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의 저술들 중에 '남자들에게' 라는 책이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책의 주제는 시오노 나나미의 '남성론' 이다. 책을 읽은지 하도 오래 되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중에 지금껏 기억 속에서 살아남은 인상 깊었던 대목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남자의 매력에 관한 부분이다. 그 부분은 나나미의 생각을  직접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나나미가 일본의 유명한 사교계의 마담(?)과 만나 나눈 대화를 전해 주는 형식이다.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일본의 기라성 같은 파워 엘리트 남성만을 상대해 온 그 여자에게 나나미가 <가장 매력적인 남자는 어떤 남자인가?> 라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나나미에게 돌아온 답변은 그녀가 예상했던 답변과는 조금 달랐다. 그 마담은 이렇게 대꾸했다. <지적인 남자가 가장 매력적인 남자다> 

 여기서 그 마담이 말하는 지적인 남자란 좋은 학벌에 엘리트 코스를 차곡 차곡 밟고 사회 지도층이 되었거나 또는 장래에 될 것이 분명한, 한마디로 전도 유망하고 돈 잘 버는 주류 엘리트 그룹의 남자형과는 거리가 좀 있다. 물론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지적인 남자가 없으리라는 법도 없지만, 사회적인 지위나 교육 수준과 지적인 남자는 범주적으로 서로 무관하다는 말이다. 그럼 어떤 남자가 지적인 남자인가? 확실치 않지만, 순전히 기억을 재구성해서 나름대로 풀어 쓰면 이렇다. <지적인 남자란 자신의 말을, 자신의 스타일대로 풀어 낼 수 있는 센스를 가진 남자다>. 

 한마디로 사고가 상투적이지 않고 참신하면서, 감수성이 예민하여 대화 상대방에게 대화의 기쁨을 안겨줄 수 있는 남자. 이런 남자가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이런 타입은 정신적인 독립성이 강하여 사회적인 위치와 상관 없이 자기 자존감도 매우 높고, 또 약간 이기적인 성향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한마디로 쉽게 다가가기에 어려울 수도 있는 타입이다. 그렇지만 또 이런 타입의 남자가 은근히 배려심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 번 친해지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호감도는 가면 갈수록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필자는 이런 종류의 '지적임'에 관한한, 시오노 나나미가 전형적으로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나미는 여자니까..남자 중에서 한 사람을 꼽아 본다면..우리 나라의 홍상수 감독이 이런 스타일이라고 본다. 홍상수의 영화나 작품 세계에 대한 판단과는 상관 없이, 홍 감독이 이런 종류의 지적인 타입이라는 이야기다. 홍 감독에 대해 이런 이미지가 만들어 진 것은 예전에 본 티브이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리포터와 자신이 영화를 찍는 동기에 관해 대화를 하는데 그때 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참 능구렁이 같이 능수능란하게 잘하는 구나> 

 홍감독에게 젊은 20,3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규모의 팬덤층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얼마 전에 영화 공부하는 지인과 그 팬덤층의 여성들에 대해 대화한 적이 있다. 강원도의 힘인가, 홍상수의 영화에 나오는 한 여자 캐릭터의 이름을 딴 '길숙이' 같은 타입의 여자가 있다고 하는데, 지인의 말에 의하면 그 팬덤층이 딱 그 길숙이 타입의 여자들이라고 한다.  

