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97년도 대통령선거를 전후해서 나는 김대중광신도라는 비아냥을 많이 들었다.(나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그런 용어를 많이 사용하더라는 얘기이다.) 그냥 좋게 김대중지지자라고 표현해 줬으면 좋겠는데, 이 말을 하는 놈들은 곧 죽어도 김대중광신도를 애용하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김대중광신도요'라고 소개하곤 했다. 나 자신을 광신도로 비하하고자 해서가 아니라, 설령 그런 비아냥을 듣는다고 해도 감수하고서 김대중을 지지하겠다는 뜻에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속으로 그들을 비웃었다. '내가 김대중광신도라면, 너거뜰은 박정희광신도가 아니냐'... 그래서 내가 가끔 박정희를 애모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박정희광신도라고 부르기도 했다.

2. 2002년을 전후해서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노빠라고 불렀다. 오빠부대의 준말이라고 한다. 광신도에 비하면 한 단계 아래의 비아냥이었지만, 이것도 뭐 그렇게 고상한 말은 아니다. 하지만 노무현지지자를 가리켜서 곧 죽어도 노빠라고 부르는 놈들이 많이 있었다. 노무현지지자라고 길게 쓰는 것보다 간략하다는 장점도 있고, 노무현만 보면 환호하고 열광한다는 점에서 오빠부대로 볼 소지도 있고 해서 나도 노빠라는 말을 받아들였다.

3. 민주당이 분당하여 열린우리당이 창당될 당시에 민주당을 지지하던 사람들을 가리켜서 난닝구라는 말을 쓴다. 이것도 좋은 뜻으로 쓰는 말은 아니다. 좋은 뜻으로 쓸 생각이라면 민주당지지자라고 썼겠지. 나는 난닝구가 아니기 때문에, 난닝구들이 뭘 어떻게 느꼈는지는 잘 모르겠다.

4. 정당개혁을 이야기할 때 빼놓고 말하지 않았던 것이 하나 있다. 당시 민주당의 사정으로는 새로운 인사를 영입해서 지역구 국회의원자리를 물갈이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국회의원이 지구당위원장을 겸하고 있고, 국회의원이 내는 돈으로 지구당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사람은 민주당으로 들어가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개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고, 그냥 밖에서 서 있었던 것이다. 공천심사에 불복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경우를 떠올려 보면 알 것이다. 비례대표는 더더욱 어려웠다고 해야 할까? 탤런트 출신의 정XX가 공천을 받지 못하자 이용만 당하고 속았다고 화를 냈다. 자리가 한정되다 보니 공로가 있어도 못 챙겨주었던 것일 게다.

5. 개혁세력, 진보세력을 민주당 밑에서 뭉치자고 하는데, 이건 정말 웃기는 얘기다. 난닝구들만 이해 못하는 웃기는 얘기라고나 할까. 쉬운 지역구는 민주당 지들이 보장받고, 어려운 지역구에 가서는 몸빵하라는 얘기 밖에 더 되나?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하는 게 대의라서 2012년을 앞두고 민주당 밑에 들어가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게 바람직한 일이라고는 말 못한다. 참여당이라면 사정이 좀 다르다. 국회의원 하나 없는 정당이니만큼 모두가 동일선상에서 공정하게 경쟁해서 공천을 받을 수도 있지 않냔 말이다. (물론 이 한 면만 가지고 선택을 할 필요는 없다.)

6. 1988년 여름의 일이다. 농활을 왔던 대학생들이 농활을 다 마치고, 송림에서 집회를 열었다. 그들이 외치는 구호 중의 하나가 '농가부채 탕감'이었다. 나는 당시에 고등학교를 휴학하고 집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 대학생들 중의 한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농가부채 총액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그 대학생은 농가부채 총액이 얼마인지 대답을 못하였다. 나는 피식 하고 웃었다. 농가부채 탕감을 요구하려면 최소한 그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또 농가부채를 탕감하면, 그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은 그럼 어쩌란 얘기인지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 대학생의 구호는 그냥 입에 붙은 구호였지, 받아들일까 말까를 놓고 궁리해 볼 만한 것은 아니었다.

7. 무상급식은 돈이 얼마 안 든다. 그러니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걍 하면 되는 거고, 하자는 말을 해도 아무 반응이 없으면 다음에 하면 되는 거다. 무상보육도 돈이 얼마 안 든다. 갓난애기가 먹으면 얼마나 먹을 것이고, 유치원에 다니는 애를 키우는 데에 쓰면 얼마나 쓰겠는가? 애엄마를 위해서 돈을 사용한다고 치더라도 그 인원이 얼마 안 된다. 한 해 40만 명의 아기가 태어난다면, 7년이라고 하면 280만 명 밖에 안 된다. 이것도 돈이 얼마 안 드는 일이므로,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무상교육은 조금 사정이 다르다. 돈이 많이 들 것 같다. 그러니까 계산에 계산을 해봐야 한다. 잘못 하면 다른 일에 쓸 돈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 때 가서 무상교육 잠시 중단하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반값 등록금의 경우는 의외로 반대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반대한다고 해서 못할 것은 없지만서도, 중대한 결단이 필요한 일인 것은 분명하다.

8. 무상의료는 돈이 많이 든다. 손을 봐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반발할 사람도 한두 명이 아니다. 자칫하면 이것 하나만으로 반대세력들이 똘똘 뭉칠 수도 있고, 선거에서 치명적인 약점으로 표를 갉아먹을 수도 있다. 계산에 계산을 더하고, 검통에 검토를 더해서 확신이 생기면 꺼내 놓을 문제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라면, 그 당의 당원들은 무상의료에 대해서 이미 검토가 끝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무상의료에 대해서 검토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 대다수 국민들은 무상의료라는 말만 들어도 벌써 반쯤은 반대심리 무시심리 상태로 되어 버린다. 그런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대단히 어렵다. 스웨덴이나 덴마크 같은 나라 사람들이 편안히 잘 산다고 알고는 있지만, 우리도 따라 하자는 말은 잘 나오지 않는다. 국민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9. 의료이용율이 얼마나 높아질까? 해 보기 전에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미국의 사정과 일본의 사정과 한국의 사정은 서로 다른 면이 있고, 얼마나 다를지는 해 보기 전에는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 무상의료비의 GDP 비중도 마찬가지다. 8.1%가 될지, 15%가 될지는 아무도 장담을 못한다. 논의를 해 보려면 먼저 좀 더 확실한 통계 자료부터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10. 한나라당이 할 말을 유시민이 먼저 했다. 그건 선거구호에 불과한 거고, 정책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당장 민주당에서 악에 받힌 반박이 나왔고, 아크로의 반유들도 길길이 날뛴다. 유시민의 말에 얼마나 아팠으면 저럴까 하는 측은지심이 들었다. 퉁퉁 부어 있는 데를 누가 건드리면 정말 아프고 환장할 지경이 되는데, 유시민이 한 말이 바로 그런 말이었던 모양이다. 유시민을 개쪽 당하게 하고 싶다면, 민주당이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된 분석부터 내놓고 볼 일이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이 그걸 안 내놓고 있는데, 그러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