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사회] 좀더 양식 있게 / 김규항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62650.html

 

김규항 씨의 글을 두고 진중권 씨는 딱지치기라고 비아냥거린다.

 

[! 한국사회] 철인좌파의 딱지치기 / 진중권

http://www.hani.co.kr/arti/SERIES/57/465742.html

 

 

 

김규항 씨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원순 선생 말마따나 사회엔 시민 기반 운동(개혁이라 불리는)도 필요하고 민중 기반 운동(진보라 불리는)도 필요하다.

 

그런데 근래 들어선 아예 ‘개혁’을 떼버리고 ‘진보’로 가는 형국이다. 이를테면 오연호, 조국 선생이 얼마 전 낸 책의 제목은 <진보집권플랜>이다. 이런저런 지당하고 좋은 이야기들이 들었지만 결국 골자는 이명박 정권 교체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선거 연합, 즉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권교체를 주장하는 책이다. 과연 그런 정권교체가 ‘진보집권’인가?

 

그런 정권교체를 진보집권이라 부르는 건 그런 정권교체로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이명박이냐 노무현이냐가 그 밥에 그 나물인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부인하는 폭력이다. 진보란 먹고사는 데 별 걱정이 없는 중산층 엘리트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변화를 대다수 인민들을 위한 변화라 과장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에겐 충분한 변화더라도 대다수 인민들에게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라면 변화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개혁과 대비되는 개념은 진보가 아니라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진보는 개혁과 혁명을 모두 포괄하는 단어다. 민중 기반 운동은 대체로 개혁 운동이며 아주 가끔 혁명 운동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민중 기반 운동에 진보라는 딱지를 붙이고 개혁과 대비하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

 

김규항 씨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진보라는 딱지에 집착한다. 자신보다 우파적인 사람들이 진보를 자처하는 것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진보라는 상당히 포괄적인 개념을 독점하려는 이런 행태를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람들이 헷갈리는 것이 문제라면 자유 민주주의, 사회 민주주의, 혁명적 공산주의와 같이 덜 헷갈리는 단어를 쓰면 그만이다.

 

진보와 좌파라는 개념은 상대적이다. 여전히 왕정 또는 유사 왕정이 지배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나 북조선 같은 나라에서는 자유 민주주의를 외치면 진보이며 좌파다. 한국은 어떤가? 한나라당이 집권하고 있으며 국민의 40% 정도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을 진보 또는 좌파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 틀린 용법이 아니다. 서유럽의 기준으로 보면 자유 민주주의자에게 좌파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왜 아프리카가 아니라 서유럽이 반드시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딱지치기는 중요하다. 예컨대,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개혁을 추구하는 자유 민주주의자들 및 사회 민주주의자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 딱지치기의 중요성을 잘 안다면 진보, 좌파와 같은 애매한 딱지를 가지고 놀지 말고 혁명적 공산주의와 같이 사람들이 별로 헷갈리지 않는 딱지를 가지고 놀자. 그래야 진중권 씨로부터 위에 인용된 것과 같은 비아냥을 안 들을 수 있다. 아마 혁명적 공산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면 진중권 씨는 다른 식으로 비아냥거릴 것 같다.

 

 

 

물론 오연호, 조국 같은 분들에게, 즉 개혁적인 중산층 엘리트들에게 이명박인가 노무현인가는 ‘그 밥에 그 나물’이 아니다. 그들에게 이명박인가 노무현인가는 정권은 물론 학술, 문화, 방송, 엔지오(NGO) 등의 헤게모니를 ‘우리가 갖는가 저들이 갖는가’가 달린 절체절명의 일이다. 그들에게 그런 정권교체가 세상이 뒤집히는 수준의 변화라는 것, 그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변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을 존중한다. 문제는 그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정권교체를 굳이 ‘진보집권’이라 부르는 것이다.

 

민중에게는 이명박과 노무현이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학술, 문화, 방송, NGO에 집착하는 개혁적인 중산층에게만 이명박 정권이 위협적이라고?

 

김규항 씨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모르는 것일까? 큰 변화들 중 하나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대폭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이 훨씬 사나워졌으며 집회나 시위 자체를 금지하는 일이 훨씬 많아졌다. 물론 가장 급진적인 주장을 내 놓는 세력 즉 김규항 씨가 말하는 민중 세력의 시위가 가장 많이 억압받고 있다. 혁명적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극소수의 혁명파 역시 노무현 정권 때보다 훨씬 더 큰 탄압을 받고 있다. 이명박과 노무현 사이의 차이를 과장하는 것도 문제지만 둘 사이의 차이가 단지 중산층 개혁 세력에게만 문제가 된다고 보는 것도 문제다. 독재가 심해지면 노동자들은 시위를 하기도 파업을 하기도 어려워지며 혁명적 좌파는 아예 말도 못하게 될 때도 있다. 왜 이것은 무시하나?

 

 

 

나는 사회 민주주의 세력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과 합당하는 것에 반대하며 선거 연합에도 반대한다. 이런 면에서 김규항 씨와 의견이 비슷하다. 하지만 진보좌파라는 단어에 그런 식으로 집착해서 뭐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