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사회 게시판
反이명박으로 야권이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오랜만에 서프라이즈에 들어오니 게시판이 발칵 뒤집힌 모양이다. 적지않은 서프앙들이 게시판의 변화에 당혹스러워하고 있고 운영자 독고탁도 연속되는 글을 통해 진땀 흘리며 해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략 방향성이 '反이명박을 기치에 내건 민주개혁진영의 승리'로 모아지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게 논란의 본질을 빗겨가고 있는 것 같아 몇가지 짚고 넘어가려 한다.
기억을 더듬어 1997년 대선국면으로 넘어가보자. 노동법 날치기 처리, 종금사 부도, 김현철 스캔들, 한보 비리, 기아자동차 파업, IMF 외환위기... 그야말로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숨이 헉헉 넘어갈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 1년간 계속되었고 YS와 한나라당이 국가를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로 몰아갔음에도 불구하고 12월 대선을 6개월 앞둔 1997년 여름까지 여론조사 1~2위를 다투던 인물은 김대중이 아닌 이회창과 이인제였다. 정치에 있어서 만약이라는 전제는 없지만 당시 우리가 IMF 구제금융을 받지 않고 그냥 대충 넘어갔다면 아마도 김대중이 아닌 이회창이 무난히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것이다. IMF 외환위기로 국가와 민생이 도탄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DJ와 이회창의 득표율차는 1%에 불과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적어도 대통령선거에 있어서 만큼은 정당이 아닌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투표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회창을 김영삼의 후계자로 보기 보다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인물로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회창은 YS와의 연관성을 지우기 위해 YS를 한나라당으로부터 출당시켰고 YS인형 화형식까지 벌였다. 뿐만 아니라 이인제의 독자출마에 대해 도리어 반기는 부분도 있었다. 왜냐하면 이인제가 YS의 후계자 이미지를 가져가는 것이 도리어 본인의 대선전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DJP 연합 성사 이전까지는 이회창의 예측이 상당부분 먹혀들어갔다.)
이곳에서 상당수 서프앙들은 국민들 대다수가 MB정권 4년차에 이명박에 대한 분노와 실망이 하늘을 찌르기 때문에 '反이명박'의 기치로 야권을 하나로 모으기만 하면 무난히 승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그 열쇠는 과연 박근혜를 국민들이 이명박의 후계자로 지목할 것이냐 아니냐인데 1997년 이회창의 사례를 보면 상당수 국민들은 박근혜를 이명박의 후계자가 아닌 또 하나의 새로운 인물로 볼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2002년 DJ 지지율이 곤두박질쳤음에도 민주당 소속 노무현 지지율이 치솟았던건 그를 DJ의 후계자가 아닌 새로운 인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反이명박'은 답이 아니다.
야권을 분열시킨 김대중과 야권을 하나로 모은 노무현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은 김대중을 야권통합의 상징인물로 보고 노무현과 유시민을 야권분열의 상징인물로 본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1997년의 김대중은 야권 분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2002년의 노무현은 야권 통합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다시 말해 김대중은 정계에 복귀하면서 이기택-노무현-조순-김정길 등과 함께 만들었던 통합민주당을 깨고 새정치국민회의라는 독자정당을 만들어 집권했고, 노무현은 유시민-김원웅의 개혁당과 연대했고 정몽준과의 후보단일화까지 이뤄내면서 실질적으로 야권을 통합시켜 집권했다.
왜 이토록 김대중의 길과 노무현의 길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일까? 그 열쇠는 세력분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97년 당시 김대중의 동교동계는 야권내 최대 세력이자 주류 세력이었고, 2002년 당시 노무현의 친노세력은 야권의 소수세력이자 비주류 세력이었다. 바로 이같은 세력의 차이 때문에 김대중은 과감하게 분열과 독자세력화로 승부수를 던졌고, 노무현은 통합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본인의 의지적 측면 이외에 현실에 대한 냉혹한 분석이 이같은 상반된 행보로 나타났다고 보아야 한다. 분열의 길을 걸은 사람, 통합의 길을 걸은 사람 둘 다 집권에 성공했으니 분열은 무조건 악이고 통합은 무조건 선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해답이 보인다.
