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포지션은 단순한 반신자유주의가 아닙니다. 제도주의라는 독특한 비주류 경제학에 입각해서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국가개입주의를 긍정하고 있지요. 저는 사회주의자들의 촌티나는 반신자유주의 타령보다는, 재벌을 긍정하면서 사실은 재벌에게 가장 타격이 될 장하준식의 제도주의 사관이 훨씬 더 한국사회에 요긴한 진보적 청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호 같은 울트라 자유주의자들이 사회주의 좌파에는 무관심 하면서 장하준에 대해서는 경계를 드러내는 이유는 그만큼 장하준의 주장이 재벌 기득권에게 실제적 위협이 되기 때문이죠.

사회주의자들의 반신자유주의 타령은 공허한 울림에 그칠뿐 재벌 기득권에게 하등의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80년대식 레토릭에 함몰되어 페티시즘적 조합주의에 매몰될수록 노조는 고립되고 좌파 운동은 축소되니 재벌 입장에서는 오히려 고맙지요. 그러나 국가 주도로 성장한 재벌이 시카고 학파의 신자유주의를 수용해 사회적 책무를 방기하는 알리바이로 써먹었다는 장하준의 고발은 재벌입장에서 매우 치명적인 것입니다.

장하준이 자꾸 신자유주의를 공격하는 것도 사회주의적 유토피아 건설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도주의적 입장에서 봤을때 시장은 만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맑스의 묵시론적 자본주의 파탄론에 비해 제도주의의 시장 불완전론은 훨씬 산뜻하며 현대적이죠. 제도주의는 국가가 시장을 완전히 대체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경제관이 아닌, 국가와 시장이 상호 작용해야 한다는 일종의 에콜로지적 세계관을 표방합니다.

저는 진정한 사상 대립은 좌우가 아니라, 시장 만능론대 시장 수정론이라고 봅니다. 민주 개혁 세력이 열세인 진정한 이유는 시장 수정론에 대한 철학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러니 국가 개입과 복지 확대를 좌파라고 매도하는 한나라당의 공격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는 겁니다. 아직도 사회주의에 집착하는 진보 좌파는 말할것도 없고요, 민주 개혁 세력은 시장 만능론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영역을 개척해야 하고 현재로서 그 적임자는 제도주의가 될수 있지 않나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