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이 글은 도덕 철학의 교권이 아니라 과학의 교권을 다룬다. , 운동을 분석하려는 글이지 운동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글이 아니다. 꿈만 꾸는 유토피아 사회주의자(Utopian socialist, 공상적 사회주의자)들과는 달리 칼 마르크스는 우선 세상을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마르크스는 단지 지적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운동의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기 위해 현실을 분석하려고 했다. 과학과 도덕 철학(또는 이데올로기)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래에 링크된 글 중 특히 셋째 논점 – 과학의 연구 결과가 가치에 영향을 끼쳐야 하는가?를 참조하라.

 

<과학의 가치 중립성과 진화 심리학>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299

 

이 글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분석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느낄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자였으며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생각 중 절반 정도는 지금도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생각과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 중대한 차이가 있다.

 

첫째, 마르크스주의자들을 포함하여 온갖 비진화론적 학파에서 명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인간 본성론이 등장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암시적으로 가정하는 것들에 대해 명시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명시적으로 가설을 제시한다.

 

둘째, 기능론적 사회학자들이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방법론적 집단론(methodological groupism, 방법론적 집단주의)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기능론적 사회학자들은 사회 전체를 유기체로 보는 경향이 있으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계급을 유기체로 보는 경향이 있다. 반면 나는 상당히 철저하게 방법론적 개인론(methodological individualism, 방법론적 개인주의)에서 출발한다.

 

개체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하나의 유기체에 근접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개미 군락(colony)이 그렇다. 하지만 인간은 개미가 아니다. 개미의 경우 예외가 있긴 하지만 여왕 개미만 알을 낳는다. 이것은 인간의 경우 정자와 난자를 통해서만 유전자가 후대로 전달되는 것과 비슷하다. 심장이나 팔에 있는 세포 속의 유전자는 정자와 난자가 성공하도록 협력하는 것을 통해서만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복제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일개미 속에 있는 유전자는 여왕 개미가 성공하도록 협력하는 것을 통해서만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복제할 수 있다(위에서 언급했듯이 예외가 있다). 이것이 한 인간 속에 있는 각각의 세포들이, 한 군락에 속한 각각의 개미들이 고도로 조화롭게 협력하는 이유다. 노동자 계급을 형성하는 개인들은 그 정도로 조화롭게 협력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노동자 개인이 모두 독립적으로 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마르크스의 계급 개념을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계급 자체를 하나의 유기체처럼 분석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개인 역학에서 출발하여 계급 역학을 구성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진화 심리학에 대한 좌파의 태도는 창조론자와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또한 진화 심리학자들은 대체로 좌파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좌파의 관심사인 노동 운동이나 학생 운동을 진화 심리학을 끌어들여서 분석한 글이 전혀 또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나는 그런 글을 본 기억이 전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쓴 글에 대단한 통찰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둘 사이에 어떤 연결점이 있는지를 거칠게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득, 비용, 성공률

 

사자가 사냥을 할 때에는 이득, 비용, 성공률을 고려한다. 사자는 쥐와 같이 아주 작은 동물을 사냥하는 법이 거의 없는데 그 이유는 쥐 사냥으로 얻는 이득이 사자 같이 큰 동물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너무 보잘것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사자는 어른 코끼리들의 무리를 습격하는 일도 별로 없다. 왜냐하면 성공률도 낮으며 비용 즉 다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일 것이다. 사자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성공률을 고려한 비용/이득 분석을 더 잘 했던 사자가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자연 선택에 의해 그런 분석을 할 수 있도록 진화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인간도 성공률을 고려한 비용/이득을 분석하는 기제(mechanism)가 진화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제는 성공률이 높을수록, 비용이 작을수록, 이득이 클수록 어떤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만약 그렇다면 노동자 개인이 노동 운동에 나서기로 결정할 때에 또는 학생 개인이 학생 운동에 나서기로 결정할 때에 이런 비용/이득 분석 기제가 작동할 것이다.

 

 

 

 

 

절대적 빈곤

 

동물이 번식하기 위해서는 우선 생존해야 한다. 생존해야 할 뿐 아니라 번식을 위한 예비 에너지도 있어야 한다.

 

극단적으로 굶는 방법으로 살을 뺀 여자가 생리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과거 사냥-채집 사회에서 살이 많이 빠질 정도로 장기간 굶었다면 그것은 여자가 다이어트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근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기근의 시기에 임신을 위한 예비 에너지도 없이 임신하는 것보다는 나중을 위해 당장은 임신을 포기하는 전략이 더 낫기 때문에 그런 상태에서는 배란이 되지 않도록 여자가 진화한 듯하다.

