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덕하님의 다음 글 http://theacro.com/zbxe/341759 에 대한 비판입니다. 

먼저 덕하님 글의 문제점 가지를 짚어 보고 생각을 적도록 하겠습니다. 덕하님 글은 [ ] 안에 넣습니다. 


1.

[이문원은 매저키즘(masochism)적 성향을 보이는 여자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 같다. 동물의 고통 기제(mechanism)가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가 감소하는 것을 가리키도록 진화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런 가정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이상해 보인다. 고통 자체를 즐기도록 설계된 동물이 잘 번식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이 손상되었을 때, 자신의 자식이 곤란에 빠졌을 때, 자신의 지위가 추락했을 때 느끼는 고통 자체를 즐기면 자신의 몸이 더 손상되도록, 자식이 더 곤란에 빠지도록, 자신의 지위가 더 추락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번식 경쟁에서 탈락하기가 더 쉽다.]


 <매저키즘적인 성향을 보이는 여자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라>는 덕하님 추측이 도대체 이문원 글 어디서 읽혀질 수 있는지? 무슨 근거로 이문원 글이 여성의 매저키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글쓴이의 명시적인 주장이 아니라 독자의 추측인 경우에는 추측의 근거부터 밝히는 것이 상식인데, 덕하님은 그냥 <이문원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고 넘어가고 자기의 근거 없는 추측을 반박하기에 바쁘시니.. 헛웃음부터 나오더군요. 추측의 근거가 애초에  제시되어 있지 않으니 이후의 논지..<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보면..이 가정은 틀렸다> 운운하는 부분은 공허한 허수아비 논증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문원은 또한 여자의 모성 본능이 짝짓기 상대를 선택할 때에도 발휘된다고 가정하는 것 같다. 이것 역시 진화론적으로 볼 때 이상해 보인다. 동물의 각 기제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설계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대체로 그런 목적과 관련하여 작동한다. 예컨대 맛과 관련된 기제는 음식을 선택할 때 사용되는 경향이 있으며, 짝짓기 상대를 선택할 때 실제로 맛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문원은 또한 여자의 모성 본능이 짝짓기 상대를 선택할 때도 발휘된다고 가정하는 것 같다> 라고 하셨는데, 이 명제에도 바로 앞의 제 비판이 똑같이 적용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덕하님은 지금 이문원이 주장하지도 않은 것을 이문원이 주장했다고 멋대로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서 자신은 <이문원의 의견에 대해> 반박을 한다는 심각한 착각에 빠져 계세요.    

 

<10,20대 여성은 젊고 잘생겼고, 부유하지만 생각은 별로 안하는 무뇌아적인 타입의 남성을 선호하지만, 30대 여성은 잘생겼고 부유하지만 지적인 남자를 더 좋아한다 >는 이문원의 주장과, <여성의 모성 본능이 짝짓기 상대를 선택할 때에 발휘된다>는 덕하님의 명제가 무슨 관련이 있나요?  

<무뇌아적인 타입의 남성>들에게 여성들이 모성애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도대체 무엇인가요? (아니면 지적인 타입의 남성들에게 여성들이 모성애를 가진다는 뜻인가?) 

백번 양보해서 덕하님 추측이 맞다고 해보지요…<특정 세대가 선호하는 이성관>을 단순히 <동물적인 짝짓기 본능>과 동일시하는 것이 매우 나이브한 사고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으신가요?

 

더 심각한 것은 <진화를 통해서 만들어진 인간의 본능 기제가 구체적인 인간의 선호와 행동까지 통제하고 결정한다>는 논리를 덕하님이 자신의 기본 공리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는 점이예요. 특정 시기와 장소에 선호되는 이성관을 인간의 진화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행위와 의지, 그리고 가치관의 형성에는 진화를 통해 만들어진 본능 기제와 분명히 구별되는 사회 경제적, 문화적인 변수가 개입하기 마련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일언 반구도 하지 않고 진화 심리학적인 설명틀에 어긋나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설명을 배척하고 있어요. 이것은 인간의 유적인 특성이 인간의 사회적, 역사적인 특성을 규정한다는 것이 참일 때에만 타당한 논리인데, 덕하님은 이런 논리를 신봉하시는지?