그렇다면 현재 민주당의 상황은 어떠할까? 동교동계-호남세력과 친노 비호남세력 중 어느 쪽의 세력이 더 클까? 이런 질문 자체가 사실은 우스꽝스럽다. 왜냐하면 민주당 85개 의석 중 호남(전남/전북/광주)과 비례대표를 합한 숫자가 44석이고, 수도권과 충청권 상당수 의원이 범동교동계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현재 민주당 내에서 친노계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의 비율은 20%도 안된다. 따라서 1997년 김대중과 2002년 노무현만 갖고 분석하자면 아무래도 2002년 노무현의 길이 정답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서프 운영자인 독고탁도 2002년 노무현의 길 쪽으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정답일까?
유시민을 위한 변명...그리고 유시민의 길
정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명분'을 앞세우는 종합예술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실리'를 점하기 위한 권모술수와 몸부림도 함께 갖고 있다. 따라서 지나치게 명분론에 함몰되면 혹 단기적으로 성과를 거두더라도 일장춘몽으로 끝나게 되고, 지나치게 실리에만 집착하면 이회창, 이인제, 정몽준, 김민석 등 당위와 명분을 모두 잃어버리고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아 끝내 노회하고 무능한 퇴물로 전락하게 된다. 그래서 그 길은 명분과 실리의 양 극단 중간 어딘가에 있다.
다소 끔찍한 예상이기는 하지만 만일 2002년 민주당 후보경선에서 노무현이 아닌 이인제가 승리를 거두고 12월 대선에서 이회창에게 패배했다면 아마도 민주당 당권은 온전히 노무현과 친노세력이 잡았을 것이고 당을 완전히 쇄신한 상태에서 5년을 준비하여 2007년 대선을 맞이했더라면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명박이 아닌 노무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5년을 치밀하게 준비한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은 2002~2007 5년간 했던 일보다 훨씬 더 많은 성과를 국민과 역사에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2년 전 불행한 일도 없었을 거다.
유시민이 노무현의 길과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참여정부의 좌절과 실패를 지근거리에서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2002년의 노무현은 집권 그 자체에 목적이 있었지만 2012년의 유시민은 집권 뿐만 아니라 집권 후 민주개혁진영의 업그레이드와 세력 확대까지도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높아질대로 높아진 국민들의 기대수준과 눈높이를 어떻게 맞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유시민 입장에서는 가장 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통합이라는 구호와 분열이라는 행보를 함께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는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있다. 적어도 그의 문제의식 속에는 통합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뿐 그 자체가 지고지선의 목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 고뇌를 충분 이해한다.
야권단일후보 손학규? 정동영? 정말 그게 최선입니까?
글 첫머리에서도 언급했듯이 총선에 임하는 국민들의 마음가짐과 대선에 임하는 국민들의 마음가짐은 확연히 다르다. 총선은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대선은 정당보다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한나라당 후보 박근혜와 민주당 후보 손학규(혹은 정동영) 중 누가 더 참신하고 개혁적이냐에 관한 부분이다. 물론, 이곳 서프앙들이야 당연히 박근혜보다는 손학규가 낫다고 말하겠지만 그 범위를 대한민국 국민 전체로 확대하면 반드시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다.
만일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접수하여 대선후보로 선출된다면 당연히 한나라당은 친이계로부터 친박계로의 대대적 변화와 혁신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수구정당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박근혜는 졸지에 참신한 인물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민주당은 어떠한 변화도 혁신도 없이 현재의 세력판도가 내년까지 그대로 이어져 손학규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다면 상대적으로 그의 참신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도 왠지 한나라당이 참신해보이고 후보도 왠지 박근혜가 참신해보이는 어이없는 착시현상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유시민의 행보는 야권대통합의 불안요소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권교체의 유일한 희망요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가 없다면 민주당의 변화와 혁신을 결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2년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세론을 구가했던 이회창이 노무현에게 어이없이 패배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민주당과 노무현이 국민들에게 짧은 시간 안에 보여주었던 역동성이었다. 유시민을 좋아하는 사람이건 싫어하는 사람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현실은 지금 이 시점에서 유시민이야말로 야권에서 유일하게 역동성을 가질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와같은 역동성을 가진 유시민이야말로 대선 후보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써먹을 수 있는 카드다. 그래서 지금은 그를 감싸안아야 한다.
