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상상의 공동체'라는 표현

 
 한국에서 민족주의 일반, 또는 한국 민족주의에 관해 우상파괴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써왔으며 지금도 자주 쓰는 표현이 바로 '상상의 공동체'라는 표현입니다.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이론가 중에 한 사람인 베네딕트 앤더슨의 저서 표제를 그대로 따온 말이지요. 베네딕트 자신의 정의를 따른다면, 민족주의는 상상된(imagined) 정치공동체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상상된 공동체인가? 각 구성원들 간에 매일 매일 일상적인 대면접촉이 이뤄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특정 공동체로서 귀속감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상상된 공동체'라고 합니다. 베네딕트의 본의가 어디에 있었는가와는 무관하게, 민족주의를 일단 이러한 방식으로 규정한다면 즉각 다음과 같은 인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렇다면 민족주의, 또는 민족이란 실체가 없는 허깨비, 신기루에 불과하구나," 이렇게 방향을 틀고 나면, 한국과 일본, 또는 한중 간의 국가대항 축구경기에 한국국가대표팀이 이기길 바라면서 열심히 응원하는 사람들도 우상, 허깨비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사람들로 보이기 쉽습니다. 한심한 짓으로 보이겠죠. 우상파괴주의자임을 자칭하는 자들이 노리는 파괴적 효과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전 이게 약간 사기성이 있는 전술이라고 봐요. 
 우선 베네딕트의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 문제의 저서 '상상의 공동체' 전반부에서 베네딕트 자신이 명시하듯 - 우리가 보통 공동체라고 규정하는 것들 가운데 상상의 공동체가 아닌 것들이 별로 없습니다. 예들 들어 카톨릭이라든지, 개신교, 불교 등과 같은 종교공동체 역시 상상의 (종교)공동체죠. 민주당이니 한나라당 같은 정당, 경상도니 전라도니 하며 구분하는 지역, 지역감정도 이의 예외가 아닙니다. 공산주의자, 자유주의 같은 정치집단 역시 마찬가지. 베네딕트의 말을 그대로 따른다면, '실체성?을 갖춘' 공동체를 꼽는다면, 그저 가족 정도에요. 굳이 범위를 넓히면 농촌의 소규모 마을공동체 정도가 이런 실체성을 갖춘 공동체에 포함시킬 후보 정도는 되겠죠. 그러나 이것 마저도 확실치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모두 베네틱드 앤더슨이 제 1장에서 상상의 공동체를 정의하면서 하는 말을 그대로 반복한 것에 불과합니다. 


 제 의문은 바로 여기서 시작합니다.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다'라고 큰소리로 외쳐보았댔자, 베네딕트가 그 말을 하면서 덧붙인 이상의 전후맥락을 모두 알려준다면, 민족주의에 관해 이 표현이 갖는 이른바 '우상파괴적 효과'는 미미하기 짝이 없습니다. 가족과 같이 매일 매일 얼굴맞대고 사는 극히 소규모의 공동체를 제외한다면, 상상의 공동체 아닌게 없으니까요. 사정이 이렇다면, 이런 대답이 나올 수 밖에 없죠. "민족이란 매일의 대면접촉을 가지는 집단이 아니다. 여타의 거의 모든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근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 민족주의란 우상을 파괴하겠다는 나서면서 저 구호?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이런 사정을 모를리가 없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알면서도 부러 전후 사정을 숨긴다고 생각하는 수 밖에 없죠. 저 사람들의 전술이 사기성이 짙다고 여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베네딕트니 홉스봄이니 갤러 같은 민족주의에 관한 근대주의 이론가들이 주장이 파괴력이 전혀 없냐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그 파괴력의 원천은 다른데 있어요. '상상의 공동체'라는 이제는 거의 진부하게까지 느껴지는 표현과는 무관하다고 봅니다. 아 얘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