 

생존과 임신에 대한 위협은 번식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따라서 절대적 빈곤에서 탈출하는 것은 번식의 관점에서 볼 때 큰 이득이다. 인간의 욕망은 적응적 이득을 가리키도록 진화한 것 같다. 적응적 이득이 클수록 더 강렬한 욕망을 느끼는 식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절대적 빈곤에 빠질 때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을 품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노동자가 투쟁에 나설지 여부를 결정할 때 작동하는 비용/이득 분석 기제에서 그런 욕망이 입력 값으로 입력되는 것 같다. 투쟁과 관련된 욕망이 클수록 이득도 크다는 뜻이기 때문에 욕망이 클수록 투쟁에 나서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클 것이다. 따라서 절대적 빈곤이 만연하는 나라에서는 폭발적인 투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상대적 빈곤

 

번식 경쟁은 상대적 경쟁이다. 자신이 잘 번식했다 하더라도 남이 더 잘 번식했다면 완벽한 성공은 아니다. 자연 선택에서는 유전자 풀(gene pool)에 어떤 유전자가 차지하는 절대적 숫자가 아니라 상대적 숫자가 기준이다. 어떤 유전자 자리(locus, 유전자좌)에 대립유전자 AB가 있다고 하자. 다음 세대에 A의 수가 두 배 증가 했다 하더라도 B의 수가 세 배 증가했다면 결국 A가 차지하는 비율은 감소한 꼴이다. 따라서 B의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인간이 상대적 지위에 집착하도록 진화한 것 같다. 상대적 빈곤이 심각하면 즉 빈부격차가 심각하면 인간은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을 품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빈부격차가 큰 나라일수록 노동 운동이 폭발할 가능성이 더 크다.

 

상대적 지위에 대한 집착은 왜 노동자도 상당히 풍요롭게 사는 선진 산업국에서 노동 운동이 멈추지 않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폭행, 해고, 감옥

 

노동자는 노동 운동으로 임금 인상과 같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경찰이나 구사대로부터 폭행을 당할지도 모르고, 해고 당할지도 모르고, 감옥에 갇힐지도 모른다. 요컨대 노동 운동에 참여하다가 노동자 개인은 비용을 치를 가능성이 있다.

 

인간은 왜 폭행 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일까? 폭행 당하면 신체가 손상될 가능성이 있으며 신체가 손상되면 번식에 지장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인간이 폭행 당하는 것을 피하도록 진화한 것 같다.

 

해고 당하면 돈을 벌기 힘들며 지위도 떨어진다. 현대 사회에서 돈을 못 벌면 번식에 지장이 있을까?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오히려 가난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보다 더 잘 번식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통계도 많이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돈과 번식이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은 현대 산업 사회에서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자원이 많고 지위가 높을수록 더 잘 번식했던 사회에서 진화했다. 따라서 인간은 자원과 지위를 추구하도록 진화했을 것 같다.

 

감옥에 가면 돈을 벌기 힘들다. 또한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된다. 인간은 자유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있어 보인다. 자유에 대한 욕망의 진화론적 이유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남의 욕망에 따라 행동한다면 자신의 번식이 아니라 남의 번식을 위해 봉사할 가능성이 크다.

 

독재 국가일수록 노동 운동을 하다가 폭행 당하거나, 해고 당하거나, 감옥에 가기 쉽다. 따라서 노동자 개인이 노동 운동을 하기로 결심하기 어렵다.

 

숙련 노동자는 미숙련 노동자보다 해고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대체할 노동자를 쉽게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숙련 노동자는 투쟁에 나서기 쉽다.

 

 

 

 

 

호황과 불황

 

호황인 시기에는 완전 고용에 더 가까워진다. 따라서 해고를 당해도 지위와 임금이 비슷한 직장을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결국 파업하면 해고해 버리겠다는 사장의 위협이 덜 먹힌다. , 노동자 개인이 치르는 노동 운동의 비용이 작다. 불황의 경우에는 반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호황은 노동 운동을 활성화하는 쪽으로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고려해야 할 것이 또 있다. 불황이 되면 사람들이 가난해진다. 그러면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 따라서 노동 운동으로 노동자 개인은 절대적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불황은 노동 운동을 활성화하는 쪽으로 영향을 끼친다.

 

고려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호황이 되면 자본가에게 자금 여유가 더 있다. 따라서 자본가가 더 쉽게 임금을 인상해 준다. 즉 노동 운동의 성공률이 높다. 이런 면에서 호황은 노동 운동을 활성화하는 쪽으로 영향을 끼친다.

