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재밌더군요. 누가 봐도 삼성 냄새가 풀풀 풍기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극 중 재벌그룹의 본가라 할 수 있는 곳은 정가원으로 불리고 JK그룹이 필사적으로 원하는 것이 지주회사 전환을 통하 경영경 확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고 보여지네요.

욕망의 불꽃이 주말드라마로 기획되면서 저예산 드라마답게 세트라 미술에서 지극히 낮은 수준을 보여주는데 (재벌회장 김태진의 본가는 그냥 가회동의 좀 쓸만한 한옥 정도밖에 안되더군요) 이 드라마는 미술이나 세트 모두 최대한 돈을 들인 티가 납니다.

알고보니 일본 사회파 소설인 인간의 증명을 원작으로 각색한 모양인데, 하얀거탑에 이어 사회파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이미 재벌을 배경으로 인간을 욕망을 재현해낸다는 점에선 욕망의 불꽃이 상당한 공력을 보여주고 있는데다 뻔히 결말이 알려진 드라마를 어디까지 잘 이끌고 갈지는 의문이긴 합니다.

내용인즉 간단한데 남편이 죽고 재벌을 이끄는 김영애의 둘째 며느리인 염정아는 배경이 일천한 탓에 이름이 아닌 이니셜 K로 불리며 사람들의 공공연한 멸시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바보처럼 밟히고 있던 염정아의 모습은 일정부분 연극이었고 그녀는 기회가 오자 영리하게 가면을 벗고 본색을 러낸다는 설정.

최근 욕망의 불꽃에선, 신은경의 과도한 욕망의 집착 이면에 자신의 집안을 박살 내고 어머니를 죽게 만든 이순재에 대한 증오가 숨겨져 있다는 단서로 이어지면서 극의 밀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단편적인 평으로 이 드라마를 막장이라고 평하는 것은 한심해보이더군요. 인생이 팬시도 아닌데 집안이 망하고 부모가 죽어도 무표정하게 있거나 가볍게 터치해보려는 애들 장난 같은 얘기보다야 낫지요. 가난해서 빚쟁이에게 시달리며 온갖 멸시를 받았을 어린 시절의 신은경이 재벌 회장 이순재의 돈을 허공에 흩날리며 거절하자 필사적인 몸짓으로 이 돈은 내돈이데이 하는 장면은 앞으로도 잊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인간 본연의 누추한 본성에 대한 통찰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정말 감탄스럽습니다. 단시 A급 대본을 받혀주지 못하는 B급 PD와 미술이 문제. 상당히 돈을 들여 찍은 작가(정하연)의 전작이 시청률 면에선 참패한 것도 한 원인일 듯 싶습니다.

말이 나와서 막장이라는게 뭐 별거겠습니까. 누나랑 가슴 한 번 시원하게 빨아제끼고 떡도 친다는 걸 들키고 또 그게 소문나고 결국 누나가 자살하자 10년이상 절치부심하며 복수를 기획하더니 15년간 가둬두고 말미에는 친딸과 떡치게 만들곤 '이 자식아 기분이 어때?"하는 영화는 있는데 말인데 이 정도야 양반이죠. 뭐 올드보이야 칸이라고 하는 절대 불멸의 면죄부를 받기야 했습니다만, 이 영화에 대한 오버스러운 칭송과,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운운하는 꼰대들을 보면 어딘가 웃기곤 했지요.

아마도 두 드라마 모두 정점의 직전까지 도착한 주인공들이 조그마한 단서 하나에 처절히 무너지며 끝날 것으로 보이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캐릭터가 그냥 정점에 올라서 별 일 없이 잘 살더란 얘기로 끝맺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러한 장르가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일본식 정서가 있기 때문에 어렵겠지요. 하얀거탑이나 모래그릇을 비롯 일본의 사회파 소설들이 대개 정점의 직전에서 실패하는 것으로 끝내는 이유도 인생은 덧없는 것이란 그들의 사고방식이 깊숙히 스며들어서 그럴 겁니다.

허나 개인적으론 정점에 오른 주인공이 약자의 연약함에서 강자의 흉포함을 즐기며 끝맺는 것도 매력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