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노예 사건으로 인터넷이 뜨거울 때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형제복지원 사건이 다시 조명되는 분위기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가 드러낸 진상규명 의지도 단단해 보여서 기대를 걸어본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의 댓글들을 봤더니 도무지 얼마 전 섬노예 사건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적다. 올라온 댓글도 계속 지워진다는 네티즌들의 불만이 이어진다.

 

그나마 많지 않은 댓글들의 내용을 살펴봤더니 모두 박인근이란 자의 천인무도할 범죄와 그 아들이란 자의 "우리 아버지는 인권도 없어? 우리 아버지 쓰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이 xx야"하는 발언 그 뻔뻔함에 대한 분노를 드러낸 내용들이다.

 

어떤 댓글도 "때려죽일 경상도 놈들, 저 놈들은 살인마"라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있는데도 내가 발견을 못한 건가?

 

지금 내가 네티즌들더러 경상도 욕하는 댓글을 올리라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이 사건은 박인근이라는 희대의 악마가 저지른 범죄일뿐 경상도 사람들 모두에게 귀책의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현재 네티즌들의 반응은 극히 정상적이다.

 

문제는 이렇게 경상도 사람 또는 경상도 지역에서 벌어진 범죄에 대해서는 멀쩡하게 잘 작동하는 시민적 상식, 바람직한 분별력이 호남과 호남 출신들에 대해서는 왜 전혀 작동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범죄의 규모나 범죄 행위의 악질성을 봐도 신안 섬노예 사건 따위는 박인근의 형제복지원에는 감히 족탈불급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박인근은 이렇게 상상초월하는 악질적인 범죄에도 불구하고 핵심 범죄행위(가령 대규모 살인 등)에 대해서는 전혀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가벼운 법적 처벌 이후에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에개ㅔ 아무런 피해보상이나 피해 복구의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과 비교해보면 이것이야말로 불의와 부조리의 샘플이라고 할만하다.


그런데도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서는 섬노예 사건에 퍼부어지는 저주와 분노, 지탄의 1백분의 1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이 오래 전에 벌어진 것이라서 이미 분노가 식어버린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87년엔가에 처음 드러난 이 사건을 전혀 접해보지 못한 젊은이들도 많다. 신안 섬노예 사건에 분노와 저주를 터뜨렸던 네티즌들 가운데 형제복지원 사건을 모르는 젊은이들이 더 많았을 거라는 데에는 100만원이라도 걸 수 있다.

 

이 사건이 과거형이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의 피해에 대한 보상이나 원상복구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 사건이 실제로 종결됐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산 지역에서 이와 비슷한 사건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상당히 믿을만한 증거가 계속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부산역 등을 떠도는 노숙자들을 이런저런 수법으로 유인해 염전이나 새우잡이배 등에 팔아넘긴다는 증언이 이어져왔고, 지난번 신안 섬노예 사건 당시에도 염전 주인들은 그저 부산지역의 인신매매 업자들이 공급해주는 인력을 받을 수만 있을뿐 선택권이 없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왜 비교할 수도 없이 사소한 신안지역 섬노예 사건에는 대한민국 모든 언론이 흥분해서 질타하고 네티즌들도 덩달아서 분노와 저주를 호남이라는 만만한 대상을 타겟으로 퍼부었는데, 그보다 몇백 배 심각하고 악랄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서는 다들 이렇게 조용할까? 왜 이리 온순한 양 같을까? 무슨 사건만 터졌다 하면 한마디 거들지 못해 안달하는 대한민국의 양심적이고 진보적이고 지성인스러우신 그 분들은 왜 여기에 대해서는 완벽한 침묵 모드이실까?

 

신안섬노예 사건은 말할 것도 없고,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조차도 현재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이 뒤틀린 질서에 비하면 그냥 아동용 명랑 애니메이션 수준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이러고도 역사 왜곡 일삼는 일본의 정치 언론 등에 대해서 뭐라고 꾸짖을 자격이 있다고 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