 

이렇게 상황이 복잡하기 때문에 호황 자체가 또는 불황 자체가 노동 운동을 활성화하는 쪽으로 영향을 끼치는지 아니면 반대인지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무임 승차

 

무임 승차의 문제는 노동 운동에서도 발생한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도 임금은 올라간다. 반면 폭행, 해고, 감옥 등의 비용은 파업에 참여한 사람만 치른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럴 때에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 전략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많은 노동자들이 합리적으로 보이는 무임 승차 전략을 선택하지 않고 파업에 참여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여기에서는 한 가지만 살펴보자.

 

우리 조상들의 진화 역사에서도 무임 승차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인간은 무임 승차를 심하게 하는 사람을 피하도록 설계된 것 같다. 그런 사람과 친구가 되면 자신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과거 사냥-채집 사회에서 친구를 사귀지 못한 사람은 번식에 심각한 지장이 생겼을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은 무임 승차만 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남들에게 평가 받지 않도록 진화했을 것 같다. 장기간 같이 사는 사람들을 계속 속이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이기적 인간으로 비치지 않기 위해서는 실제로 어느 정도는 이타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무임 승차할 기회가 있더라도 어느 정도는 자제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무임 승차만 일삼는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이득으로 이어지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에는 오히려 손해를 본다. 왜냐하면 친구를 사귀기도, 결혼을 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작정 무임 승차만 하는 전략은 합리적인 전략이라고 볼 수 없다. 물론 대다수가 착하게 살 때 소수가 지극히 이기적인 전략을 취하는 것이 통할지도 모른다. 일부 진화 심리학자들은 정신병질(psychopathy)이 빈도-의존 선택(frequency-dependent selection, 비율-의존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고 본다.

 

 

 

 

 

양의 되먹임과 폭발적 투쟁

 

투쟁에 나서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해고 당할 가능성이 작다. 사장의 입장에서 볼 때 전체 노동자의 1%를 해고해도 공장에는 별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전체 노동자의 90%를 해고한다면 상당 기간 공장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체 노동자들을 구해서 교육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고 당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은 곧 노동자 개인이 노동 운동의 비용을 적게 치러도 된다는 뜻이다.

 

투쟁에 나서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투쟁의 성공률이 높아진다. 전체 노동자의 10%가 파업할 때보다 90%가 파업할 때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뻔하다.

 

요컨대 투쟁에 나서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투쟁의 비용도 줄고 성공률도 높아진다. 따라서 투쟁에 나서기로 결정하는 노동자가 더 많아지는 방향으로 영향을 끼친다. 그러면 투쟁이 더 커진다. 그러면 투쟁의 비용은 더 줄고 성공률은 더 높아진다. 이런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은 사장의 입장에서 보면 악순환이다.

 

 

 

 

 

정의감과 학생 운동

 

노동 운동이 직접적 물질적 이득 즉 임금 인상에 대한 욕구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많은 반면 학생 운동은 정의감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많아 보인다. 적어도 상대적으로 볼 때 그렇다.

 

정의감의 기원은 무엇인가? 나는 양심이나 정의감도 자연 선택의 산물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만약 양심이나 정의감이 자연 선택의 산물인 인간 본성이라면 식욕, 성욕만큼이나 근원적인 욕망이다.

 

이런 근원적 욕망이 있기 때문에 적지 않은 학생들이 폭행, 감옥과 같은 시련이 있음에도 학생 운동을 하기로 결정하는 것 같다.

 

 

 

 

 

운동 내에서 벌어지는 지위를 둘러 경쟁

 

인간은 지위에 집착하도록 진화한 것 같다. 특히 남자가 더 심하다. 이것은 높은 지위가 남자에게 더 큰 번식 이득을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노동 운동 조직이나 학생 운동 조직이 자리 잡고 그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조직으로 인식되면 그 조직에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경쟁이 일어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그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된다면 아무리 운동 밖에서 노동조합이나 학생회를 우습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회사나 공공 기관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높은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 차별이 제도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여성 차별 말고도 남녀의 선천적 심리 차이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남자가 지위에 더 집착하기 때문에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더 기를 쓴다는 것이다. 남자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경향은 노동 운동이나 학생 운동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다.