어차피 서프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유시민을 좋아하는 사람이건 싫어하는 사람이건 그가 갖고있는 정치적 가치와 자산에 대해서만큼은 객관적으로 평가했으면 한다. 그래야 비로소 2012년 정권교체의 해답이 보일 것이다.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uid=236770&table=seoprise_12
거기에 대한 반박글(예. 제가 썼습니다.)
유시민이 분열주의라는 공격을 받자 통합만이 지고지선이 아니라는 논리로 유시민을 두둔하고 있다. 그래서 분열과 선명성 강화를 통해 대권을 쟁취했던 김대중의 예를 든다. 그리고 박근혜에 맞설수 있는 대중성과 신선도를 가진 정치인은 유시민임을 강조하며 유시민 대권론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왜냐하면 노무현이 통합으로 대통령이 되거나 김대중이 분열과 선명성 강화로 대통령이 된게 아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노풍으로 대표되는 선명성을 바탕으로 "후보 단일화'라는 현실적 정치 책략을 통해 대통령이 된것이고 김대중은 호남과 충청 연합이라는 지역등권론으로 집권한것이다. 결코 분열이냐 통합이냐 하는 것만으로 집권 요인을 말할수 없다.
분열이나 통합 모두 하나의 방법론에 불과하다. 대권 가도를 위해 더 중요한것은 지지기반의 확대다. 지지기반의 확대를 위해 분열과 통합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유시민이 안되는 이유는 통합론으로 확보된 잠재적 지지를 분열적 행태로 잃고 있기 때문이다. 반한나라당 후보라면 누구라도 찍어줄 지지자마저 안티로 만드는 행태로는 절대로 대통령이 될수 없다. 김대중의 분열과 선명성은 지지기반에 상처가 없는 정치 공학이었지만 유시민의 분열은 지지기반 자체를 축소시키는 자멸적 행위다.
유시민이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지지기반을 다지고 확대해야 한다. 이건 진짜 충고니까 새겨 듣길 바란다.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유시민 지지자들이 민주당을 인정하는 것이 있다. 지금 처럼 유시민 지지자들 간에 반민주당 정서가 팽배하다면 절대로 통합 후보가 될수 없다.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uid=236849&table=seoprise_12
제가 굳이 글을 이렇게 올린 이유는...
흑수돌씨의 글을 보고 제가 느낀 웬지 껄쩍지근한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서입니다.
그 감정이 어디서 온건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 껄적지근한것때문에 반박글까지 올렸으니 감상하시길.
뭐 후반부 유시민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부실하지만
그러나 반론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참신성과 역동성 이 부분은 생각해야 할 부분이라는
지금까지 국민은 노무현부터 이명박까지 참신성에 무게를 두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고 상당히 불안정한 국정운영이었습니다
과연 이번 대선에도 그럴것인가?
이번 대선에서는 보다 안정감있고 검증되고 믿을만한 사람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다만 정책은 뭔가 변화가 큰 내용을 들고나와야 할 것입니다
출처(ref.) : 자유게시판 - 써프 논객 "흑수돌"의 글과 반박글 - http://theacro.com/zbxe/free/342385
by 묘익천
노무현이 매번 부산에 출마해도 오히려 돌아온 것 차디찬 냉대였으니깐요. 민주주의 관점에서는 3당합을 감행한 김영삼이 배반자였지만 부산민심은 이기택과 노무현을 배반자로 보았고 또 이인제등이 있었기 때문에 통민당 세력들은 정치적 지분이 전혀 없었던 상태였죠. 결국 그 당시 충청에 나름 정치적 지분이 있었던 김종필과 DJP연합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었는데 이것은 그 당시 현실정치구도에서 정권교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그 당시 영남패권주의에 대항한다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물론 김영삼의 배신으로 김대중 쪽으로 옮겨왔던 통민당 출신들은 김대중의 선택을 아직도 분열로 보는 것 같지만 통민당 측은 이미 정치적 지분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 상태에서 그게 진정 분열인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그 통민당 출신들 중에 몇은 또 한나라당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죠. 어차피 영남에서 끌어올 수 있는 최대치는 그 당시 별로 없었던 상태였다고 봐야겠죠.
