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만하면 글을 쓰려고 했는데 요새 아크로 분위기가 하도 험악하게 돌아가는 같아서, 짧게라도 글을 쓰려고 한다. 먼저 필자는 복지에 관해 평소부터 관심을 기울여서 공부해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까 복지에 관해서는 요즘 이슈가 되는 사안에 대해서, 언론에 보도되는 정도의 정보만을 알고 있다. 시간이 되어서 자료 조사를 해보고 다른 글들도 읽어보고 그러면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지금 사회적인 이슈에 시간을 투자할 있는 여유가 별로 없다. 그러니 글은 평소에 복지 제도에 대해 가지고 있던 파편적인 생각들을 나름 정리해 보는 정도가 된다

 

 먼저 복지 제도에 관해 요즈음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오는 이야기들을 나름 기술해 볼 필요가 있을 같다. 논의 국면을 가만 살펴보면, 복지 제도에 관해서 민주당이 민노당이 예전부터 일관적으로  취하고 있었던 복지 정책들 (무상의료, 무상보육, 무상교육 )의 상당부분을 흡수한 것 같다. 정동영 같은 경우에는 부유세 같은 재원조달 방안까지 차용했을 정도니 이 정도면 민주당이 복지 제도에 관한한 거의 민노당의 정책틀 자체를 수용했다고 봐도 무방한 것 같다. 반면 한나라당 같은 경우에는 아직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같아 판단하기가 어렵지만, 오세훈 시장 같은 경우에 민주-민노당 노선의 복지 정책에 분명한 선을 그으면서 자기 나름의 선택적 복지 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사이에서 중간자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도 있다. 유시민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어떤 정치인이나 어떤 정당이 이러한 복지관을 주장하고 있느냐를 판단하기에 앞서, 우선 복지에 관한 관념들을 먼저 생각해 보고 거기에 담긴 함의들을 살펴보는 일이다. 이렇게 하게 되면 적어도 논의의 방향이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마타도어하게 되는 방향으로 빠지지 않고 정책에 담긴 철학의 관점에서 생산적인 논쟁을 있게 된다.  

 

 

 1. 보편적 복지관과 필요적 복지관

 

 

 복지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회가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에 대해 베풀어 있는 사회, 경제적인 차원의 정책적인 배려라고 있다. 사회 구성원이 인간답게 살아갈 있는 최소한의 생존 조건을 보장해 주고, 경쟁에서 도태된 구성원들에게 다시 재기할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는 , 한마디로 말해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의 갱생과 사회적 삶의 재생산을 돕는 것이 복지 제도를 떠받치는 근본 취지라고 말할 있다

 

 그러나 복지를 가만 들여다 보면 미묘한 문제가 생긴다. 복지란 무엇일까? 불우이웃을 돕는 것, 가진 자가 가진 자에게 자기 몫을 조금 덜어 주는 . 이것이 복지의 본질일까?

다시 말해 '시혜 의식' 근거한 가진 자의 자선을 국가가 대신 행해주는 것, 이것이 복지일까?

 

이것은 복지 제도를 근본적으로 연말 구세군 모금 행위와 비슷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여기서는 이것을 편의상 <필요적 복지관> 라고 정의한다.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자선을 행한다>는 것이 필요적 복지관의 기본 관념이다. 이것을 좀 더 세련되게 표현하면, <가진 자에게서 남는 잉여를 세금 형식으로 강제로 가져와, 못 가진 자에게 나눠주는 소득 재분배 활동> 바로 필요적 복지관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복지의 핵심은 부의 잉여를  최적의 필요 섹터에게분배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경우에 '복지의 효율성' 가장 중요한 고려요소가 된다.

