나 나름의 왜곡과 편견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이들이 최소한 정당의 선거에 있어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하는 구조적인 연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어떤 당을 선호하든, 각 개인은 다른 사람과 똑같은 정보를 얻게 됩니다.[8] 이렇게 비교적 객관적이고 동질적인 공유된 인식은 그 판단의 불확실함을 이전 세대에 비해서 상당 부분 제거하는 역할을 하며, 그 불확실한 부분에 적용되던 당파적 선호의 여지를 없애 버립니다. 또한 여론조사가 일상화되면서, 여론조사를 담당하는 기관이 충분히 중립적이라면, 그것은 개개인의 정치적 표현의 비용과 위험을 감소시켜 과거에 비해 체제에 대한 집단적 목소리를 편안히 낼 수 있게 합니다.
―토론을 통한 판결 : 주요한 변화는 정부와 정치기구 외의 이익집단 사이의 타협의 필요가 증가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체제에 대한 더 높은 접근성을 갖게 되었고, 그에 근거해 안정적인 정당 소속감에 근거해 투표하지 않고 개개 사안에 따라 흔들리는 유동층 유권자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포섭하기 위해서 더 많은 토론 발의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으며, 정치가들이 직접적으로 대중에게 정책을 제안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1] 고대 아테네 민주정부에서 관직의 배분은 선거와 추첨의 혼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약 700명 가량의 행정직 중에서 600명 정도가 추첨을 통해 충원되었으며, 그 임기는 1년이었습니다.(다만 동일한 직책으로 두 번 복무하는 것은 금지) 추첨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30세 이상인 시민권자라는 자격으로 족했고, 선발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오직 자원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추첨으로 뽑힌 사람의 경우 사실상 형식적인 심사를 거치고 나면 곧 임용될 수 있었죠. 반면 장군직, 최고 재정 담당관직 등 실무적 능력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는 선거로 선출하였는데, 역시 30세 이상 모든 시민권자는 입후보 가능했고, 임기는 1년이며 연임 제한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테네 민주정의 경우 추첨제에 대한 최소한의 여과장치는 갖추고 있었는데, 추첨에 의해 선출된 행정관은 항상 민회와 시민 법정의 감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임기가 끝나면 결산 보고서를 제출하여 실적을 평가받아야 했으며, 임기 중에도 시민들이 행정관에 대한 탄핵안과 불신임 투표를 제안할 수 있어서(이에 대한 자격은 시민권을 제외하고 없음) 이에 패배한 행정관은 즉시 직무가 정지되고, 법정에서 배심원들에 의해 무죄(이 경우 업무 재개 가능) 혹은 유죄 판결을 받아야 했습니다.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시민 법정의 원리(시민이 제시하는 처벌 형태)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되었지요. 그러므로 행정관은 항상 시민들을 의식해야 했으며, 자신이 없는 시민의 경우 아예 행정관 추첨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습니다.

이러한 선출직 공직자의 경우 대체로 행정적 임무가 맡겨졌고, 반면 정치적 권위는 그다지 갖지 못했죠. 정치적인 측면에서, 고대 아테네 민주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 셋은 민회, 평의회, 시민 법정이었습니다. 민회는 안건 제출과 토론이 모든 시민권자에게 자유롭게 열린 장으로, 모든 중요 안건은 이 민회를 거쳐서 의결을 받아야 했습니다. 평의회는 법적으로 통치권을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통치체였는데, 민회에서 어떤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지에 대한 예비토론이 이루어졌고, 외교, 해군/무역 행정, 공무 감시 등의 중대한 직책이 맡겨졌습니다. 민회와 달리 평의회에서는 의원직이 추첨을 통한 1년 임기의 선출직이었고(평생 동안 최대 두 번 재임가능), 평의회 의원을 기소할 권리는 평의회 내부에만 부여되는 특권을 가졌지요. 마지막으로, 법정에서는 배심원제를 채택하였는데, 재판관이나 배심원은 '헬리아스타이'라고 하는 특수한 선출직(30세 이상 시민 지원자 중 6000명을 추첨으로 선출) 중에서 지원자에 한해 안건마다 추첨하여 뽑았습니다. 법정은 주로 정치적인 재판(행정관의 탄핵, 민회의 안건에 대한 비합법성 소송 등)과 논쟁의 중재를 맡았습니다.(많은 형사 사건의 경우 별도의 기관에서 심의했습니다)

