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지지했다고 내가 '낙하산'?… 자기들은 낙하산 아니었나"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놓고 격돌… 病床의 박상증 목사]
"내가 큰 싸움을 한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시작부터 큰 싸움이 됐어요… 나는 그만두지 않습니다"
"민주화기념사업회가 어째서 자기네들의 독점물인가
영원히 그 자리를 점령해… 이게 저네들 민주주의인가"

환자복을 입은 박상증(84) 목사가 병상에 앉아있었다. 코와 눈 주위는 검게 부풀어 올랐고, 손목에는 링거주사를 꽂고 있었다.

―그 사건으로 스트레스가 많았던 모양이군요.

"겉으로는 전혀 스트레스가 없었어요. 평온했어요. 그런데 의식을 못했지만 내 속에서는 안 그랬던 모양이지요(웃음)."

그는 지난 2월 15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에 임명됐다. 하지만 출근 첫날 기념사업회 직원들과 관련 단체 사람들이 건물 입구를 걸어잠갔다. 닫힌 유리문 앞에서 그는 "낙하산 물러가라" "박근혜 하수인" "임명 철회 자진 용퇴"를 들어야 했다. 한때는 같은 진영의 사람들이었다. 더욱이 팔순의 나이를 감안하면 이런 봉변도 없을 것이다.

박상증 목사는 “저네들은 민주화기념사업회를 자기 소유물로 여기니까 ‘이번에 빼앗겼다’고 반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증 목사는 “저네들은 민주화기념사업회를 자기 소유물로 여기니까 ‘이번에 빼앗겼다’고 반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보식 기자
그는 진보 교계의 원로(元老)였다. '참여연대' 공동대표와 '아름다운재단' 이사장도 지냈다. 그런 그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공개 지지하면서 이런 '사단'이 난 것이다.

민주화기념사업회 건물에서의 충돌이 있은 뒤로 관련 뉴스가 잠잠했는데, 그가'대상포진' 발병으로 지난 7일 서울 시내의 한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알게 됐다. 전화를 안 받았다. 나는 통고없이 병원으로 찾아갔다. 그는 반색했다.

"이렇게 나를 광야로 끌어낸 분이군. 그걸로 시작됐으니까. 최 선생(필자) 책임도 없지 않아요(웃음)."

재작년 대선을 앞두고 나와 인터뷰한 것을 의미했다. 이 대담에서 그는 박근혜 후보 지지를 표명했던 것이다. 이런 문답이 있었다.

―민주화 운동을 했던 목사님이 박근혜 후보 캠프에 참여하는 걸 고민했다니, 박정희 시대와 화해를 한 것인가?

"나도 피해를 받았다. 그 시절을 없었던 걸로 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 대해 독선적인 입장만을 고집할 게 아니다.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운동권 후배들은 박정희의 딸 박근혜 후보만은 안 된다고 할 것이다.

"나도 박 후보를 좋아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기독교적으로 보면 세상에는 선한 정부는 없다. 덜 나쁜 정부만 있을 뿐이지. 결국 경험과 자질 중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후보를 택할 수밖에 없다. 나는 박근혜 후보를 찍겠다."

그 발언이 운동권 내부를 실제 얼마나 움직였는지는 모르나, 상징적 의미는 컸을 것이다.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승리하면서 그의 역할은 끝났다. 그가 '대가'를 원할 리 없고, 무엇보다 여든넷의 나이다.그런 그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에 임명됐을 때 그게 오히려 낯설어 보였다.

박상증 목사와 최보식 선임기자 사진
―마치 자리를 위해 박근혜 후보를 공개 지지했던 것으로 비치지 않겠습니까?

"(웃음) 나는 살면서 자리를 추구한 적이 없는데…."

―지금의 상황을 보면 그렇게 해석될 소지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 점도 있겠지만 내가 하겠다고 로비한 것도 아니고. 정부에서 맡아달라고 했을 때 내가 민주화운동을 해왔으니까 한번 해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 거죠."

