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귀족노동자, 노동귀족의 문제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죠. 엥겔스는 이미 150년전에 영국에서의 노동귀족화를 문제삼았습니다. 노동자들의 위계화와 귀족화는 자본의 입장에선 노동을 잘  통제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어서 이를 적극적으로 구사하게 됩니다. 노동의 문제가 폭발하지 않도록 임계점을 낮추는 수단으로서 노동귀족이 기능하는 것이죠. 영국에서 노동자들이 제국주의를 그 누구보다 더 찬성했다는 룩셈부르크의 언급을 보자면 노동자의 위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비용의 외부화란  이 경우에도 해당됩니다. 중심부 선진국가의 노동자는 자기들의 생산성때문에 임금을 더 받는것이 아니라 자본이 달성한 잉여가치의 구성부분에서 외부화의 결과로 초과 달성된 부분때문에 노동의 가치를 더 인정받을 뿐입니다. 그 외부화의 피해는 제국주의 당시엔 식민지들, 탈식민시대엔 제3세계가 입었죠. 영국노동자의 우대는 그렇게 형성되었고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본에 국경은 없지만 국적은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귀족이 가능하게 된것입니다만, 이는 자본과 노동의 갈등을 회피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더, 그리고 계속 잉여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 자본은 노동을 통제해야 합니다. 그러기위해서 가장 유효한 수단은 노동시장의 일국 폐쇄입니다. 자본은 국경을 이동할수 있지만 노동은 그럴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자본이 노동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힘이 발생합니다. 산업재배치라는 무기로 노동자의 조건을 강요할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실상 이주노동자를 통제하는게 단기적으로 해당 국가의 노동자들에겐 이득인지라 이 문제가 쟁점이 되지않습니다. 물론 장기적으론 그 국가 노동자도 지속적으로 착취를 당하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다른 국가보다는 그 조건에서 낫다는 것이 이 사태의 의미죠. 즉 국가간 강도의 차이만 있죠. 국가내에서 노동귀족이냐 아니면 비정규직이냐처럼.그래서 정말 자본의 노동에 대한 착취를 끝장내고 싶다면 노동시장에 있어 일국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것이 가장 유력한 방법이 될것입니다. 자본과 노동이 언제든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서로를 요구하게 되는 순간 자본주의에 내재된 본질적 문제는 결국 그 어떤 수단으로도 봉합이 불가능하게 될테죠. 


거의 대부분의 거대체제 이론가들(자본주의의 대안을 생각하는)이 노동시장의 전지구적 유연화를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겁니다. 거주이전의 자유는 국가간 경계로 막을 수도 없고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를 아예 차치하더라도 자본이 국경이 없듯이 노동도 국경이 없어야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틀리지 않습니다. 


노동시장의 완전 자유화가 일국의 한계내에서 머무는 순간 이 방법은 거의 실패합니다. 자본이  이 경계지어진 국가의 노동시장에게서 벗어나서도 충분히 살 수 있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죠.결국 노동시장의 자유화와 국가간 전면 이동의 자유화가 전세계적으로 구사될 때, 그때가 자본주의가 진정 다른 그 어떤 체제로 대체될때일 겁니다.이미 그것은 상당수준으로 진척중이고 조그만 수준에서도 이미 서구유럽에서 터키계나 아랍계등의  국가내 주변화로 이미 모순이 격화되고있죠, 독일내 터키계의 엄청난 숫자는 불안 그 자체입니다. 프랑스에서 벌어진 방리유 폭동은 이민때문에 벌어진, 결국 위계지어진 노동이 그 안에서 갈등상황을  드러낸 것입니다. 


현재의 아랍시위에서도 보듯이 이 제3세계 국가의 빈민은(그 국가내에서 인텔리) 중심부 국가로의 이동을 가속화 할 것이고 이 경우 이들은  해당국가내에서 정상적인 사람대접을 못받는 거주민(정치적 권리가 없는 비국민)이 될터. 이게 폭발적 문제가 될날이 곧 오게 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