 

이런 조야하고 근거 없는 생각이 진화 심리학의 기본 공리인지는 잘 모르지만, 진화 심리학이 인간의 사고와 행위와 가치관이 진화 심리학을 통해 밝혀지는 인간의 본능 기제를 통해서, 그리고 오로지 그것만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덕하님이 즐겨 쓰는 표현 방식을 빌려서 말하면 <진화 심리학의 주제 넘은 월권>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어요. 

 

 

[모성과 관련된 기제가 짝짓기할 때 발휘되면 대체로 번식에 이롭지 않다. 심지어 모성 기제가 자신의 자식이 아닌 다른 자식에게 발휘될 때에도 대체로 번식에 해롭다. 아기처럼 무기력한 남자를 짝짓기 상대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는 여자는 제대로 번식할 수 없다.

 

인간이 대체로 고통을 피하는 경향이 있으며 짝짓기 대상을 선택할 때에는 모성 기제와는 매우 다른 기제가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에게 매저키즘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며 모성 기제가 짝짓기 상대 선택에도 광범위하게 작동한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그 근거를 대 보시라.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이문원의 주장을 말장난 이상으로 대접해 줄 수 없다.]

 

<아기처럼 무기력한 남자를 짝짓기 상대로 선택하는 경향>이라고 하셨는데, 정말로 이문원이 <무뇌아적인 남자>로 이런 성향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시는지? 이문원 글을 읽고 <모성 본능…> 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정말 이해가 안가던데 이제서야 조금 감이 오는군요.

 

 덕하님은 이문원의 주장을 <10, 20대 젊은 세대의 여성들은 (다른 세대 여성이 갖지 않은) 모성 본능이 있어서,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유약한 남자를 선호한다> 이렇게 이해를 하셨군요. 기사를 제대로 읽으셨는지 의심이 드는데굳이 말하자면 이문원이 말하는 10,20대 여성들은 오히려 덕하님이 말하는 것과 정반대의 타입의 여성, 즉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타입에 훨씬 더 가깝다고 봐요. 10,20대의 한창 영악하고 새파랗게 젊은 여자애들이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허약한 남자들을 찾아 다니겠어요? 돈은 많고, 집안 살고, 거기다가 잘 생겼으면서 순진하게 자기만 좋아하고.. 한마디로 꽃남 구준표 같은 타입이 젊은 얘들의 로망이다.. 이문원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 아닌가요? 요즘 20대 젊은 여자애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30대 여성들과는 달리 문화적인 자극을 상대적으로 못 받고(타르코프스키 희생운운하는 부분), 경제란에 허덕이며 88만원 세대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한마디로 말해 자기 앞가림하기에 급급한 요즘 시대의 악조건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선호하는 이성관도 철저하게 안전하고 영악하게 변할 수 밖에 없었다.. 이문원이 하려던 얘기가 이런 건데..이게 잘 이해가 안되시는지?   

 

2.

 

 제가 보기엔 덕하님이 오로지 진화 심리학의 시각에서만 세상과 사회 현상을 바라보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심각한 독해의 오류가 발생하는 것 같아요.

 

 

이문원씨의 글의 테마는 모성애와 짝짓기의 관계 같은 인간(혹은 여성)이 유적인 존재로써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본능 기제가 아니예요.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21세기초 남한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젊은 여성들의 이성관이 어떤 변화를 겪었고, 그 차이를 가져오게 된 사회, 경제적, 문화적인 배경이 뭐냐>가 이문원이 던지는 질문인데, 덕하님은 지금 이문원의 질문도 캐치를 못했고 이문원이 던지는 질문의 차원과 같은 차원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지도 않아요. 이렇게 되니 문제의 핵심은 못잡고 엉뚱한 이야기나 나올 수 밖에 없는 거지요.

 

 

만약 덕하님이 이문원이 말하는 것과 같은 레벨에서, 이문원의 주장을 제대로 반박하려고 하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선행 과정을 거쳐야 해요.