―어떤 일이 해 볼 만하다는 거죠?

"민주화기념사업회는 과거 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민주주의 과제가 무엇인지, 앞으로 민주화에 관한 시민교육은 어떠해야 하느냐도 고민해야 합니다. 이는 대한민국 정체성과 관련된 이념적인 문제도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시끄러울 줄 알았나요?

"당초 하지 말았어야지(웃음). 정부 관계자에게 '지금 그 단체는 좌파들이 점령했다는데 내가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가시면 된다. 법적으로 다 조치를 해놨다'고 했어요. 이렇게 반발하고 난리법석을 칠 줄 몰랐지."

―이 연세에 명망까지 갖췄는데 입구에서 출근 저지를 당했으니….

"망신이지. 두 번 시도했지만 다 막혔지. 그러니 나를 생각해서 관두라는 사람이 많아요. 정부에서는 임명해 놓았는데 혹시 내가 그만둘까 봐 걱정하지만. 나는 그만두지 않아요. 좌파들이 '민주화기념사업회'를 점령하고서 임기가 끝났는데도 계속 하겠다니, 이게 자기네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입니까. 이왕 나섰는데 접고 가면 비겁한 인간이지. 퇴원하면 신임 이사진을 꾸리고 이사회를 열 겁니다."

―또다시 충돌이 불가피하겠군요.

"그 장소에서 이사회를 열어야지, 막으면 막히는 대로 강행할 겁니다. 만약 자기네들이 계속 점령하면서 못 들어오게 하면 우리는 기념사업회를 다른 곳으로 옮겨버릴 겁니다. 정부 예산이 끊겼는데 그 건물에 남아서 농성을 하겠다면 그것은 자기네들 선택입니다."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하군요.

"나는 운동한 사람인데, 이런 상황쯤이야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번 갈등 때 저쪽에서 '타협안'을 내놓았어요. 위원장을 받아주는 조건으로 '상임이사'는 자기네 사람이 맡겠다는 겁니다. 이사장은 비상임이고 상임이사는 상근직으로 실질적으로 사업회를 운영해요. 소위 '나눠먹기'를 하자는 거죠. 거기에 무슨 국물이 있다고. 창피한 노릇이지요. 나는 그렇게 쉽게 타협이 안 돼요. "

신임 이사장에 임명된 박상증 목사가 서울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출근하자 직원들이 문을 걸어 잠갔다
신임 이사장에 임명된 박상증 목사가 서울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출근하자 직원들이 문을 걸어 잠갔다. /뉴시스

―민주화기념사업회가 이렇게 뉴스의 초점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사장에게는 봉급과 승용차도 안 나와요. 사업회의 일년 예산은 70억원이고 상근 직원들은 40명에 불과한데, 그래도 저러니 뭔가 먹을 게 있나 봐."

―지금까지 기념사업회의 운영에 어떤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운영이 잘못됐다기보다도…. 정부에서 설명하는 말로는 '기념사업회가 출판사업을 하는데 한 출판사에서 독점하고, 출판물 표지에 인공기 같은 것도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그 출판물 표지를 보여줬어요. 이를 떠나 함세웅 신부 같은 좌파 인사들이 계속 점령해온 행태가 더 문제이지요."

―민주화 관련 단체는 으레 그쪽 인사들이 맡아왔으니까요.

"민주화운동이 어째서 자기네들의 독점물인가요? 영원히 그 자리를 점령하고 있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임기가 끝났으면 물러나는 게 민주주의지. 민주화운동을 자기네 몇 사람만 한 게 아닙니다. 어쩌면 그 시대의 국민적 운동에 가까웠던 거지."

하지만 그가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사장에 임명되자 성명서가 발표됐다.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이후 온 국민적 거부에 직면한 친일적 경향의 역사 교과서를 지지한 80대 중반 인물의 임명을 강행한 것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설립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선전포고다.'

―목사님을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사장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더군요.

