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이 제목에 적힌 글의 댓글만 48개, 정작 전 바빠 지금이야 읽었습니다. 우선 분명히 해둘게 있군요. 한윤형 글에 대한 제 소감은 '실망감'에 가깝습니다. 기대를 버려야 할 것 같다는 게 그 때문이죠. 문체 뿐만 아니라 논리도 그렇습니다. 한윤형은 매우 안타깝게도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먼저 밝히자면 전 음모론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디워의 충무로 기득권 음모론, 미네르바의 음모론, 황우석의 서울대 의대 음모론, 심지어 많은 사람이 정설처럼 믿는 유태계 금융 자본 음모론, 로스차일드 음모론 모두 싫어합니다. 전 음모론이 사실, 즉 Fact 그 자체를 인식하는데 있어 장애로 자리잡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나름대로 책임있는 논객이라면 음모론에 기대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합니다. 만약 한윤형의 주장이 이런 정도였다면 전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음모론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음모론이 번성하는 조건에 대해선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에 제가 밝혔듯 황우석을 비롯해 시리즈로 등장했던 음모론의 플롯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고, 또 그런 점에서 어떤 사회적 징후를 띠고 있다고 했던 저의 옛글은 바로 그런 문제의식에서 썼던 거지요.

http://theacro.com/zbxe/?_filter=search&mid=free&search_target=nick_name&search_keyword=%EC%8B%9C%EB%8B%89%EC%8A%A4&page=3&document_srl=327402

자, 그러면 여기서 제가 도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해보지요. 도대체 '음모론'은 무엇입니까?

세상에 음모론은 많고 많지만 대개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습니다. 그건 자신들에게 제시된 정보나 의사 결정 과정은 실제 사실이 아니며 드러나지 않은 권력에 의해 조작된 것이란 믿음이 그것이죠. 대표적인게 달 도착 음모설입니다.

대개의 음모론이 황당함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갖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가장 큰 이유는 권력의 작동 방식입니다. 많은 권력은 스스로를 혹은, 그 작동 과정을 불가시 영역에 둠으로서 실제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합니다. 권력의 이런 측면은 심지어 영화의 시각적 관습에서도 확인됩니다. 절대 권력을 지닌 범죄자들은 처음 등장할 때 얼굴보다 발이나 등부터 먼저 제시됩니다.그래야 무섭거든요!

두번째는  사람의 인식과정입니다. 레비 스트로스를 비롯해 많은 학자들이 밝혀냈듯 인간은 사물의 성격을 이해함에 있어 스토리텔링화 혹은 이분법적 구분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토리 형식의 하나인 음모론은 불가시 영역에 있는 권력에 대한 비판, 혹은 견제에 있어 상당히 효용을 입증해왔습니다.

세번째는 그 동안의 경험입니다. 드레퓌스 사건을 비롯해 투명하지 않은 권력 집행 과정은 역사적으로 자주 등장했을 뿐더러 앞에 이야기했듯 실제 사실과의 부합 여부와 상관없이 음모론이 꽤 효용을 발휘하더라는 집단적 역사적 경험은 사람들에게 꽤 많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죠. 조선일보 관련건은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음모론이라 이야기하기에 민망한 감이 있습니다. 우선 음모론 특유의 정교한 이야기 틀이 없습니다. 거기에 설명하고 있는 권력 작동 방식이 사람들의 일반적 틀을 뛰어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거의 경험을 지금 투영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간단히 말해 조선일보 관련 인터넷 여론은 음모론이라기보다는 '과도한 비난' 혹은 - 극단적으로 말해 - '유언비어'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음모론과 조금 떨어진 이야기를 해보죠. 80년 광주와 관련해서 2000명 사망설이 한동안 시중에 떠돌았습니다. 대학 다니던 당시 솔직히 말해 전 2000명 사망설을 믿지 않았습니다.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저를 비롯해 믿지 않는 수많은 사람이 열심히 반박하지도 않았습니다.

왜냐?

광주와 관련된 일체의 보도나 발언이 허용되지 않는 엄혹한 조건이 있었고 그런 조건에선 온갖 유언비어나 음모론이 난무하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그건 유언비어다' 어쩌구는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유언비어를 없애는건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 그 정보를 신뢰할 만한 조건입니다. 그래서 총칼로도 사라지지 않았던 광주 관련한 유언비어들은 이후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이를 바꿔 말하면 당시의 유언비어나 음모론은 자신의 역할이 끝나자 스스로 도태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윤형의 첫 구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음모론의 번성이 인터넷이란 매체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전 사실 이 첫구절부터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부인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거든요! 앞에 이야기했듯 음모론은 권력의 작동방식이 불가시 영역에 있을 수록 번성합니다. 이 점에 동의한다면 한윤형은 '인터넷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권력은 더 불가시 영역으로 들어섰다'는 점을 입증해야 합니다. 입증되었습니까? 앞에 이야기했듯 80년 광주를 둘러싼 온갖 음모론과 유언비어들은 이후 민주화가 진척되며 사라졌습니다. 만약 인터넷이 정보의 민주화를 이루었다면 오히려 음모론은 위축되거나 변형되었다라는 가설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인터넷에 횡행하는 수많은 음모론을 들어 번성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장모 여배우 관련 음모론' '광주 관련 음모론' '디제이 관련 음모론' '신한당 관련 음모론' '청보 관련 음모론' 등등이 일상 생활이었던 80년대와 비교하면 지금의 음모론은 수는 물론이거니와 그 영향력에서 비교할 수 없을만큼 약합니다. 앞에 말하지 않았나요? 80년대 번성한 음모론과 유언비어는 그 무시무시한 군사 정권까지 무너뜨렸습니다. 지금은? 

