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를 읽으니 지금은 삼십대에 들어선, 옛날 철학 동호회에서 알고 지내던 여인네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떠올라..

  내 나이가 속한,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20대를 보낸 세대가...어쩌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풍요로운, 문화적인 세례와 기회와 여유를 허락 받았던, 마지막 황금세대였는지도..

 
 
 다음은 기사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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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30대 여성층과 10~20대 여성층 사이 선호하는 왕자님 캐릭터는 이처럼 기묘한 차이를 보이는 걸까. 먼저 10~20대 여성층, 이른바 '귀여니 세대'의 '무뇌아 왕자님' 설정은 이유가 분명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사춘기를 맞이한 세대, 이른바 '경제 불황 세대'의 특성이 드러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세대에게 '지성'이란 적어도 이성적 매력의 핵심 요소는 아니다. 그보다는 현실을 뚫고 나갈 수 있는 '능력', 곧 '재력'이 매력의 중심이 된다. 그러다보니 지적능력보다 중요한 것이 취업이나 급여와 직결되는 학벌, 학업성취도 등이 됐고, 그나마도 집이 원래 부자여서 취업할 필요도 없고 연봉계약 따위 생각 안 해도 되는 상황이 마련되면 무의미한 것이 돼버렸다. 한 마디로 왕자님의 기본조건인 미남 설정에 집이 부자라는 설정이 더 붙어버리면, 그 외에는 딱히 더 바랄게 없는 셈이다. 

오히려 머리까지 좋으면 더 문제가 됐다. 미남에 이성적 매력이 있으면 다른 여성의 유혹이 끊이지 않고, 선택의 여지도 많아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재벌가라는 계급적 코드가 붙다보니 계급 갈등의 공포가 일어날 수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새롭게 추가된 코드가 바로 '무뇌아'라는 것이다. 그래야 여성이 '브레인'이 돼 남성을 조종하고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도 여성이 '역할'할 수 있는 여지가 남게 된다. 가진 게 워낙 많아 불안하지만 어차피 내 손 안에 있고 내가 없으면 단순한 바보에 불과하니 안심, 이라는 코드다. 은근히 발칙한 발상인 셈이다. 

그러나 현재 30대인 여성층은 다르다. 1990년대 호황기에 청년기 대부분을 보냈거나, 최소한도 경제 불황 이전 사춘기를 겪었던 이들이다. 다른 경제 상황, 환경적 조건만큼이나 이들의 가치관은 현 10~20대와 크게 다르다. 한 마디로 호황기 청년세대 특성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문화수준에 신경 쓰고 지성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은 컷 하나가 5분 이상 지속되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예술영화 '희생'을 전 세계에서 가장 크게 히트시킨 세대다. 인디 음악 빅뱅을 일으키고, 뮤지컬과 오페라 장르 융성에 혁혁한 공을 세운 세대다. 딱딱한 인문과학 서적들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낸 주역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들 30대 여성층의 왕자님은 절대 '무뇌아'가 될 수 없었다. 기본적인 지성은 갖춘 지식인, 최소한도 상식적인 사고를 하며 거침없는 독설이더라도 정확한 표현을 동원해 자기 의사를 밝힐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했다. 한 마디로 '대화가 가능한 남성'이어야 했다. 

30대 여성층은 사실상 그 외에도 남성에게 '바라는 게 참 많은' 세대다. 일단 대화도 가능해야 하지만, 경제 불황기를 맞아 일정 정도 이상의 재력은 갖추는 게 '기본'이 됐다. 미적 쾌(快)를 중시한 세대여서 외모에 대한 가치도 높았다. 여성주의의 진행 도중 일대 경제 불황을 맞이한 세대라, 남녀평등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가부장적 의무는 그대로 짊어지는 슈퍼맨형 남성을 바라기도 한다. 이처럼 바라는 건 많은데 현실 속에서는 물론 TV드라마 등 판타지 세계 속에서도 원하는 남성상이 충족되지 못하다, 마침내 이 모든 부분을 총집결시킨 30대 여성의 완벽한 이상형 왕자님 김주원이 등장해버리니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리고 그 반가움과 열기는 현빈이 김주원 캐릭터와는 아예 정반대로 분한 '만추'까지도 팔아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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