그리고 2002년 대선에서는 이미 김종필과의 연대는 끊어진 상태이고 또 정권교체도 완성된 상태이므로 개혁의 계속적 추구와 사민주의로 통하는 좌파적 가치의 확대를 고민하는 시점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런 시점에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부각되기 시작했고 나아가 떨어질 것을 알면서 부산에 출마했다는 지역주의 저항 이미지를 구축했었던 것이죠. 물론 노무현은 김대중이 정계복귀를 했을때 다른 통민당 출신과는 다른게 김대중을 지지했고 그 과정에서 민주당의 전통세력에게도 호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죠. 즉 노무현의 대선에 당선될때 전통적 민주당지지(주)+영남일부의 지지와 그 당시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정몽준을 지지(부)가 참으로 절묘하게 결합되었던 것이죠.
바로 이 시점에서 노무현은 자신의 당선 이후 너무 정세를 낙관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노무현의 당선이후 자기들 지지했던 세력을 잘 화합시켰어야 했지만 그 부분에서 실패했다는 점입니다. 바로 지난 대선에서 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지지세력들이 분열되고 반목했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다 서로 분열적으로 싸우다 보니 기존의 민주개혁세력에 나름 호감이 있었던 중간층(2002년 대선에서 한때 정몽준을 지지했던 층)도 진절머리를 내고 고건지지를 표명하게 됩니다. 이 고건지지층이 나중에 일부 이명박으로 넘어가구요.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은 자신의 기존 지지기반(지역적으로 호남+수도권과 정치적으로 민주개혁세력)에 충청의 지지기반 그리고 아이엠에프라는 시대적 환경에 의해 당선되었던 거죠. 여기서 영남을 기반으로 했던 통민당은 정치적 지분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2002년 대선을 기점으로 충청은 어느정도 분리되고 대신 노무현이 선거에서만 일종의 이미지 정치로 영남의 일부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상에서 노무현이 끌어들인 세력에는 지난 독재에 투쟁했던 민주개혁세력을 지지하지 않았던 얼치기들이 많았다는 거죠.(소위 영남창유빠들이 이들인데 과거 김대중 이회창이 붙었을때 이회창을 찍다고 자기 지역출신 노무현이 나오자 이번에 이회창 대신 노무현을 찍은 밀가루같은 지지층이 이들이져.) 여기서 노무현은 기존의 민주개혁세력과 이들 영남세력을 결합시키는데 실패하고 오히려 영남세력을 얻기위해 기존의 민주개혁세력을 갈구게 됩니다. 그 과정에 중간층만 떨어져 나간게 아니라 골수 민주개혁세력들도 하나둘씩 떨어져나가버립니다. (물론 탄핵정국만해도 처음에는 노무현의 진심을 믿었지만 나중에 대연정 이런 소릴하고 부동산정책에서 실패하면서 노무현에 대한 배신감으로 대부분 실망하고 떠나가 버리죠.)그런데 그에 비해 영남의 지분은 그 만큼 모아지질 않았어요. 그게 바로 노무현의 정치실험이 실패한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즉 영남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전라도씨 어쩌면서 말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고전한 이유가 기존지지자들이 상당부분 이탈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설사 남아있던 사람도 과거 같이 열정적이지 않은 상태였고 나아가 친노의 정치적 지분(특히 영남에 대한)은 거의 확대되지 못하고 기껏 통민당 수준으로 꼴아박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중에 노무현 서거정국이 펼쳐지면서 잠시 바람이 일어나는 듯 했지만 역시 미미한 정도입니다.