정확히 말해 인터넷 시대의 음모론은 인터넷을 통해 널리 확산되고 자체적 경쟁을 거치면서 '순치'혹은 '체제내화'되고 스토리텔링이 나름 정교해지면서 '유희'로 진화했다는 가설도 충분히 설정 가능합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 복잡다단한 현실에서 칼로 무자르듯 유언비어나 음모론을 '잘못된 정보'라는 측면만으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랍니다. 음모론이 좋다는게 아니라요. 제가 한윤형이 어느 분야든 한 10년 굴러보는 경험이 필요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던 부분이 이런 겁니다. 한 십년 구르면 자신의 정언적 가설이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경험을 통해 발전하든지, 아웃되든지 합니다. 인터넷이 쌍방향이니 뭐니 하지만 현실의 경험을 대체하진 못합니다. 

음모론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군요. 그렇다면 이제 일반론 이야기로 들어가봅시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장자연 사건은 의외로 다양한 층위에서 공론이 필요한 주제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 법적 판단과 도덕적 책임의 충돌.
예, 법적 판단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도덕적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특히 조선일보와 같은 공적 책임이 큰 매체가 관련되었다면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게 억울하면 공적 매체 자리를 반납해야지요. 어쨌든 이건 아직 사실 관계가 명확하지 않으므로 넘어갑니다.

두번째,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 당사자의 명예에 대한 권리
전 일관되게 그 권리는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분명히 PD등을 비롯한 의혹 인물들의 신원은 비밀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조선일보'입니다. 왜냐? 조선일보는 개개인이 아니라 '매체 및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즉, 개인의 명예에 대해선 최대한 무죄추정의 원칙에 입각하여 보호되어야 하지만 - 왜냐면 개인의 권력은 다중의 비난에 비해 보잘 것 없으니까요- 권력을 지닌 공적 주체라면 이러한 원칙은 다르게 적용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간단히 봅시다. 이러한 원칙이 최근 한명숙은 차치하고 참여정부 당시 신정희때 어떻게 지켜졌습니까? 대개의 언론들이 '공인'이란 이유를 들어 다른 잣대를 들이댔지요. 그렇다면 신정희, 변양균보다 사회적 책임 및 권한이 막대한 조선일보에겐?

세번째, 가장 중요한 주제로 '극히 약자의 포지션을 갖고 있는 연예 엔터테인먼트 분야 여성 종사자의 인권 문제'
예.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 주제와 비교하면 나머진 다 사소합니다. 그렇다면 이야기해보죠. 인터넷의 여론은- 과도함이나 부정확함, 혹은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일단 제쳐놓는다면- 바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힘을 발휘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반면 조선일보는 그만두고 한윤형 글에선?  

제가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지점이 바로 여깁니다. 전 안티 조선에 대해서도 별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건과 관련한 조선일보의 태도는 충분히 비판받을 여지가 많습니다. 의혹이 제기됐을 때 그들은 개인과 다를 것 없는 '여론의 피해자' 포지션을 취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개인'이 아니라 '여론 자체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 매체'입니다. 즉 피해 여부를 떠나,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피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훨씬 더 책임있는 자세를 보였어야 합니다. 사건 해결에 대한 적극적 자세 및 해명,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및 공론화를 주도했어야죠. 그렇지만 전 조선일보가 그랬다는 말은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한윤형은?

님과 달리 전 한윤형의 글에서 모호함과 지루한 동어 반복만을 발견합니다. 그는 음모론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임을 장황히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음모론은 잘못됐고 조선일보의 태도가 옳다고 비약합니다. 그리하여 상황은 졸지에 가치 판단의 영역으로 떨어집니다. 그가 음모론을 우려한다면 상황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죄송합니다만 전 그런 내용을 찾을 수 없더군요.

한윤형의 글은 대학생이라면 그럭저럭 봐줄 수 있습니다. (아마 제가 가르치는 선생이었다면 줄 쫙쫙 그으며 '더 간결하게' 더 명확하게' ' 이 부분의 근거를 제시할 것' 등등 빨간펜으로...) 그러나 그 이상 수준에서 통하기엔 너무나 함량 미달입니다. 개인적으론 무척 오랫동안 애독하며 성장을 기대했던 사람으로서- 여기 아크로에 한윤형의 글을 소개하며 링크도 걸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짐작도 하지만 .구태여 적진 않겠습니다. 어찌되었건 그의 글이 보다 진보하길 바랍니다.

ps - 요즘 청년기 맑스에 대한 비판 및 극복이 유행이긴 하지만 아래와 같은 구절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음모론이 올바른 커뮤티케이션의 형성을 막는다'는 비판의 무기는 '음모론이 출몰하는 조건'이란 무기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다. 조건이란 물질적 힘은 조건의 제거라는 물질적 힘에 의해 전복되어야 한다. - 맑스 '음모론 비판에 대한 비판 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