"그건 그 사람들 생각이고(웃음), 나는 그 사람들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박근혜 후보를 지지해 '정치권 낙하산'이라고 하더군요.

"아이고, 자기들은 '낙하산'아닌가요."

20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 설립된 '민주화기념사업회'의 이사장은 박형규 목사(1대), 함세웅 신부(2ㆍ3대), 정성헌씨(4대)로 이어졌다.

―이번 갈등으로 목사님은 민주화운동과도 상관없다는 주장까지 나오던데요.

"나보고 민주화운동 안 했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하나. 나한테 신세진 사람들이…."

―어떤 신세를?

"민주화운동할 때 누가 돈을 대줬나. 해외에서 돈이 왔지. 그런 해외 인권 단체들과 누가 접촉하고 연결해줬나. 하나님이 알고 세상 사람들이 아는데. 다 눈뜨고 보고 있어요. 민주화운동을 안 했으면 내가 왜 이걸 맡겠다고 했겠소."

―심지어 선친의 친일 행적까지 거론되고 있어요.

"총독부의 어떤 모임에 참석했던 기록만으로 역사문제연구소라는 데서 '친일파' 명단에 넣었어. 당시 상황을 전혀 모르고서. 선친은 기독교 성결교단 목사였어요. 일제 탄압으로 그 교단은 해산됐고, 선친은 감옥에 갇혀 고문까지 당했어요. 성결교단 차원에서 항의해 구두 사과를 받고 이미 끝난 것인데. 저 사람들, 창피한 줄 모르고 하고 있어요."

―이번 임명은 절차상 문제는 있었더군요. 정부가 이사회의 추천을 받은 인물 중에서 이사장을 임명해야 하는데, 목사님은 당초 추천을 받지 못했더군요.

"민주화기념사업회법에는 추천 조항이 없어요. 정부 임명으로 하는 겁니다. 그러니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어요. 다만 관례로 그렇게 추천해온 것이지. 자기네들끼리 추천한 인물로 계속 점령해온 거죠. 지금 이사회는 이미 연말에 임기가 끝났어요. 임기가 끝났으면 손씻고 떠나는 게 도리인데…."

―'민주'가 붙은 단체들은 거의 모두 목사님의 임명을 반대하는 것 같더군요.

"몇 백개 단체를 모아봐야 자기네들이 창피해질 거요."

―명분 싸움에서는 저쪽이 우위에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조용히 있으니까 아무 힘도 없는 걸로 생각하는데, 민주화운동 세력이 저쪽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내 뒤에도 많이 있어요(웃음). 퇴원하면 내가 한번 보여주겠어요."

―박근혜 후보 지지 이후로 운동권 후배들이 대부분 등 돌리지 않았나요?

"그렇지 않아요. 나를 격려하는 젊은 친구들도 많아요. 오히려 저쪽이 '섹태리언(sectarian·종파분자)'이 됐어요.민주화기념사업회를 자기 소유물로 여기니까 '이번에 빼앗겼다'고 반발하는 겁니다. 민주주의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유치하지, 그게 뺏고 빼앗는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대국적으로 얘기해야 할 사람들이…, 안타까워요."

―지금 몸 상태는 어떠신지요?

"처음에는 통증이 심했지만 많이 나았어요. 내주초에는 퇴원합니다."

―이건 제 인생관일지 모르나, 지금 연세에는 한발쯤 물러나 성찰적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사회 운동을 평생 해왔으니까…, 내게 기회가 주어졌을때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어요. 민주화운동을 자신의 유일한 자산으로 삼은 이들이 이념적으로 우리 사회를 잘못 끌고가는 걸 더이상 방치할 수 없어요. 이 나라가 위험하다, 이건 정리할 필요가 있다, 내가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아 큰 싸움을 한판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작부터 큰 싸움이 됐어요."

그에게 동의 안 할 수도 없지만, 마음은 착잡했다.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23/20140323027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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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른 길로 간다면 과거에 민주화 운동을 한 동지라 하더라도


짓밟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외친다고는 볼 수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