5세기 말에 벌어진 체제전복시도 때문에 이러한 아테네 체제는 5세기 말-4세기 초에 들어 변혁을 겪습니다. 민주정 복원 이후 구체적인 성문법으로서의 '법률'과 한시적인 권위와 적용 대상을 갖는 '법령'이 구분되면서, 민회는 법령만을 통과시킬 수 있는 것으로 권력이 제한되었지요. 반면 법률은 새로이 부상한 '입법 위원회'에서의 결의를 통해서만 수정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민회는 기존 법률들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그에 대한 최종 판결은 역시 입법 위원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이 입법 위원회는 4세기 아테네 정체에서 민회를 대신하는 최고 입법기관으로서의 권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입법 위원회는 지속성을 갖는 기관은 아니었고, 필요에 따라 헬리아스타이 중에서 지원자들 중에서 추첨을 통해 지명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 로마 공화정에서 대부분의 행정관은 아테네에서와는 달리 선거로 뽑혔고, 모든 시민들은 소유한 부의 크기에 따라 서로 다른 권력을 가졌습니다. 중요한 두 의결 기관은 '켄투리아회(병원회)'와 '트리부타회(민중 의회)'이었는데, 켄투리아회에서는 군사/재산상으로 분류된 투표 단위인 '백인대'에 의해 투표가 이루어졌고, 트리부타회에서는 순수히 부족/지역별로 집단투표를 했습니다. 둘 중 켄투리아회의 권한이 더 강했지요. 켄투리아회에서는 상위 행정관(집정관, 치안관, 감찰관)을 선출했고, 트리부타회에서는 하위 행정관들을 선출하고 법률(이 발의권은 행정관들의 전유물이었죠)을 통과시켰습니다.

로마 공화정에서는 추첨이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추첨은 선출 방식 자체가 아니라, 켄투리아회에서 백인대 중 투표의 최초 순번을 결정하고(종교적 이유로, 이 최초 순번은 특별한 영향력을 가졌지요), 트리부타회에서 투표 후 우선 개표 순번을 결정(이때 개표 중 미개표 측에서는 변경이 가능했으므로 주로 유리한 측에 몰리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추첨의 사용은 그리스적 의미의 평등보다는 주로 '중립성'을 골자로 한 것이었습니다.

[3] 이 피렌체식은 가라타니 고진이 『일본정신의 기원』등에서 주장하는 추첨제와 유사한 방식으로 보입니다.

[4] 프랑스 혁명기에는 추첨과 선거의 혼합에 대해 약간의 의견이 있었지만, 곧 기각되었습니다.

[5] 이에 관한 원 각주는 다음과 같습니다: 두드러짐의 효과에 대한 초기 연구는 두드러짐이 원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했다.(만약 A가 어떤 이유에서든 B, C, D보다 탁월하면, 사람들은 B, C, D보다 현상 A에 현상 X의 원인이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두드러짐의 효과는 원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 이상으로 확대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이하 인용저작 목록)

[6] 1871년의 파리 코뮌에서는 평의회 의원들에 대한 항시적 해임 제도를 도입한 적이 있지만, 코뮌 자체가 단명하여 이 제도는 별로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7] 이 부분의 각주에 의하면, 회고적 투표 행위를 통해 사실상 시민이 대표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 수학적 모델을 통해 J. Ferejohn에 의해서 증명되었다고 합니다.(J. Ferejohn, "Incumbent performance and electoral control," in Public Choice, Vol.50, 1986, pp. 5-25를 보라고 되어 있습니다)

[8] 이 문장에 동의할 수 없다면, 우리는 매우 슬픈 상황인 겁니다.. 이 부분은 역사적으로 상대적인 주장을 펼치는 정도로 이해해 주세요.


p.s. 요즘 시간표 변경 문제로 난데없이 독일 문학과 중세철학을 파야 할 일이 좀 생겨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시간이 더욱 적어지고 있습니다. 사회자팀의 일원으로서 변변한 활동도 못 하고 있는 점,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Sicut erat in principio, et nunc, et semper,
et in saecula saeculor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