애시당초 DJP연합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연합한 것이므로 기존의 전통적 지지층에 커다란 훼손이 없었고 오히려 그 이후 지지층을 계속 확대해 갈 수 있었습니다. 반면 노무현때 전통 민주개혁세력과 소위 영남유빠들은 애시당초 그 사고방식부터 차이가 많은 집단인데 노무현이 영남의 지역주의 기반을 확보하겠다는 명목으로 분열주의적 태도를 보이므로써 서로 난닝구 빽빠지 이런 상태가 되어버리면서 전통적 지지층에 커다란 훼손이 와버리게 된 겁니다.
그 결과 전통적 민주개혁세력은 모이질 않고 또 중간층도 냉담하고 영남지분은 거의 확대된 바 없는 상태에서 치루어진 지난 대선 총선은 당연히 원사이드하게 일방적으로 밀릴 수 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다 지난 지방선거부터 다시 전통적 민주개혁세력이 다시 민주당을 결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구요.
결국 노무현의 정치실험은 실패했고 노무현이 정치적 자살을 한 이후 일시적 서거정국과정에서 생긴 영남유빠들의 지지율 5프로와 박찬종을 지지했던 심정의 지지율 5프로가 합쳐저 바로 지금의 유시민지지율이 된 겁니다. 문제는 이들은 지난 지방선거를 계기로 다시 복원되어가는 기존의 전통적 민주개혁세력과 물과 불의 관계라는 것이죠. 결국 지지층이 확대되는 것이 아니고 지지층이 이반이 더 크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장 지난 지방선거에서 유시민과 한명숙만 떨어진 사태가 벌어진 이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민주당 간판의 지방의원은 오케이지만 유시민은 싫다는 비토층이 바로 기존의 전통적 민주개혁세력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여기서 반유시민의 전통적 민주개혁세력을 호남으로 등치하는 서영석류의 주장이 오류라는 것은 이미 다른 분 글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결국 유시민의 아이콘 자체가 분열의 상징이 된 것이죠. 그것도 핵심 지지층에서 비토하고 있습니다. 유시민이 대권후보로 나오게 되면 지지층이 확대되기는 커녕 기존의 지지층이 빠져나가게 될 공산이 더 크다는 것을 저번 지방선거는 너무나도 잘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노무현식 영남공략은 실패했다는 것은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복지와 같은 정책적 대안으로 지지기반 확대하고 그것으로 영남을 공략해야지 이미지 정치로 해봤자 그 지지가 결합되기 힘들다는 것을 지난 노무현 정권의 정치실험이 잘 보여주었습니다. 유시민은 바로 그 실패한 실험을 또다시 반복하겠다는 똥배짱으로 나오고 있지만(그 결과 아에 민주당이 절단나도 그에게는 상관이 없는 듯 보입니다. 어차피 그에게 한나라당은 연정해도 되지만 구민주당은 수구였을 뿐이니깐요.) 지난 지방선거는 유시민류의 정치컨셉은 분열만을 확대하고 상당한 피로감만 더해 주었음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결론은 유빠들과의 섶부른 결합은 자멸을 초래할 뿐이므로 매우 신중해야 하고 지금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복원된 전통적 민주개혁세력을 제대로 잘 지켜나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리고 다음 대선에서 박빙의 승부를 연출해 갈 대안을 마련하는게 성급한 과제입니다.
저는 오히려 그런 관점에서 과거 DJP연합의 측면에서 정통진보세력과 복지정책을 가지고 연합하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보신당이나 민노당이 통합하고 그 안의 인물을 키웠어야 하는데 저번 지방선거에서 심상정이 완전히 망가진게 못내 마음 아픕니다.
