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좌파라는 조어의 바탕에는, 그들이 출신 계급을 배신할리가 없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출신성분을 부끄러워 했던 부르주아 운동권과의 차이점이죠. 그들이 피해가 없는 범위에서 추구하는 좌파는 굉장히 좁은 영역에 국한될수 밖에 없습니다. 좌파적 욕망이 주로 문화적인 영역에서 분출되는 것도 그때문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남 좌파가 비판 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들이 부를 누리는 것은 그들의 문제지만, 그들이 좌파나 개혁 정당에 표를 주는 것은 좌파와 개혁진영에게 이익이기 때문이죠. 순전히 이익만 주는 그들을 욕할 까닭이 전혀 없는 겁니다. 강남 좌파를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전라도 시골 사는 노인이 별로 개혁적이지도 못하면서 개혁 정당에 표 준다고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황당한 얘기죠.

그래서 강남 좌파 비판은 사실은 비판자들의 이해관계를 드러내주는 일종의 사회적 리트머스 시험지입니다. 강남 좌파에 대한 언급은 사실 나의 무엇인가를 강하게 드러내기 위한 수사적 장치인거죠.

김규항이 강남 좌파 비판에 앞장선 이유는, 강남에 자연 스럽게 녹아들어가는 좌파를 견딜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있어 문화적으로 소비되는데 그치는 좌파는 이미 좌파가 아닌겁니다. 강남 좌파는 원래의 모습을 잃고 나이브해진 한국 좌파의 현주소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에게 느껴지는 겁니다.

호남 리버럴이 강남 좌파를 사용하는 것은 경상도 출신의 좌파 지식인을 참여와 희생 없는 위장 진보로 낙인찍기 위한 수사적 어법입니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경상도 부르주아 좌파라고 욕하는 것보다는 강남 좌파라고 에둘러 욕하는게, 훨씬 근사해 보이죠. 저도 그래서 조국을 그렇게 깠고. 한편 공희준 같은 논객들이 말하는 강남 좌파는 참여 정부 시절 한 자리한 사람들을 의미하겠죠.

강남 좌파에 대해 가장 너그러운 사람들은 강남 좌파 옆집에 사는 강남 우파일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출신 계급을 배신할리 없다는 것을 너무 잘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