<길숙이들>은 어떤 타입의 여자들을 지칭하는가? 길숙이들이 어떤 종류의 여자들인지를 말해보면 대개 다음과 같다. 이런 여자들은 주로 프랑스 영화와 철학, 예를 들어 들뢰즈나 바슐라르, 혹은 고다르 같은 작가들을 찾아서 읽고, 또 뮤지컬과 비주류 영화에 열광을 한다. 프랑스 철학과 문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딱히 인문학 전반에 관심을 가진다고 보기는 어려워서, 이런 부류의 여자들이 범위를 넓혀서 칸트나 플라톤까지 찾아 읽으리라고는 별로 기대하기 어렵다. 또 이런 문화적인 취향을 가진 여자들은 대개 자신의 취향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서, 대중 가요나 한국의 대중 영화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잘 듣지도 않는다. 또 문화적으로 이런 취향을 가진 여자들은 대개 사회적으로도 고양된 자의식과 감수성을 가지고 있어서, 페미니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페미니즘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다. 그네들은 한마디로 사회의 억압에서 해방되고 가족보다는 자신의 인생이 더 자유로워지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처음 등장했던 90년대 중반의 문화적인 상황을 살펴보면, 대개 이런 <길숙이 타입의 젊은 여성들>이 등장하고 배양될 수 있는 문화적인 토양이 잘 형성되어 있었다. 지금은 눈에 띄게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여성주의 운동이나 프랑스 철학이 그때는 유행처럼 번져 나갔던 시대였다.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보러 얼마나 많은 길숙이들이 동숭동을 찾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때에는 지금보다 훨씬 오래 소위 말하는 예술 영화들이 영화관에서 상영될 수 있었다. 취업 준비와 실용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리들이 점령해 버린 지금의 대학가 분위가와는 달리,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융성했던, 거대 담론을 다루던 사회과학 동아리들이 점차 쇠퇴하는 자리를 사진과 노래, 문예, 풍물놀이패, 혹은 여행이나 봉사 동아리 같은 문화와 일상, 그리고 주변 사회를 테마로 하는 그룹들이 채워 나갔던 시대였다. 대학 축제 때의 분위기는 또 어떠했는가? 매번 아이돌 그룹의 공연 위주로 구성되면서 저항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주류 상업주의 문화에 완전히 편입된 지금의 대학가 축제 분위기와는 달리, 그때의 대학가 축제 속에는 주류와 운동권 문화에서 갈라져 나온 상이한 흐름들이 혼재하면서 비판적인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 보고 있었다. 요컨대 그때의 대학가에는 일반적으로 상업주의에 대항하는, 상대적으로 대안적인 문화에 대한 지향점이 분명히 존재했다.  


 2. 

 이문원이 글에서  던지는 핵심적인 질문은 대중 문화 산업이 20 30대의 젊은 여성층에게서 이끌어 낸 두 가지 팬덤, 즉 김주원식 남성 신드롬과 귀연이표 무뇌아 왕자님 (혹은 꽃보다는 남자의 구준표) 식 남성 신드롬에서 나타나는, 젋은 여성 세대의 문화적인 지향성들의 차이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는 것이다. 이문원에 따르면 젊은 여성들이 욕망하는 남성관이 세대에 따라 차별적으로 변화했고, 그 차이는 바로 '지적임' 과 '무뇌아'라는 핵심 키워드로 규정되는, 두 대중 문화 신드롬에서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문원은 IMF를 전후하여 우리 사회에 불어 닥친, 사회 경제적인 처지의 급격한 변화에서 젊은 여성들의 사회 심리적인 변화의 원인을 찾는다. 

이렇게 대중 문화 신드롬에서 나타나는, 여성들이 남성들을 욕망하는 방식의 차이를 사회 경제적인 환경의 변동에 따른, 문화적인 배경의 변화에서 찾는 분석 방식은,  얼핏 보기에도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방식을 통해서 90년대 중반에 불어닥친 문화적인 신드롬들과 2000년대 후반에 찾아온 문화적인 신드롬들을 관통하는 것들이 잘 설명되기 때문이다.  프랑스 영화, 프랑스 철학,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대한 신드롬. 물론 이것이 그 당시 20대 여성들이 처한 사회심리학적인 상황을 모두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신드롬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 시기의 세대를 관통했던 정신적인 상황, 나아가 그 문화를 소비했던 사람들의 욕망의 코드를 추론해 볼 수 있다. 