 

 반면 이것과 상반되는 복지관이 있다. <보편적 복지관> 이 그것이다. 보편적 복지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사회의 전체의 살림살이는 기본적으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의 협동체계를 통해서만 굴러갈 있는 것이며, 각자가 가져갈 있는 ''   구성원의 노력을 통해서 산출해낸 사회적 부의 양과 사회의 협동 체계의 결합으로 결정된다. 예컨대 고소득 자의 경우에도 <내가 순전히 잘나서, 재능이 타고 났기 때문에, 혹은 내가 그만큼의 성과를 냈기 때문에, 혹은 내가 정도의 잉여 재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만약 고소득자가 높은 수준의 교육과 가족과 인맥, 학맥 같은 사회적, 경제적 자본의 수혜를 받고 성장해 오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의 그러한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사회적인 위치에 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약 재능있는 사람이 재능을 꽃피울 있는 기회를 공동체가 제공해 주지 않았다면, 해당 당사자들은 공동체에서 정도의 혜택을 누리고 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내가 가져갈 있는 몫은 나의 재능, 나의 노력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그 사회가 특정 역사적인 시점에서 보유하고 있는 사회적, 배경적 협력 체제의 조력을 받아 결정되는 것이다.

 

이것을 바꿔어 말하면, 재능이 없고 노력을 남들보다 덜하거나, 타고난 배경이 열악해서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사람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적인 협력 체제에 참여하는 이상,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정당한 몫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보편적 복지관에 따르면 복지는 가진자가 가진자에게 베푸는 자선 행위가 아니라, 사회의 협력 체계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써 가져가야 하는 당연하고 정당한 몫을 사회적으로 설정하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 복지 제도를 만들고 적용하는 것은 가진자와 못가진 자의 소득 수준을 떠나서 사회의 구성원이 누리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누리는 기본적인 권리를 어디까지 설정하느냐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가지 복지관을 구분을 하게 되면, 예컨대 이건희 손자들에게도 무상 급식을 하는 과연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서로 상반되는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한쪽에서는 부자집 자녀들에게 학교에서 <공짜밥> 필요가 있느냐고 것이고, 다른 편에서는 학교에서 사회의 구성원이 교육을 받는 모든 자녀들에게  부모의 소득 수준에 관계 없이공동체가 평등하게 배분해야 몫이 있고, 급식비도 여기에 속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적 복지관의 배후에는 사회적인 계층과 관계 없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을 평등한 배려를 가지고 대우하라는 정치 철학이 들어 있다

 

 2. 복지 재정 조달의 문제

 

 복지 제도를 시행함에 있어서 제기되는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는, 복지제도에 필요한 거대한 규모의 재정을 어떠한 방식으로 조달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경우에도 어떤 복지관을 택하느냐에 따라 재정 조달 방안도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필요적 복지관을 택하는 경우에는 많은 잉여을 가진 부자들에게서 돈을 거두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시혜적인 방식은 우선적인 고려 대상이 된다. '부유세' 극단적인 경우이다. 부유세의 경우에는 <네가 그만큼 사회에서 이득을 챙겨 가서 네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 못 사는 사람들을 위해 정도는 베풀 수 있는 것 아니냐..> 의식이 깔려 있다. 부유세가 누진세 제도와는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 , 어떤 부를 특정 시점에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시혜적인 목적의 징수를 강제적으로 행할 있다는 인식에 있다. 부유세에 딸린 기본 철학은 국가가 한편으로 사회적인 부의 정도에 따라 복지 제도를 적용할 대상, 즉 빈곤층과, 다른 한편으로 복지 제도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해 줄 대상, 즉 부유층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복지 제도를 기본적으로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자선 서비스 정도로 본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 부유층은 국가적인 배려의 대상에서 애초부터 포함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보편적 복지관을 택한다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보편적 복지관을 택하는 자들은 소득 수준과 상관 없이 절대적으로 평등한 세금 제도를 옹호하지는 않겠지만 마찬가지로 부유층을 복지 재정 조달의 객체로만 보는 부유세에도 명확한 반대를 나타낼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한 사회의 구성원에 평등한 배려를 하라는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복지 제도를 자선 제도가 아닌 사회적인 기본권을 실현시켜 주는 제도의 하나로 보는 경우에, 부유층에게서 기본적인 복지 혜택을 빼앗아 간다는 것은 사회적인 기본권을 빼앗는 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보편적인 복지관을 택하는 자들은 그러므로 사회적인 협력 체제를 통해 받은 혜택의 정도에 따라, 즉 부의 정도에 따라 점진적으로 세금을 인상하는 누진세율 제도를 선호할 것이다.