어쩌면 다음 대선은 DJP연합의 역발상 즉 진보세력과의 연합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DJP의 역발상으로 인해 결국 진보세력도 자신의 지분을 키워갈 좋은 타이밍이 될 겁니다. 어쨋든 실제 국정을 맡아봐야 국민들의 인식에도 심어지는 것이니깐요.) 시대사적 측면에서도 그게 한번을 필요할 때가 되었고 나아가 한국의 지역주의가 가지는 독특한 성격 즉 지역적 차별이 계층적 차별도 함께 가져왔다는 측면에서도 서로 연합을 할 명분도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시민식의 천박한 지역주의관이 아닌 제대로 된 지역주의관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진보세력이 저번에 민노당 진보신당 분당과정과 유시민의 심상정수술로 인해 거의 궤멸직전입니다. 유시민은 민주당만 망가뜨린게 아니고 진보세력도 궤멸시킨게 지금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 관점에서 그는 어쩌면 한나라당의 트로이목마일지도 모릅니다. 심상정이 지난 지방선거에 당선되었다면 전 그게 오히려 최선이었다고 봅니다. 그래야 한 몇년 경기도지사를 맡으면서 인물경쟁력을 계속 확보했을테니깐요. 그랬다면 차후 대선판도가 많이 바뀌게 되었을 겁니다.(물론 서울까지 내주는 것은 좀 부담이 있죠. 경기도가 딱이었습니다.)
좀 더 덧붙인다면 '민주당'과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합쳐진 당'이 각자의 지지층을 확대해 가면서 서로 연합정치를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봅니다.(머 솔직히 말하면 진보세력의 정치지분이 확대되는게 선결과제죠. 그래야 연합이 가능하니. 지금의 진보지분은 솔직히 좀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심상정이 좀 컸으면 하는 바램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노무현의 정치실험을 교훈삼아 그 과정에서 지지자들도 서로 화학적인 결합이 이루어지도록 연대의식도 만들어 가면서 서서히 통합정당으로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꾸준히 10년간 서로 각자의 지지층을 확대하면서 서로 연합정치를 펼쳐가면 설사 정권창출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충분히 한나당과 대등한 수준의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나아가 서로간의 공통분모와 연대의식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데 그래야 배신의 정치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처럼 난닝구니 빽빠지니 하는 분열적 작태(그런 의미에서 진중권류들은 좀 자제좀)를 거두고 서로간의 연대의식을 만들어갈 이론적 실천적 고민을 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비로서 통합정당으로 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너무 급하게 섞어놓으면 권력투쟁만 남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분을 가지고 서로 연합해야지 지분도 없으면서 배짱부리는 정치는 그만합시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세력은 자신의 지분확대를 위한 현실적 방법으로 민주당과 연합하여 도시자라도 배출해서 자신의 세력을 확대해 가고 민주당은 민주당 나름데로 중도층을 껴안으면서도 좌클릭을 제대로 수행해야 합니다. 서로 연합하면서 진실되게 10년정도 같이 가면서 통합을 모색하는 것이 모두가 사는 방법이 아닐런지요. 과거 DJP연합처럼 지방선거 총선에서는 서로 합리적인 권력배분을 하고 대선에서는 지분이 적은 쪽이 민주당을 밀어주는 딜을 하는 것이죠.(문제는 진보세력이 그런 딜을 할 만큼 확실한 지분이 있느냐겠죠. 진보세력이 자신의 실력을 국민에게 보여줘서 그런 지분을 마련할 수 있는 발판을 민주당은 마련해줄 필요는 있읍니다만. 그렇다면 제대로 된 지분도 없으면서 무작정 서울시장부터 양보하라는 것은 좀 아닌것 같고 이런 식의 무리한 요구를 하면 또 서로 감정싸움이 되겠죠. 제가 보기엔 차근차근 밑에서부터 해가는 것이 서로에게 가장 좋습니다. )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DJP연합은 대북정책의 차이로 인해 단순 연합에서 끝났지만(대부분 연합에서 끝날거라고 봤음) 민주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은 여러 공통분모를 마련해 장차 통합도 생각해 봄직한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사실 김종필보다는 진보세력이 독재타도 투쟁의 경험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민주당과 더 공통점이 많으니깐요. 지지자들도 서로 융합될 가능성이 높구요.(물론 그렇다도 충청권을 확대하는 전략을 포기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확대해야겠죠.)
결국은 정치인이 미래의 큰 정치를 바라보고서 어떻게 지지자간의 화합을 이끌어내느냐가 가장 큰 관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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