다시 길숙이들로 돌아가 보자. 길숙이 같은 타입의 여자들이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 같은 타입을 좋아할까 아니면 <시티홀>의 조국 같은 타입을 좋아할까? 김은숙 작가가 드라마 중간 중간 김주원이 순수 문학 시집을 즐겨 찾는 타입으로 설정한 것, 무엇보다도 김주원이 내뱉는, 순간 순간 여성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는, 듣는 사람의 뇌리에 찰싹 달라붙는 내뱉는 대사 (유명한 체육관 팔굽혀펴기 씬을 보라, 김주원이 얼마나 센스가 있는 남자인지 하는 것이 저절로 증명이 되지 않는가)를 통해서 김주원에게 입힌 스타일은 단순히 맛깔스러운 극 전개를 위해 덧붙인 악세사리가 아니다. 김은숙 작가는 김주원이라는 남자가 돈 많고 배경 좋은, 그러면서도 한 여성에 대한 우직한 충성도로만 무장된 단순하고 무딘 남자가 아니라 스타일리쉬하면서 <지적인 남자>라는 것, 즉 시오노 나나미가 말한, 그 지적인 남자임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김은숙 작가는 말과 행동을 통해서 <남자의 지적인 면모>를 김주원이라는 캐릭터에 입힌 것이다. 

그런데 <지적인 것>을 단순히 <지식이 많은 것>, 혹은 <학벌이 높은 것>으로 이해를 해 놓고 보면, 김주원이라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이런 차이 (예컨대 시티홀에서의 조국과의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지식이 인문학에 관한 지식이라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철학사에 대한 지식을 많이 알고 있거나 예컨대 푸코나 들뢰즈의 철학, 혹은 짐 자무쉬나 고다르의 영화 철학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 놓는 남자에게 어떤 여자가 쉽사리 매력을, 그것도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느끼겠는가? 지식은, 특히 인문학적인 지식은 한 사람의 삶 속에 특히 그 사람의 문화적인 취향 속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녹아들 때만 '지성의 재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식은 지성의 재료일 뿐이지, 그것이 지성 그 자체는 아니다.  지성은 결코 <정보를 전달> 해주는 방식으로는 타인에게 전해질 수 없다. 그것은 단지 그 사람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말로 제대로 표현하는 능력, 대화의 센스, 그리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 속에서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지적인 남자가 될 확률이 높은 남자는 학벌이 좋고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이 많지만 매사를 단순하게 생각하는 남자가 아니라, 학벌은 좀 떨어지고 교육 수준도 낮더라도 감수성이 예민해서 사물의 디테일을 볼 줄 아는 타입의 사람이다. 한마디로 매사를 단순하게 보지 않고 자신의 거울에 따라 사물을 볼 수 있는 타입이다. 

 3.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의 분위기와 그 이후부터 90년대 후반 까지의 분위기는 서로 많이 다르다. 마찬가지로 90년대 초중반부터 IMF 를 전후한 2000년대 초반까지의 분위기와, 그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분위기 또한 매우 다르다. 각각의 시기를 지나온 청년 세대들이 헤쳐나가야 했던 사회 경제적인 처지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 세대들이 가지는 정신적인 지향성들도 그만큼 서로 많이 다를 수 있다. 문화 현상에 대한 사회 심리학적인 분석은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세대에 잠재된 성향성을 그 <표면>으로부터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대중 문화 현상을 읽는 독해 방식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타당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혹은 그것이 어떻게 입증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한 사회의 특징적인 시기를 규정하는 문화적인 코드를 그 사회 전체의 맥락에서 설명해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문원의 분석 기사는  한 번 쯤은 되새겨서 살펴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글이다. 그 기사가 인문학 오타쿠(?)에 의해서 쓰여진 현학적인 허튼소리라든지, 말장난이라든지, 혹은 <검증> 이 안되는 인문학자들의 전형적인 알맹이 없고 공허한 이야기라는 식의 말들에는, 문화 현상에 대한 성찰에 기초한 반론 보다는 자신의 편견에 대한 거리낌 없는 고백만 느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