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죠. 바로 신화나 영웅으로 인구에 회자되던 정치인들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것입니다.  (쿠데타와 관련있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제외. 윤보선이나 최규하같은 특이한 케이스도 제외). 이승만은 김구와 쌍벽을 이루는 우익 독립운동의 영웅이었고, 김대중과 김영삼은 민주화의 영웅, 노무현은 고졸 신화와 청문회스타에 진정성의 영웅, 이명박은 샐러리맨의 신화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었죠. 현재 차기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인 박근혜는 박정희라는 산업화의 영웅을 백그라운드로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그런 시각으로 보면 박근혜가 차기가 될 확률이 만만치 않다고 하겠죠.

그러한 영웅들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한국 사회의 주류라 할 수 있는 서울대 출신이나 재벌가 집안 출신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최근까지 3연속 상고 출신 대통령이 배출된 것도 결코 우연만은 아닌 듯 하구요. 그러고보니 영웅들에 맞서다가 거꾸러졌던 유력 정치인들은 어이없게도 대부분 서울대나 재벌가 출신이군요. 이회창 박찬종 이인제 정동영 정주영 정몽준 등등. 즉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을 바라보는 영웅이 되려면, 비주류 출신이 몸을 일으켜 주류측 대표선수들을 제압하는 스토리가 필요하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김영삼은 좀 특이한 케이스인데, 자신이 서울대 출신임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죠. 아마 전략적인 계산하에 그리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2012년 대선 구도를 살펴 보면, 부친의 후광에 쌓여 있는 박근혜를 제외하고는 영웅급 인물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시민 손학규 한명숙 정동영 오세훈 김문수 정몽준 등등. 국민들에게 확 어필하는 영웅적 아우라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고 모두 고만 고만한 잠룡들뿐이죠. 불쑥 솟은 박근혜 밑에 10% 미만의 지지율로 줄줄이 늘어서 있는 것도 혹시 어쩌면 그런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만약 박근혜가 없었다면, 한국 정치사 처음으로 영웅급 인물의 등장없이 치러지는 최초의 대선이 아닐까 싶군요. 그리고 앞으로도 한국 사회에 그런 영웅급 인물은 아마도 더 이상 출현하기 힘들 것으로 봅니다. 영웅의 출현에는 격변의 시대가 필요한데, 사회 구조가 점점 고착화되고 있는 한국에서는 힘든 일이 되겠죠. 

저는 이제 영웅들의 시대가 제발 좀 끝났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영웅급 인물들의 존재로 한국 정치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흥행몰이에 도움이 되지만, 정당의 책임정치나 정책 선거가 어려운 측면이 있거든요. 과거처럼 영웅이 정당을 이끌고 표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정당의 우산 아래 여러 유능하고 다양한 인물들이 민주적 경쟁으로 리더쉽을 만들어내고, 그들이 생산하는 정책과 노선이 표를 모으는 정치가 정말 필요하다고 봅니다. 날로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 한 사람의 영웅적 카리스마로는 더 이상 통치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벌써 샐러리맨의 신화이자 영웅이었던 MB 가카가 어떻게 한국 사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어가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한가지 더 바램을 늘어놓자면, 영웅이었던 아버지를 등에 업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악몽의 5년이 펼쳐지리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전에 진보개혁진영이 민주적 리더쉽을 만들어 박정희라는 유령의 아우라를 밀어내고, 정책으로 압도하는 선거로 제대로 판을 벌릴 수는 없겠습니까? 이제 총선까지는 1년, 대선은 2년도 채 안남았네요.

PS - 유빠들에게 한마디 조언해주고 싶은 말은, 유시민은 절대 영웅급 인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빠들이야 유시민을 영웅으로 삼고 싶고, 유시민 본인도 영웅이 되고 싶은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는데, 주제 파악 좀 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분열과 뺄셈의 제왕, 앵벌이와 협박 정치의 영웅이라면 뭐 인정해 줄 수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