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sbs 에서 인간의 길 신의길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잘못되고 일방적인 기독교를 보여준적이 있고 그후로도 시대정신류의 다큐나 

다른 저술등을 통하여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부활이나 삼위일체교리등 여러부분이 주변 나라들의 종교를 차용하거나 

카피하였다는 주장이 난무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크로에서도 레드문님으로부터 촉발된 기독교에 대한 종교토론에서도 이러한 잘 못된 지식에 바탕을 둔 주장들이 나왔으며 많은 토론 참여자들이 제대로된 학문적 연구결과와 보편적인 지식들을 외면하고 반 기독교적인 세력들이 만들어낸 음해에 근거를 둔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논리를 전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분야이든 한가지 주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견해를 가진 주장들이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분야에 대하여 가장 객관적인

지식이나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교과서적인 책을 읽어야만 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논쟁도 이와 같습니다.

지금은 중세시대가 아니며 유럽 특히 독일 신학은 사실상 기독교인이 아닌 학문으로서 신학을 하는 학자도 많으며 미국 역시 진보적인 신학자들은 물론이고 보수적인 신학자들도 신학 연구에 대한 나름의 가이드 라인과 방법론 그리고 검증을 거쳐서 주장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신학자들이 자기 분야에 대하여 다수가 동의하고 인정한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여야 편견 없이 보다 진실에 ㅈ접근 할 수가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교리 형성에 대한 주장중에서 부활이나 삼위일체등이 주변 종교의 카피본이라는 이야기와 삼위일체등 교리를 정하는데 권력이 개입해서 왜곡되었다는 주장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기독교 교리의 형성사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무지의 소치이거나 음해를 위한 왜곡입니다.


기독교 교리의 형성은 이단에 대한 반박을 하기위하여 나왔고 이단과의 논쟁을 통하여 다듬어지고 그것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졌기에 정통 교리가 된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대다수의 교리나 내용은 이미 속사도 시대 즉 예수님의 제자들의 제자들이 활동하던 시대에 이미 신앙적 전통으로 실천되었음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콜레멘트는 로마에서 베드로와 바울의 제자

었을 것이며, 이그나티우스와 폴리캅은 에베소에서 요한의 제자

었음이 거의 분명하기 때문이다


클레멘트 제 서신

 

 연대를 주후 96 년경으로 잡는 데 일반적으로 일치하고 있

비록 그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지만 고대인들의 일치

된 견해는 당시의 로마의 감독인 클레멘트에 그 저술을 돌린다.

전통척인 로마 교회 감독의 계보에 의하면, 클레멘트라는 인물이 사도 베드로의 계

승자들 가운데 세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직위의 순서는 베 드로 주후 62-67 , 리 누스 67-78 , 콜레 투스 78-90  ,

클레멘트 90-100 년이다) . 또한 이 인물이 그 서신의 저자라는 것을 부정할 아무런 이유가 없 다.


   


예수님 부활 수 100년-200년 사이에 저술된 속사도들의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 빠른 것은 로마의 3대 감독인 클레멘트의 서신으로서 96년경이라는 연도까지 정확하게 밝혀졌는데 여기에는 벌써 부활에 대하여 고린도서와 같은 확고한 신앙이 이미 정립이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익나티우스의 편지나 디다케 12사도 교훈집등을 보면 이미 일요일 예배 성찬 부활 교회등 오늘 우리가 믿는 신앙과 이질감을 느낄만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여화와의 증인이나 안식교등이 주장한 엉터리주장들은 이러한 역사적 저작들 앞에서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그들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현존하는 기독교의 정통성이 로마 황제에 의하여 강제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고 그러한 주장이 비신자나 기독교에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수용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교부시대에도 교부들의 여러 저작물과 이단에 대한 논박등이 남아있으며 이러한 문제들은 니케아, 에배소,칼게돈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등을 통하여 하나하나 정리되고 정통 교리로 확립이 되었습니다.


콘스탄틴과 그 이후 콘스탄스등 그의 아들에 의하여 기독교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지만 그들의 관심사는 종교를 통한 제국의 통일이었고 일치였고 그러한 관점에서 교리논쟁을 접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아타나시우스 같은 정통 교리의 수호자도 유배를 당하고 추방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의회의 결과물은 누구의 외압이나 담합이 아니라 이미 각 지역에서 이단이나 교리논쟁이 벌어질때 탁월한  논술가들이

당시의 성경적 신앙적 근거를 신학적인 논리로 정리를 했으며 그러한 자료가 지금도 원본이 남아있습니다.


따라서 신약성서의 진실성이나 정통교리 성립의 정당성은 이러한 방대한 당대자료들에 의하여 입증이 되고 수많은 학자들이 이에 대하여 연구결과가 축적이 되어 있습니다.


제대로 기독교 교리가 어떻게 결정이 되었는지 그리고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곤잘레스가 쓴 기독교 사상사를 읽으면 잘 이해가 될 것입니다.

참고로 그 책은 문광부 추천 우수도서에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신앙문서에 대한 연구를 하려면 아래 자료를 참고하면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어느 분야든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주어듣거나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된 지식은 휴지조각이 되거나 엉터리라는 사실이 쉽게 드러납니다.

그러한 어설픈 지식에 의존하여 강력한 확신적 주장을 한다면 임자를 만나면 망신을 당하거나 어디에선가 전문가가 웃고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속사도 교부 문서에 대한 보다 자세한 연구를 위하여

몇몇의 문헌틀을 제시한다.


희랍어 원문은 Kirsopp Lake(ed.) , The Apostolic Fathers, The

Loeb Classical Library, 2 vols(Cambridge, Massachusetts: Ha.

rvard University Pressj London: William Heinemanll Ltd .. 1912)

 J. A. Klelst,

Aη cient Christiaη Writers series( Westminster, Maryland: Newman

Press/ London: . Longmans, Green, 1948) 를 들 수 있다.

개별적인 교부들의 연구로는 Lowther Clarke, Firsl Epistle 01

Clemeη t to the Coriη thians(London: S. P. C. K. /New York: Mac

millan Co. , 1937). Virginia Corwin, St. Ignatius aη d Christianity

η Aηtioch (Y ale U ni versi ty Press, 196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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