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복지 제도를 확대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축소하는 것이 옳은가? 이런 질문은 결국 도덕 철학의 교권의 질문이다. 따라서 과학의 교권에 속하는 진화 심리학은 이 문제에 대해 적어도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답할 수 없다.

 

진화한 선천적 인간 본성의 어떤 측면이 복지 제도의 확대를 유도하고 어떤 측면이 복지 제도를 축소를 유도하는가? 이것은 과학의 교권의 질문이며 진화 심리학이 다룰 수 있다.

 

복지 제도 확대론자는 인간 본성의 어떤 측면에 호소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복지 제도 축소론자는 인간 본성의 어떤 측면에 호소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이런 질문은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응용 진화 심리학의 영역에 속한다. 어떤 식의 수사법(rhetoric)을 사용해야 효과적인가라는 문제와 어떤 수사법을 사용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른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후자는 적어도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진화 심리학이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요컨대, 진화 심리학자는 복지 제도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전중환 교수는 복지와 분배」에서 진화 심리학과 복지 제도를 연결해서 이야기했다. 너무 거칠게 이야기한 감이 있긴 하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다.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37&Page=1&Board=0014&para1=33

 

아래의 글이 보여주듯이, 진화 심리학과 복지 제도에 대해서는 전중환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 말고도 할 만한 이야기가 아주 많다. 그리고 인간 심리의 온갖 측면들이 복지 제도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이것을 제대로 분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측은지심 또는 이타심

 

정신병질자(psychopath)는 측은지심이 전혀 또는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은 왜 그럴까? 이런 질문과 씨름하는 진화 심리학자들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지겠다. 왜 대다수 인간은 정신병질자와는 매우 다른가? 왜 대다수 인간에게는 측은지심이 있을까?

 

나는 측은지심이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한, 인간 심리의 선천적 특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모든 문화권의 대다수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는 측은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측은지심이 진화했을까? 측은지심은 우리 조상들의 번식에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한 가지 그럴 듯한 설명이 있다. 여러분이라면 친구나 애인을 사귈 때 측은지심이 있는 사람과 사귀고 싶은가? 아니면 정신병질자와 같은 사람과 사귀고 싶은가? 측은지심 또는 이타심이 있는 사람과 사귀고 싶어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적응론적 관점에서 볼 때 측은지심이 있는 사람 또는 착한 사람과 사귀는 것이 유리하다. 만약 측은지심이 없는 사람을 친구로 사귄다면 내가 불쌍한 처지에 있을 때 친구가 나를 도와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들이 착한 사람을 선호한다면 이것은 하나의 선택압(selection pressure)을 형성한다. 왜냐하면 우정 시장과 짝짓기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이 번식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복지의 핵심 측면이다. 만약 인간이 몽땅 정신병질자로 진화했다면 복지 제도가 발달하기가 지금보다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복지 제도 확대론자들이 불쌍하게 사는 사람들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

 

인간은 걱정하는 동물이다. 자신, 자신의 친족, 자신의 친구에 대해 걱정을 하면서 살아간다. 인간이 이런 식으로 진화한 이유는 팔자 좋게 아무 걱정 없이 살았던 우리의 조상보다는 이런 저런 걱정을 하면서 미래에 대해 대비했던 조상이 더 잘 번식했기 때문인 것 같다.

 

복지 제도가 확대되면 이런 걱정을 덜어 줄 수 있다. 만약 장애인 복지가 확대된다면 자신이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를 당해서 장애인이 되더라도 덜 고생하면서 살 수 있다. 만약 교육이 무료라면 자신이 앞으로 돈을 벌 수 없는 처지에 빠지더라도 자식이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이 보험을 드는 이유는 이런 걱정 때문이다. 복지 제도에는 보험의 특성도 있다.

 

복지 제도 확대론자들이 불의 사고를 당했을 때 복지 제도가 어떤 도움이 되는지 상세히 설명한다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공평과 정의에 대한 집착

 

사람들은 공평과 정의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공평의 규범이 자연 선택의 산물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서로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공평하게라는 규범이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복지 제도 확대론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복지 제도가 더 공평한 사회로 이어진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만 이야기하겠다.