 

3. 오세훈과 정동영

 

무상급식 제도의 이슈화는 이런 맥락에서 보면 보편적 복지관이 한 단계 우리 사회에 더 확산되는 경향을 대표하고 있다. <이건희의 손자들에게도 다른 가난한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학교에서는 똑같이 나라가 제공해 주는 밥을 먹을 권리가 있다>는 인식, 복지 제도가 가난한 사람들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의 기본적인 삶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정착이 되면, 보편적 복지관에 내포된 사회적인 연대성의 확인이 얼마든지 다른 형태로라든 열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예컨대 예술인 보호법 같이 사회적으로 부당한 처우를 받는 예술 문화 종사자들에게 국가가 기본적인 생계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명분도 생기게 된다. 오세훈의 경우에 전면 무상급식 반대에 관한 오세훈의 논리가 일면적으로는 설득력이 있으면서도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오세훈의 복지관이 근본적으로 보편적 복지관이 아닌 필요적 복지관에 기초한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전면 무상급식 할 수 있는 돈으로, 다른 긴급한 곳에 돌려서 쓰자>는 논리는, 두 가지 전제를 먼저 가정 해야지 설득력이 있다. , 1) 교육 재정의 규모가 서울시 예산에서 확정적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다른 곳에서 예산을 충원할 수 없고, 2) 교육 정책에서 무상 급식 같은 보편적 복지 차원의 정책보다 다른 정책들이 더 우선순위가 있을 것. 일년에 수백 억에 달한다는 서울시 홍보 예산이 왜 무상 급식 예산보다 더 우선 순위가 책정이 되어야 하는지 필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필요적 복지관의 근간을 이루는 연대성은 가진 자와 못 가진자의 구분에 기초한 시혜적인 연대성이다. 이것은 보편적인 복지관이 전제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 구성원들간의 호혜적인 연대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필자가 민노당이 주장하고 정동영이 받아들인 부유세 도입에 회의적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기묘하지만, <이건희 손자같은 부자집 자녀들에게 왜 학교에서 공짜밥을 줘야돼?> 라는 인식과, <당신이 10억 넘는 부자니까 부유세를 내는 것은 당연해> 라는 인식은, 그것이 <복지는 기본적으로 가진 자가 못 가진자에게 베푸는 시혜> 라는 인식이라는 점에서 서로 닮아있다. 이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그만큼 가진자와 못 가진자로 나뉘어져서 서로를 질시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현실의 반영이자, 그만큼 우리 사회의 연대성이 건강하게 자리 잡혀 있지 않다는 반증인 것이다.

 

4. 복지의 범위와 유시민의 선별적 복지관

 

무상급식, 무상 보육, 반값 등록금, 그리고 무상 의료..  국가가 시행할 수 있는 복지 정책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그리고 그 한계는 어디에 있을까? 역사적인 경험을 살펴보면,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유명한 구호 아래에서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복지 프로그램을 시행했던 스웨덴을 위시한 사민주의 국가들로부터 공공의료 보험 체계가 부실하여 영화 식코에서 나오는 것 같은 사례를 양산했던 최강대국 미국의 경우까지, 복지제도를 둘러싼 각 나라들의 경험은 너무나 다양하다. 복지 제도의 근본 취지가 그 사회의 구성원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준선을 사회적으로 설정하는데 있다면, 사민주의 국가들처럼 그 기준선을 높게 잡을 수도 있고, 자유지상주의적인 미국의 경우에서처럼 국가적인 배려의 정도를 낮게 잡을 수도 있다. 진부한 진리는 각 국가의 역사적인 경험과 현재 감당할 수 있는 재정 수준에 맞게 복지의 범위를 책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선별적 복지관이다. 선별적 복지 정책은 보편적인 복지관을 기본 바탕으로 하되, 한 국가가 처한 경제 수준에 따라 사안적으로 복지 제도를 구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기본 취지이다. 