 

1)    이문원의 주장의 내용을 먼저 제대로 파악하고: 

2)    이문원의 주장이 진화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유의미하게 해석될 수 있는지 밝히고,

3)    그렇게 진화 심리학적으로 이해된 사회 현상이(예컨대 세대 차이에 따른 여성들의 선호 이성관의 변화) 이문원이 주장하는 설명 방식과 어떻게 서로 같은 차원에서 반박될 수 있는지 보여주어야 해요.    

 

덕하님은 이 세 가지 기본 조건 중에 어떤 것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네요.

 

다음은 덕하님이 왜 그런 생각의 틀을 벗어날 수 없었는지에 대한 제 나름의 설명이예요.

 

 <존재하는 현상에 대해 논하는 모든 서술 방식은, 과학의 '교권' 속하고, 그렇기 때문에 엄밀한 입증에 근거해야 한다. 진화 심리학은 엄밀한 입증 방식을 거치고 있지만 다른 설명 방식들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설명 방식은 현상에 대한 설명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덕하님은 대강 이렇게 생각하는 같아요.

 

존재하는 현상의 영역은 크게 자연 세계와 사회 세계로 나누어 지지요. 그런데 자연 세계와는 달리 사회 세계는 인간의 의사소통을 통해서 만들어 지는 영역 이예요. 자연 세계는 인간의 의지 없이 저절로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영역인 반면, 사회 세계는 인간들의 의지가 개입되고 그 의지를 통해서 역사적으로 구축되고 형성되어온 공간이예요.

 

이것으로부터 분명한 것은, 자연 세계에서의 팩트들은, 엄밀한 인과 법칙을 통해서 설명될 있는데 반해, 사회 세계에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이해는 인과적인 설명 보다는 인간의 의사소통과 행위에 대한  '해석'을 통해 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예요. 이 말은 자연 과학과는 달리 사회 과학에서는 사회 현상을 다루는데 있어서 필연적으로 인간의 행위를 <이해 하고 해석>하는 차원이 들어간다는 말이지요.

 

진화 심리학은 제가 보기엔 이런 사회과학적 설명방식의 해석학적 차원을 결정적으로 놓치고 있어요. 인과 법칙에 따른 엄밀한 입증(사실 진화 심리학의 교리 자체가 엄밀한 입증이 가능한 영역인지는 매우 의심스럽지만. 이것은 별론으로 하고) 에만 집착한 나머지, <존재하는 영역은 오로지 과학의 교권만이 통용된다> 는 식의 말로 해괴한 울타리를 치고, 사회 현상, 특히 인간의 행위와 내적인 동기에 대한 해석이 중심이 되는 모든 설명 방식을 <비과학적>,<학문이 아니다>, <헛소리다> 같은 말들을 동원하여 사이비로 폄하해 버려요. 이 말이 얼마나 위험하고 오만하고 웃긴 소리인지.. 사회과학의 방법론과 자연 과학의 방법론의 사이에 어중간하게 걸쳐 있으면서가끔 가다보면 소위 진화 심리학자들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건지 자신들이 종사하는 영역의 학문성에 대한 투철한 반성을 하고는 있는지가 궁금해질 때가 있어요. 진화 심리학이 지적으로 옹졸하고 편협하게 느껴질 때는, 바로 지금처럼 진화 심리학이 자신의 교권을 벗어나 만용의 날개를 펼치기 시작할 때예요.

 

P.S> 자연주의 오류를 덕하님 방식대로 이해해도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뭔가 많이 어색하더군요.

존재에서 당위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당위에서도 존재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얘기지요. 덕하님은 그 뒤집은 부분을 잡아서 설명을 하셨는데, 보통 자연주의 오류는 존재에서 당위를 이끌어 내는 논증 방식을 비판하는 용어예요. 예컨대 <인간들이 본능적으로 이렇게 이렇게 진화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런 성향을 가질 것이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말한다면 이것도 넓은 의미의 자연주의 오류에 속합니다. 자연주의 오류에 빠지가 쉬운 위험성이 가장 큰 사람들이진화 심리학자들 처럼  바로 인간의 자연적, 본능적인 성향에만 천착하는 사람들이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