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에서 수권능력을 갖춘 정당은 민주당과 한나라당뿐이다. 기타 여러 군소 정당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그들이 단독으로 권력을 접수하는 일은 아마도 당분간 요원한 일이 될 것 같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에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어쨌든 한국의 정치를 책임질 수 있는 세력은 그들 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한 현실인 것이다.

정치가 그 나라 국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라면, 두개의 거대 정당들이 어떤 모습이냐에 따라 국민들의 현재와 미래의 삶도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이해를 대변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민주당은 세간의 평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정당이며, 미우나 고우나 비판과 애정으로 다듬을 가치가 충분한 정당이라 할 것이다. 

나는 민주당이야말로 한국사회에서 존재가능한 진보정당이 맞다고 주장한다. 물론 정치이론으로만 구분하면 민주당은 분명 우파 자유주의 정당이 맞다. 따라서 아무런 맥락없이 민주당을 진보정당이라고 부른다면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안다. 어쩌면 보다 정확한 표현은 수권 능력을 갖춘 정당들 중에서는 가장 진보적이다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민주당이 과거에 없던 변화의 모습을 부단히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 심지어는 전통적으로 몸 담았던 우파 자유주의 노선을 버릴 채비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런 모습은 정책 소비자들의 선호가 바뀌고 있는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이기도 하고, 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으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의 하나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민주당의 변화는 한국 전쟁 이후 출입 금지 구역이었던 우파 자유주의의 왼쪽 공간이 마침내 개방되고 있다는 징후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이기도 하고, 민주주의나 정치개혁등의 추상적 구호로 자신들의 본심을 완곡하게 표현하던 국민들이 보다 구체성을 띤 요구로 바꾸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바로 복지와 노동을 투 트랙으로 하는 공정한 분배에 대한 요구이다.

민주당이 그런 소비자들의 변화된 요구에 따라 자체 혁신하여 한단계 업그레이드하는데 성공할지, 아니면 소비자들로부터 버림 받고 뉴페이스에게 자리를 내줄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복지쪽으로는 과거에 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또 다른 과제인 노동쪽으로는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아마도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전주 버스 파업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이 그러한 변화 노력에 대한 중간 평가가 될 것이다. 

나는 이왕이면 민주당이 보다 더 과감하게 변화에 대응하기를 주문한다. 스티브 잡스가 늘 공격적이고도 과감한 신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바탕은 애플을 응원하는 막강한 서포터급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역시 호남이라는 진보적 민중들의 막강한 응원이 있는데, 무엇이 두려워서 유시민 따위에게 협박당하고 꼬꼬마정당들을 사은품으로 끼워팔려 애쓰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부디 호남과 고통받는 노동자 농민들과 서민들을 믿고 과감하게 질러라. 민주당의 미래는 후보를 단일화하는 정치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는 정책 상품을 개발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인내심이 얼마 남지 않았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