 

남녀의 차이와 관련한 사정이 어쨌든 이런 경쟁은 운동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끼칠 때가 많다. 왜냐하면 더 열심히 투쟁에 참여하는 사람이 대체로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사례

 

이승만 정권 시절에는 불황이었으며 가난했다. 이 때 나타났던 투쟁에서는 상대적으로 절대적 빈곤이 강력한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호황이었으며 이승만 정권 시절보다는 훨씬 부유해졌다. 이 때 나타났던 투쟁에서는 상대적으로 상대적 빈곤이 강력한 영향을 끼친 것 같다.

 

1987 6월에 거리에서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커다란 시위를 벌였으며 두환은 중대한 양보를 했다. 그 후 노동 운동이 폭발했다. 당시에는 호황이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해고 걱정을 덜 해도 되었으며, 자본가가 양보할 여지도 많았다. 게다가 군사 독재가 무너질 기미를 보였기 때문에 폭행이나 감옥의 위험도 줄었다. 투쟁이 커지자 위에서 언급한 양의 되먹임 현상도 일어난 것 같다.

 

1987년 이전에 한국 사회는 상당히 지독한 독재 국가였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민주주의를 가르쳤다. 학생들은 민주주의가 정의라고 배웠다.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 뻔히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의 선천적 본성인 정의감이 민주화 운동으로 나타난 것 같다.

 

그 이후로 한국은 상당히 많이 민주화되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줄어든 것이다. 나는 이것이 학생 운동이 사그라든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1997년 이전까지 한국 경제는 30년 넘게 거의 중단되지 않고 호황을 누렸다. 그러다가 1997년에 큰 불황이 찾아왔다. 불황 때문에 대학생들의 취직 걱정이 늘어났다. 학생 운동의 비용이 증가한 것이다. 이것 역시 학생 운동 퇴조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1991년 소련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했다. 동유럽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한국 학생 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변증법적 유물론>, <역사적 유물론>, <과학적 사회주의>와 같은 제목을 단 소련과 동독의 공식 교과서를 보고 무엇이 정의인가에 대해 배웠다. 자신들이 모범으로 삼았던 체제가 붕괴하자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심각한 혼란에 빠졌다. 다른 일부는 북조선의 김일성주의를 받아들였는데 1990년대가 되자 모범으로 삼기에는 너무 한심한 체제라는 것이 더욱더 분명해졌다. 왜냐하면 1990년대 이후로 북조선 경제가 붕괴했으며 민주화된 남한과 정치적으로도 크게 대비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한국 학생들의 정의감이 사라졌다기보다는 혼란 때문에 정의감이 길을 잃은 것이다. 무엇이 정의인지에 대해 확고한 생각이 있을 때 그런 방향으로 행동하기 쉽다.

 

 

 

 

맺음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방법론적 집단론을 받아들이는 경향 때문에 무임 승차 문제를 무시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그들은 공산주의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무임 승차 문제에도 무관심하지만 노동 운동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무임 승차 문제에도 무관심하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일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식으로 무임 승차할 수 있으며, 노동 운동과 관련하여 노동자는 파업에 참여할 때 생기는 비용을 치르지 않고 파업의 성과를 나누어 가지는 식으로 무임 승차할 수 있다.

 

나는 방법론적 개인론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무임 승차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인간 본성의 어떤 측면들 때문에 무임 승차라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개인이 파업과 같은 운동에 참여하는지 설명하려고 한다.

 

나는 이 글에서 제시한 요인들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 제시한 요인들만 따져도 충분히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난점을 한 가지만 언급하겠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정의감은 비용/이득 분석 기제를 초월한 어떤 힘으로 보인다. 하지만 평판으로 얻는 이득과 치르는 비용까지 고려하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정의감 역시 비용/이득 분석 기제의 일부다.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원하고 해고 당하기를 싫어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너무 뻔하다고 느낄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어떤 면에서는 결코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왜 폭행 당하는 것을 싫어하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사람들은 폭행 당하는 것을 싫어하도록 사회화되었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인가, 아니면 폭행 당하는 것을 싫어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는가?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그런 식으로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가설이 가망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해고 당하는 것을 싫어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는가? 그럴 리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사냥-채집 사회에서는 고용이나 해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해고 당하는 것을 싫어하는가? 단지 그렇게 교육 받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해고가 인간의 선천적 본성인 지위 추구와 자원 추구와 충돌하기 때문인가? 정의감은 교육의 산물인가, 아니면 인간 본성인가? 온전한 설명이 되기 위해서는 진화 심리학자들이 던지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또한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야 노동자 개인의 행동을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노동자 개인의 행동을 더 정확히 예측해야 노동자들의 집단인 노동자 계급의 행동을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대충 얼버무리기 때문에 방법론적 집단론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2011-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