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모모'의 작가 미하엘 엔데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엔데의 유언을 읽으신 분은 별로 없으시겠죠. 저도 사실 독서 토론 모임에서 제안을 받은 뒤 심드렁하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협동조합이니 지역 화폐니 별로 동의하지 않는 편이거든요. 간략한 책 소개부터 링크해드리면 이렇습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214078


책을 읽은 소감부터 말씀드리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엔데의 유언이라지만 사실 이 책은 엔데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루돌프 슈타이너 및 실비오 게젤의 사상과 경제 이론에 더 많은 장을 할애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돈'에 대한 대안적 주장입니다.


먼저 책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너무나 쉽게 접하게된 주장부터 시작합니다. 즉 원래 현물을 매개하기 위해 등장했던 돈이 어느 순간부터 경제의 주인이자 독재자로 군림하게 되었다는 거지요. 가령 2000년을 기준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는 돈은 300조 달러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나라들의 국내 총생산 총액은 30조 달러이고 전 세계의 수출입액은 8조 달러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주 간단히 말해 현대 금융은 제조와 유통을 위해 봉사하는게 아니라 그 자체로 '돈놓고 돈먹기'게임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까지야 흔히 듣는 말이고 전 일부분만 동의하는 주장입니다.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설명은 생략. ^ ^) 그렇지만 돈의 속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주장은 일단 저를 유혹했습니다. 아주 간단히 예를 들어봅시다. 가령 쌀 한가마를 10만원에 샀다고 칩시다. 그 쌀을 가만히 두면 신선도나 기타 등등 이유로 가치가 떨어집니다. 그렇지만 교환한 돈은 가치가 그대로일 뿐더러(물론 인플레이션은 배제해야겠지요) 은행에 입금하면 이자가 붙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돈은 유통이 되지 않을 수록 가치가 올라갑니다. 시중에 돈이 모자랄 수록 빌리는 사람은 늘어나며 금리가 오르기에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은 돈을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자산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즉, 이 책의 장점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히 생각해왔던 '돈' 또는 자본주의하 금융의 속성을 다르게 보는 시각을 제공한다는 거지요.  


이 대목에서 '그래서 뭐 어쩌자는 말이냐'는 항변이 터져나오겠지요. 바로 그 대안을 제공하는 사람이 실비오 게젤입니다. 독일에서 태어나 아르헨티나에서 한몫잡은 사업가이자 이후 다시 독일과 스위스에서 전원생활을 즐기는 한편으로 놀라운 속도로 자신의 경제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책을 생산해낸 실비오 게젤은 (여담입니다만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만큼 영웅과 풍운아가 쏟아졌던 시기가 있을까요?) 바로 그 돈의 속성을 제대로 경제 발전에 활용하기 위해 '감가되는 화폐 유통 시스템'을 제안합니다. 


일견 황당하죠? 그렇지만 1차대전 패배 직후의 독일 상황을 떠올리면 그렇게까지 황당하진 않습니다. 디플레든 인플레든 자산가들은 돈을 내놓지 않았고 바로 그 이유로 그들은 돈을 벌었고 서민들은 죽어났거든요! 더 놀라운건 당시 스위스 및 오스트리아의 일부 도시에서 게젤의 시스템을 도입하여 성공을 거뒀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1929년 오스트리아의 뵈르글이라는 소도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뵈르글은 부채가 쌓이고 실업자도 많은 상태였습니다. 당시 시장이었던 운터구겐베르거는 게젤이 제의햇던 '노화하는 돈의 시스템'을 도입합니다. 간단히 말해 이 시스템에서 돈의 가치는 매달 1프로씩 감소합니다. 즉,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달이 지날 때마다 1프로짜리 스티커를 사서 돈에 붙여야했습니다 자, 이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놀랍게도 실업자는 빠르게 감소하고 경제가 활성화됐다고 합니다. 황당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저런 시스템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상상해보면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닙니다. 화폐 가치가 감소하기 전에 빨리 소비하려 들었거든요! 그렇다면 그 돈을 받는 사람들은 싫어했을 거라 생각하기 쉬운데요. 그게 꼭 그렇지 않습니다. 설사 시간가치가 감소하더라도 빨리 받아두는게 이익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간단히 회사채 할인해서 현금을 확보하는 - 지금도 수많은 한국의 중소기업이 눈물흘리며 선택하는- 관행을 생각하면 됩니다. 아니, 한국에서 횡행하는 후자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월 1프로 정도의 할인율은 껌값이지요. 안그렇습니까?