    

 무상 급식, 무상 보육, 반값 등록금과 무상 의료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서 도입할 경우 장점은 보편적인 복지관이 현재까지 우리 사회에 지배적이었던 필요적 복지관을 대체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의료 서비스와 고등 교육 서비스가 준공공재화 되어서 지금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정책 입안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 정책들을 실현할 재정조달 방법과 정책이 도입되었을 때의 부작용과 국민들이 그 제도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나라의 근간을 바꾸는 제도를 도입할 때에는 그에 따른 현실 적합성과 제도의 도입을 통해 끼치는 장기적인 영향을 먼저 고려해 봐야 한다.

 

유시민은 이 지점에서 지극히 조심스럽다. 그는 극히 원론적인 이야기만 할 뿐이다. 그는 복지 제도의 경우에는 <사안별로 접근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말한다. 무상 의료의 경우에도 무턱대고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상 의료를 도입했을 때, 국민들이 그 정도의 의료보험료를 부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묻는다. 유시민 강연에서 인상 깊은 대목은 이 지점에서 그가 팩트만 던져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 팩트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별론으로 하고, 유시민에 따르면 현재 GDP 대비 건강 보험료가 우리 나라는 5퍼센트 인데 반해, 무상 의료에 가까운 제도를 실현시키고 있는 나라들의 경우 그 비중이 적게는 11프로에서 많게는 15프로 이상이 된다. 유시민의 계산법에 의하면 현재 수준에서 무상 의료를 도입하려면 지금보다 건강 보험료를 4배 이상 더 내야 한다고 한다. 유시민의 경제학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고 필자도 경제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의료 서비스는 가격 탄력성이 높아서 가격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그 수요가 더 급속히 증가한다는 것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 필자라도 모든 의료 서비스가 공짜라면 평소에는 안가던 건강 검진도 이곳 저곳 해보고 싶고, 작은 감기에도 병원에 가보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료 서비스를 국가가 완전히 감당하는 것이 좋을 지 아니면 현행 의료 보험 제도를 유지, 발전시켜나가면서 난치병, 불치병등을 중심으로 무상 의료 서비스 혜택을 선별적으로 점차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좋을지는 필자가 보기에는 고도의 정책적인 판단이 필요한 문제다. 의료보험 제도의 경우에는 아무리 많이 가진자의 부담이 더 가중된다고 하더라도, 서민의 입장에서도 의료 보험료가 4배 가까이 인상된다면 건강해서 병원에 거의 안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예컨대 건강해서 병원에 거의 안가면서도 한달에 10만원씩의 의료보험료를 꼬박꼬박 내던 사람이

무상 의료 제도가 도입되면서 의료 보험료가 40만원으로 인상이 되면 어떻게 생각할까? 자기는 병원에 잘 가지고 않는데 이런 식의 높은 보험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불합리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혹은, 증가한 의료 보험료 때문에라도 앞으로는 병원에 더 자주 들리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의료 비용이 증가한다면, 이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국가가 조성해야 할 재정 규모는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보편적 복지를 정책 기조의 근간으로 하고, 무상 급식과 반값 등록금은 가급적 빨리 도입하되, 무상 보육과 무상 의료는 더 논의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보편적 복지를 근간으로 하되, 복지의 범위에 대해서는 사안별로 접근할 것>. 필자의 생각과 유시민의 생각은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평소에 증오하는 사람의 언행이라 할지라도, 정책에 관한 토론의 경우엔 그 사람의 생각을 잘 들어보고 섣불리 예단하지 말 것. 그 사람의 전체적인 생각의 구조를 분명히 파악하려고 노력할 것. 좋은 토론의 기본이다. 요즘에 아크로에서 이 기본이 망각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