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집 뒷마당을 봤더니 물에 흠뻑 젖어있습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보통은 간밤에 자는 동안 비가 왔구나,라고 생각하겠죠. 관찰된 현상(물에 젖은 뒷마당)을 설명해주는 가설 하나를 상정하는 작업입니다. 아침 뉴스를 틀었더니 어제 자기 동네에 잠 비가 왔다는 보도가 나온다면, 이 가설이 참일 개연성은 높아집니다. 동네 한바퀴를 쭉 돌아봤더니 다른 집도, 거리도 모두 물에 젖어있다면 이 가설이 참일 개연성에 더더욱 무게가 실리겠죠. 


 이런 추론방식을 흔히  가추법-가설추리(Abductive Reasoning)이라고 부릅니다. 전혀 중요한 사항은 아닙니다만, 찰스 샌더스 퍼스( Charles Sanders Peirce)라는 옛날 어느 미국사람이 이렇게 명명했지요. 한국어로는 달리 귀추법, 최량 설명의 추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또 아크로같은 인터넷 공론장에서, 그리고 화학이나 물리학같은 경험과학에서 쓰이는 추론형식들을 살펴보면 대개가 이 가추법입니다. 천문학에서 말하는 빅뱅이론도 따지고 보면 가추법이죠. 우주배경복사라는 전자기파가 전 우주에 골고루 퍼져 있다는 '현상'이 망원경으로 관찰되었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천문학자들이 머리를 굴리다보니 나온 이론이 '빅뱅이론'이라고  하죠. 살점 다 싸악 발라내고 추론형식에서 가장 기둥이 되는 골자만 보면, 앞서 살펴본 '어제 밤 내린 비'라는 추론방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크로에서도 이 가추법에 해당하는 경우를 들라면 그야말로 차고 넘칠 지경인데, 예를 몇가지 들어주고 싶지만 귀찮아서 지금은 일단 생략합니다.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추가하기로 하지요.


 그런데 보통 가추법이 어렇다 저렇다 말을 할 때 흔히 연역추론과는 달리 참임을 보장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아까 우리가 본 처음의 사례를 다시 끌어오면, 제 아무리 '간밤에 온 비'라는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를 산더미처럼 쌓아올린다 한들, 이것이 절대로 100% 참인지 알 도리는 없다는 말이죠. 극단적으로 말해, 예의 그 뉴스방송도, 온 동네에 뿌려진 물도 간밤에 외계인이 와서 사람 골탕 한번 먹여보려고 조작한 건지도 몰라요. 물론 황당무계한 얘기죠.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을 100% 배제할 도리는 없습니다. 따라서 연역추론과는 달리 이 추론은 제아무리 해당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를 끝없이 쌓아올린다 해도 언제나 틀렸을 가능성을 동반합니다. 이런 점에선 귀납추론과 약간 닮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가추법에서 정작 중요한 포인트는 다른데 있어요. 
 가추법도 가추법 나름인 것이, 생산성있는 가추법(의미있는 가추법)과 불임성이 강한 가추법(별 의미없는 사변)으로 나눠집니다. 실제 우리가 가추법을 써서 추론을  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은 바로 이 점에 있어요. 사실 이걸 자주 깜빡하거든요. 어떠한 가추법이건 그 추론은 절대적 확실성이 없다는 것 쯤은 굳이 지적안해줘도 누구나 다 압니다.  


 뭔가 의미있고 생산성이 있는 가추법이라면, 그 가설로부터 경험적으로 확인가능한(테스트해볼 수 있는) 또 다른 예측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처음에 든 ' 간밤에 내린 비'라는 가설이라면 이 기준에 들어맞지요. 정말 간밤에 우리 동네에 비가 내렸다면, 내 집 뒷마당뿐만 아니라 다른 집, 마을 전체가 물에 젖어 있을 것이라는 '경험적으로 테스트 가능한 예측'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또 이 가설이 틀린 가설이라면, 이를 반증할 만한 - 또는 잠정적으로 유보시킬만한-  경험적 자료가 관찰되지요. 예컨데 다른 집은 다 멀쩡한데 유독 우리 집만 물에 젖었다면, '간밤에 내린 비'라는 가설은 일단 철회(유보)시키고 다른 추가적인 증거를 탐색하는 단계로 '전진'하겠죠. 바로 이런게 의미있는 가추법입니다. 자연과학에서 알기 쉽고 대개가 상식적으로 아는 예를 하나 들자면,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제안한 주기율표 가설이 바로 의미있는, 생산성있는 가설추론입니다.  
 

 문제는 말이에요, 같은 가추법이라도 생산성없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 불임성 가추법 역시 많다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기독교의 창조론이 그래요. 분명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관찰된 현상을 설명하긴 합니다. 그런데 이 가설로부터 경험적으로 확인가능한(테스트 가능한) 또 다른 예측을 이끌어낼 순 없어요. 결국 어떠한 현상이 관찰되건 간에 '사후적'으로는 다 설명이 되지만(만사가 하나님의 뜻),  '사전적'으로 미리 구체적이고 대담하면서도 실증적으로 테스트가능한 예측을 이끌어내진 못하죠. 불임성의 가추법이란 바로 이런 가추법입니다. 그다지 자신은 없습니다만, 음양오행설도 아마 이런 류의 이론일겁니다. 좀 다른 얘기지만 덕하님 글을 읽다 보면, 진화심리학계에선 이런 불임성 가설추론을 곧잘 '그럴듯한 이야기(Just so story)"라고 부르는 듯 합니다.


 아크로에서 벌어지는 댓글 논쟁을 볼 때마다 전 이런 불임성의 가설추론을 정말 자주 봅니다 (여기서 구태여 예를 꺼집어 내진 않겠습니다). 그냥 수시로 봐요. 실은 제 자신도 그런 불임성 가설을 심심찮게 제안합니다. 바로 엊그제 쓴 글 "한윤형의 글을 호의적으로... Link "가 바로 그 예죠. 전 이런 하나마나한 소리, 불임성 가설추론을 꺼내지도 말라는 말은 안합니다. 경우에 따라선 생산성 있는 좋은 '착상'의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아님 그냥 재미삼아 해 볼 수도 있어요.


 다만, 자신이 지금 어떤 성격의 추론을 하는지 정도는 알고 써야 합니다. 독심술도 그래요. 남의 속내를 꿰뚫어보는 식의 추론은 '반증도 입증도 불가능'한 불임성 가설추론이에요.  이런 추론은 어떤 현상이 관찰되건 언제나 '사후'적으로 끼워맞춰 정당화시키는게 얼마든지 가능한 추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걸로 뭐든지 설명이 다 된답시고 이를 진지하게 확신하면 위험합니다. 이런 추론을 쓸 때는, 정말 위험한 도박이나 다를 바 없는 추론이란 것 정도는 알고 써야 합니다. 그런데 이 위험성을 아직 잘 모르시는 분들이 아크로에도 있는 듯 해요.  

좀 안타깝죠...

이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