 

첫째, 가난한 집 어린이와 부잣집 어린이를 비교해 보면 된다. 가난한 집 어린이가 치료할 수 있는 병인데도 돈이 없어서 집에서 앓다가 죽었다면, 학교 갈 돈이 없어서 학교에 못 갔다면 이것은 부잣집 어린이와 공평하게 경쟁한 것인가? 이것이 공평한 경쟁이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다.

 

둘째,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불공평하다고 이야기하면 된다. 아버지가 수령이라는 이유로 김정일이 북조선이라는 나라를 지배하는 것이 그리고 그 다음에 김정은이 나라를 지배하는 것이 부당하다면 이병철이 재벌이라는 이유로 아들인 이건희가 그리고 손자인 이재용이 삼성 계열사를 물려 받는 것도 부당한 것 아닌가? 단지 통장에 100억 원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혀 일을 하지 않아도 매년 5억 원씩 이자를 받는 것은 부당한 것 아닌가? 마르크스의 『자본론』 이야기를 하면서 더 골치 아프게 설득하는 길도 있다.

 

만약 부자들이 그렇게 떼돈을 버는 것이 불공평하다면 그 중 일부를 세금으로 받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그 불공평을 해소하는 길 중 하나다.

 

 

 

이기심

 

어떤 유전자가 자신이 속한 개체의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보다 다른 개체의 포괄 적합도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개체에게 영향을 끼친다면 그 유전자는 잘 복제되기 힘들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인간이 어느 정도 이기적으로 행동하도록 진화한 것 같다.

 

복지 제도는 소득을 재분배한다. 부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고 가난한 사람들이 복지 제도의 혜택을 더 많이 받기 때문에 부자들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에게로 부가 이전된다. 어린이와 노인이 복지 제도의 혜택을 더 많이 받기 때문에 어린이와 노인이 적은 가족들로부터 어린이와 노인이 많은 가족들에게로 부가 이전된다.

 

인간이 어느 정도 이기적이기 때문에 복지 제도 확대론자는 가난한 사람과 부양 가족이 많은 사람에게 호소하면 인기가 있을 것이며, 복지 제도 축소론자는 부자와 부양 가족이 적은 사람에게 호소하면 인기가 있을 것이다.

 

 

 

경쟁심

 

인간에게는 남을 이기고 싶어하는 심성이 있다. 이런 심성은 복지 제도에 온갖 방향으로 영향을 끼친다.

 

첫째, 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재벌들도 세금을 내는 것을 아까워하는 것일까? 왜 그들은 그렇게도 많이 가졌는데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진화 경쟁에서는 절대적 번식뿐 아니라 상대적 번식도 중요하다. 자신이 아무리 잘 번식하더라도 옆에 있는 놈이 자신보다 더 잘 번식한다면 자신에게는 최선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은 절대적 풍요로움뿐 아니라 상대적 지위도 중시하도록 진화했을 것 같다. 그래서 평생 흥청망청 써도 남아돌 것 같은 큰 돈인 1000천 억 원을 가진 사람은 2000천 억 원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다.

 

인간인 자본가의 이런 심성은 상대적 경쟁인 자연 선택의 결과로 보이며 이것은 복지 제도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또한 이것은 복지 제도 축소론이 자본가 계급에게 호소력이 큰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 인간은 부족 간 경쟁을 하면서 진화했다. 부족 간 전쟁도 그런 경쟁의 한 양상이었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 편이 이기길 빈다. 전쟁을 할 때마다 자기 부족이 지길 빌었던 조상들에게 비해 자기 부족이 이기길 빌었던 조상이 더 잘 번식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에 인간은 자기 편이 이기길 바라도록 진화했을 것 같다.

 

요즘에는 국가 간 경쟁이 초점이 되고 있다. 이럴 때 의무 교육 즉 교육 복지 제도는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부자들도 교육 복지만큼은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 같다.

 

 

 

시기심

 

인간은 남 잘되는 꼴을 보면 배 아파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 역시 선천적 인간 본성으로 보인다. 성공한 남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기만 했던 조상보다 성공한 남을 끌어내리려고 어느 정도는 애썼던 조상이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인간이 그렇게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부자들에 대한 가난한 사람들의 시기심은 복지 제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진화한 것으로 보이는 시기심은 부자들이 잘 사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착취했기 때문이라는 마르크스의 설명이 설득력 있게 보이는 데 일조하는 것 같다.

 

 

 

2011-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