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제도를 시행함에 있어서 제기되는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는, 복지제도에 필요한 거대한 규모의 재정을 어떠한 방식으로 조달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경우에도 어떤 복지관을 택하느냐에 따라 재정 조달 방안도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필요적 복지관을 택하는 경우에는 많은 잉여을 가진 부자들에게서 돈을 거두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시혜적인 방식은 우선적인 고려 대상이 된다. '부유세' 극단적인 경우이다. 부유세의 경우에는 <네가 그만큼 사회에서 이득을 챙겨 가서 네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 못 사는 사람들을 위해 정도는 베풀 수 있는 것 아니냐..> 의식이 깔려 있다. 부유세가 누진세 제도와는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 , 어떤 부를 특정 시점에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시혜적인 목적의 징수를 강제적으로 행할 있다는 인식에 있다. 부유세에 딸린 기본 철학은 국가가 한편으로 사회적인 부의 정도에 따라 복지 제도를 적용할 대상, 즉 빈곤층과, 다른 한편으로 복지 제도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해 줄 대상, 즉 부유층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복지 제도를 기본적으로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자선 서비스 정도로 본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 부유층은 국가적인 배려의 대상에서 애초부터 포함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보편적 복지관을 택한다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보편적 복지관을 택하는 자들은 소득 수준과 상관 없이 절대적으로 평등한 세금 제도를 옹호하지는 않겠지만 마찬가지로 부유층을 복지 재정 조달의 객체로만 보는 부유세에도 명확한 반대를 나타낼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한 사회의 구성원에 평등한 배려를 하라는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복지 제도를 자선 제도가 아닌 사회적인 기본권을 실현시켜 주는 제도의 하나로 보는 경우에, 부유층에게서 기본적인 복지 혜택을 빼앗아 간다는 것은 사회적인 기본권을 빼앗는 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보편적인 복지관을 택하는 자들은 그러므로 사회적인 협력 체제를 통해 받은 혜택의 정도에 따라, 즉 부의 정도에 따라 점진적으로 세금을 인상하는 누진세율 제도를 선호할 것이다.

출처(ref.) : 자유게시판 - 두 개의 복지관... 그리고 유시민 - http://theacro.com/zbxe/free/339201
by 숨쉬는 바람""

""필요적 복지관의 근간을 이루는 연대성은 가진 자와 못 가진자의 구분에 기초한 시혜적인 연대성이다. 이것은 보편적인 복지관이 전제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 구성원들간의 호혜적인 연대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필자가 민노당이 주장하고 정동영이 받아들인 부유세 도입에 회의적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기묘하지만, <이건희 손자같은 부자집 자녀들에게 왜 학교에서 공짜밥을 줘야돼?> 라는 인식과, <당신이 10억 넘는 부자니까 부유세를 내는 것은 당연해> 라는 인식은, 그것이 <복지는 기본적으로 가진 자가 못 가진자에게 베푸는 시혜> 라는 인식이라는 점에서 서로 닮아있다. 이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그만큼 가진자와 못 가진자로 나뉘어져서 서로를 질시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현실의 반영이자, 그만큼 우리 사회의 연대성이 건강하게 자리 잡혀 있지 않다는 반증인 것이다.


숨쉬는 바람님은 복지제도를 필요적 복지/부유세, 보편적 복지/누진세 로 구분한 후, 재원조달방안으로써 부유세에 대해 '우리 사회의 연대성이 건강하게 자리 잡혀 있지 않다'는 것의 반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복지제도는 개인의 삶의 영역에 대한 사회의 개입을 제도화한 것입니다. '필요적 복지'든 '보편적 복지'든  복지제도는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산다'는 기본적인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한 인간이 '온전히 개인으로서만' 살아갈 수 없고 어떻게든 '사회로부터 사회로서의' 도움,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받은만큼 돌려줘라'라는 상식에서 복지는 출발하죠. 따라서 어느 사회가 복지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상호연대의식, 공동체의식이 필요합니다.

복지에는 재원마련이 필수적입니다. 그 재원은 대개 세금으로 마련됩니다. 모든 사회는, 부자는 그 사회 속에서 사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전제 하에 부자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부자는 자신의 세금부담보다 적은 복지혜택을, 빈자는 반대의 혜택을 누리게 되죠. 하지만, 사회복지에는 등가성의 원칙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또 부자는 '복지혜택'이 아닌 사회의 다른 부문에서 더 큰 도움을 받았다고 전제된다고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서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떤 형태의 복지든 그 재원을 마련함에 있어 부자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는 것이 핵심이지, 어떤 형태의 세금을 걷는지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소득에 부과하든, 부동산 등 자산에 부과하든, 재산 그 자체에 부과하든 그런 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빈자보다 부자가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복지제도가 운용될 때, 세금을 많이 내는 부자와 그렇지 않은 빈자의 갈등은 필연적이죠. 따라서 앞서 말한대로 복지가 성공하려면 사회 구성원간의 사회적인 연대의식이 필요하고요.

그런데 숨바님은 조세부과의 형태와 복지형태를 연결짓고, 특별히 부유세에 대해서는 '부자와 빈자를 구별', '시혜적' 이라고 말하시고, 그래서 '사회연대x의 반증'이라고 하셨습니다. 보편적 복지든 선별적(필요적) 복지든 모든 복지는 부유층을 재원 조달의 객체로만 한정짓지 않습니다. 보편/선별로 구별되기 전의 복지제도는 기본적으로 그것을 제공하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을 그 대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와 벗어난 개인은 없다는 전제때문이죠.


궁금한 점은 '부유세=사회연대성x', '누진세=사회연대성o' 라는 것에 어떤 근거가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는지는 중요하지만, 그 재원마련의 형태의 핵심은 '사회로부터 혜택을 많이 본 부자로부터 빈자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걷는다'에 있지, 부유세냐 누진세냐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기다가 부유세와 누진세가 복지를 바라보는 근본철학에까지 연결되는지도 의문이고요. 어떤 근거가 있는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