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글은 아래 "기독교가 구약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라는 한그루님 글의 댓글로 쓰기 시작했다가, 글이 길어지면서 그냥 뽑았습니다.



한그루님, 사실 왜 기독교에서 구약을 버리지 못하느냐라는 질문은 제가 더 날카롭게 했습니다. ㅋㅋㅋ 오리지날리티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제 의도가 무엇이었냐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한그루님 주장은 기독교가 삼위일체설을 유지하기 위해서 구약을 짊어지고 가야한다는 주장이네요.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제가 저런 질문을 할 때 가지고 있는 원래 생각은 이렇습니다. 삼위일체설이 나오기 이전에 예수교 자체가 1-2세기 경에 유태교와 독립적으로 떨어져 나오는 데에만 성공했다면 - 다른 말로 유태인들에 대한 포교에 대한 미련을 싹 버릴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면 - 현실의 기독교 교리는 지금보다 군더더기 없이 훨씬 아름다웠을 것이다라는 주장이죠. 그 이후의 일인 삼위일체까지 갈 필요 자체가 없었다라는 말입니다.


즉, 예수라는 걸출한 종교지도자가 나왔고, 바울이라는 걸출한 시스템의 구축자(주석1 참고)가 나왔기는 했는데한명 더 해서 구약을 미련없이 버리고 신약만을 간추려서 교리를 정립할 수 있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나오지 못해서, 수세기간 갑론을박을 하던 중, 결국 니케아 공의회같은 곳에서 정치 세력의 간섭 아래에서 - 또는 정치세력과의 결탁아래 -  구약을 포함할 수 밖에 없는 어거지같은 교리가 나오게 된 것이지요. 물론 어거지라는 말에 흐강님이나 아침112님은 동의 안하시겠지만.... (이렇게 써놓고 보니 예수-바울-xxx  라는 삼위일체가 필요했군요. 아쉬비~)


즉, 유대인들을 향한 전도에 대한 미련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패러다임을 제시할만한 종교적 지도자(들)이 없었다는 것이 기독교의 비극이자 동시에 인류의 비극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류가 신이 있냐/없냐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서 훨씬 더 자유로운 입장을 가지고 신성에 다가가는 것을 누릴 수 있지않았을까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덧) 참고로 신에 대한 제 입장을 말하자면, 범신론적이 사상과 매우 흡사하다고 봅니다. 이 우주가 지금의 형태로 (그것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질서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항상 감탄사가 나와요. 그냥 우연이라고 말해도 하등에 이상할 것이 없기도 하지만, 거기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도 분명히 개인적으로 사는 즐거움이고 인류가 존재하는 가치라고 여길 수 있으므로 그것을 경외하며 즐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기본 철학입니다.




주석1) 바울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다들 아시겠지만, 중언부언하기는 싫어서 언젠가 제가 아침112님께 댓글로 적은 글을 긁어와봤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비즈니스 천재라는 말은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바로 바울때문에 지금의 캐톨릭의 구조가 만들어 졌고, 지금의 교회의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교권의 개념이나 교회의 모습이 어떠해야하는 가에 대해서 바울이 쓴 신약에 수도 없이 논했고 그게 바로 Orthodox Church의 근간이 되는 것은 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영지주의자들은 바울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죠. 1:1 전승이나 깨달음을 통해 구원을 받고, 깨닫음을 하기 위한 의식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치중한 나머지 교회를 만들어서 신자를 모으는 비지니스에 소홀했기에 성공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제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당 백인 Jedi가 있어서 포스(영성)이 높은 파다완을 제자로 키워서 또 다른 일당백의 제다이로 만드는 식으로 그 명백이 아주 강하게 유지가 된다면 모르겠지만, 이렇기 되기보다는 중간에 그 명맥이 끊길 가능성이 더 크죠. 실제로 현존하는 영지주의 문서들에 보면 교회를 어떻게 만들라는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에 대해서는 Orthodox들은 바울의 서신을 통해서 집중적으로 배웠다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신흥 종교가 성공하기 위해서 시스템을 어떻게 갖추어야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제가 천재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나온 종교들의 교회를 만드는 형식들은 대부분 바울이 한 것을 롤모델 또는 모방해서 한 것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특히나 경전과 그에 대한 해석을 중시하고 교회내에서의 모임을 중시하는 Orthodox와 개인적인 깨달음에 대한 것에 치중한 영지주의를 비교해보면, 대중포교의 입장에서 전자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훨씬 유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뜻에서 아리우스 아타나시우스의 논쟁의 결과가 어찌되었건, 역사에서는 Orthodox가 결국 승리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시는지요? 최소한 제 주장은 박근혜가 문재인을 이긴 이유에 대한 결과론적 해석같은 식의 이야기는 결코 아니라는 뜻입니다.

by 흐르는 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