이 제도는 세금 징수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돈이 생기면 자진해서 세금부터 납부했거든요. ㅎㅎ


흥미로운 건 그 유명한 케인즈가 게셀의 사상을 적극 지지했다는 점입니다. 케인즈는 '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이란 책에서 '우리는 미래에 마르크스의 사상보다는 게젤의 사상에서 한층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라고 언급했다네요. 이 책의 편저자들은 케인즈가 브렌튼우즈 협정 당시 제안한 국제청산동맹안도 마이너스 이자 개념에 입안한 것으로서 게젤과 같은 흐름에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케인즈의 제안도 화이트안에 졌을 뿐더러(화이트안이 뭐냐고는 묻지 마세요. 물론 국제청산동맹안도...- -;;;) 당시 유럽 소도시에서 일어났던 '돈의 노후화 시스템'은 중앙 은행제도와 충돌하며 모두 금지됐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역 화폐가 게셀의 주장을 잇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역 커뮤니티의 개별 주체들이 물물교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지역 화폐가 잉여나 축재의 수단으로부터 벗어나 지역내 소비를 촉진시킴으로서 돈 고유의 순기능을 강화하고 있다는 거지요. 이 대목에서 저처럼 금융의 순기능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지역 화폐를 국가 전체적으로 확대할 경우 부작용부터 근심합니다. 가령 지역 커뮤니티 혹은 개개인들이 자율적으로 발행하는 화폐로 물물교환이 이뤄질 경우 국가의 세금은 어떻게 거둘 것이냐는 거지요. 얼핏 훑어본 바로는 게젤 등은 마이너스 화폐가 활성화될 경우 주체들의 자율적 행위로 경제 시스템이 활발히 돌아갈 것이므로 국가 자체의 역할과 기능 또한 대폭 축소될 것이라 예측한 것 같긴 합니다만 이건 제 능력을 벗어나는 영역이므로 차치하고라도 가령 사람들끼리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지역에서야 지역 화폐가 가능할 지 몰라도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국가간 무역 거래엔 어떻게 적용할 수 있냐는 거지요. 


당연히 이 책의 저자들은 제 질문에 답을 내놓습니다. 현재의 금융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해 대안적 화폐 운동을 활성화하자는 것이지요. 즉 아직까진 보조적 수단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대안적 화폐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면 국가간 거래에서도 방법이 나올 것이고 더 나아가 현행 화폐 시스템까지 변화시킬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세계화로 말미암은 충격을 완화하고 보다 인간적인 삶을 추구하는 정도로 목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참, 세금에 대한 답변으로 스위스의 경제링, 즉 Wir 은행의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이미 글이 충분히 길어졌으므로 Wir 은행 사례는 직접 책을 찾아보시라고... ^ ^.


Dazzling님 글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제가 가장 흥미로왔던건 이른바 오늘날 유효 수요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와 사회적 시스템에서 낙오했거나 스스로 탈출한 사람들의 생산활동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 완벽하게는 아닐지라도 - 찾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모두 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과 기대가 사라진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기업들조차 돈을 쓰기보다 쟁여두죠. 그러면 그럴 수록 소비가 침체되며 생산활력까지 저하되는 악순환에 빠져듭니다. 그러면 이웃나라 일본처럼 돈을 팍팍 푸면 어떨까요? 인플레와 거품을 우려하여 역시 소비활동에 쉽게 나서지 않습니다. 반면 금리가 오르기에 금융자산가들만 재산을 불리기 십상이죠.


스위스의 사회 임금이 얼마나 유효 소비를 불러 일으킬 지는 모르겠고 어떤 점에서 가장 주목받는 측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전 여기서 그 사회 임금을 일부분 지역 화폐와 같은 물물교환권으로 나눠주면 어떨까 싶네요. 그 경우는 확실히 유효 소비를 불러일으키겠죠. 왜냐면 그 물물 교환권으론 은행에 저금을 할 수도 없고(기장 형태로 저장은 할 수 있습니다) 투자도 할 수 없으니까요. 또 하나는 실업자 등의 생산활동도 강화됩니다. 실업자들이 생산활동에 나서지 못하는 큰 이유중 하나는 '적정 임금을 받는 노동'을 구하기 힘들다는 사실에서도 기인합니다. 가령 별다른 지적 능력없는 신체 허약자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로 일을 구하기 힘듭니다. 그렇지만 지역 커뮤니티에서 발행하는 물물 교환권으론 가능한 생산활동이 많아요. 다른 사람의 집앞 청소, 혹은 지역 기관 반나절 봉사활동등의 쉬운 일도 교환 대상이 되니까요. 작은 노동 후 받은 물물교환권으로 소비활동에 나서게 되겠지요. 


Dazzling님 글을 읽고 모처럼 게으름을 벗어나 열심히 포스팅해보았습니다. 자, 다른 분들 생각은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