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누군가 2008년 경제위기와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혁명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면 미친놈 소리를 들어야겠죠. 그러나 아인 랜드 라는 여성의 삶과 사상에 대해 알게 되면 마냥 허튼 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득세기였던 지난 20여년동안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했던 앨런 그린스펀 미 연준의장이 아인 랜드의 수제자였다는 건 본인도 인정을 하는 바이고, 지난 2008년의 경제위기는 그린스펀 의장이 자신의 스승 아인 랜드의 위험한 사상을 구현하기 위해 미국의 경제를 볼모로 삼았던 결과라는 주장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아인 랜드는 러시아 혁명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복한 유태인 가정에서 살다가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미국으로 망명한 여성이라는 이야기까지 듣다 보면 대충 그림이 그려지실 겁니다. 당시 아인 랜드의 어머니가 미국으로 떠나는 딸에게 '우리가 어떤 지옥에서 살고 있는지 꼭 가서 알려다오' 라고 했다네요.

대충 아인 랜드의 사상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이기주의적 개인주의를 절대 신뢰하고, 모든 이타주의와 평등주의를 악으로 보는 극단적인 자유주의라고 하겠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대부 하이에크를 기회의 평등 운운한다며 공산주의자라고 비판했다니 대략 어떤 수준인지 상상할 수 있다 하겠습니다. 그린스펀이 예상외로 신자유주의 학자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는 편이었는데, 그들을 공산주의자라고 비판한 스승때문이라는게 유력한 추측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데, 미국에서는 필그림 파더들의 개척정신, 프래그머티즘등과 함께 현대 미국인들의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아인 랜드의 여러 주장중에 인상깊은 것은, 과학이든 예술이든 기업활동이든 천재나 유능한 개인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는 그들에게 일체 아무런 규제나 간섭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부를 누리든 어떻게 살든 불평등하니 마니 따지거나 상관하지 말고 내버려두라는 것이죠. 그래야 나머지 평범한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언뜻 듣기에 말도 안되는 주장처럼 보일 수 있는데, 그리 간단하게 넘어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단 스티브 잡스에 열광하는 애플매니아들은 알게 모르게 아인 랜드 사상의 영향권하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겠죠. 미국 정부가 스티브 잡스나 애플사에 이런 저런 규제나 간섭을 한다면 절대 가만 있지 않을테니까요. 아마도 아인 랜드가 아직까지 살아있었다면, 아이폰을 들고서 '봐라, 내 주장이 맞지 않았느냐'며 득의 양양 했을거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몇년전 이건희 회장이 '한명의 인재가 십만명을 먹여살린다'고 말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런 주장 역시 원 저작권자는 아인 랜드죠.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만약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삼성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어디선가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고 있을거라는 주장에 뭐라고 반박하실 지 궁금합니다. 

자유기업원에서 출판하는 책들의 목록을 보면 하이에크와 프리드먼과 함께 권위있는 저자로 대접받고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한번 읽어볼 수도 있겠죠. 물론 저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지라,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폰은 나오자마자 사서 쓰고 있지요. 누구든 100% 맞는 주장만 할 수 없고, 100% 틀린 소리만 늘어놓는 것도 또한 불가능하듯이, 아인 랜드의 기괴한 주장에도 맞는 부분은 다만 10%라도 있을 겁니다. 인류는 정확히 그 10%만 뽑아내서 이용해먹는 놀라운 동물이고요. 아이폰 만지작 거리면서 잠시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