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가 근본주의자라는 말을 쓸 때는, 성경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기독교 신앙인 일반을 지칭하는 의미로 쓴 겁니다. 20세기 초 자유주의자들과의 논쟁에서 근본주의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배경도 그런 신앙관에 입각해 있는 이들을 지칭하기 위해 쓰인 거고요. 

그럼 복음주의자는? 이분들의 생각은 근본주의자들과 크게 다를까요? 아니죠. 성경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신앙관에 있어서는 근본주의자들과 똑같습니다. 다만 성경 자구에 오류 정도는 있을 수 있다고 쿨하게 인정하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그 오류가 있다고 해서 계시의 사실성이 부인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아가 성경 말씀은 단순한 사실 차원을 넘어 인간을 구원의 길로 이끄는 유일무이한 방책이라고 믿는 점에서는 결국 근본주의자들과 똑같은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근본주의자와 복음주의자가 과연 뭐가 다른 것이냐는 게 제 질문이었지요.(=그래서 교회현실 안에서는 애초에 구분불가능하다는 지적도 했었고요)

근데 아침님은 근본주의자라는 말을 제가 정의한 의미로 받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과잉"으로 인해 독선적인 아집이나 배타적인 공격성을 드러내는 일부 신자들의 "태도 문제"로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아니라는 말만 하고 있지요.

그래서 저는 성경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의 사실"로 보는 신앙관(=기독교 신앙의 본질) 자체가 독선적인 아집이나 배타적인 공격성을 부추기는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는 말을, 실제 그런 행태를 부추기는 신약복음서 전반의 분위기와 함께 언급했던 겁니다. 곧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태도가 성경적인 진리와 무관한 일부 근본주의자들의 편협한 신앙관 때문이라고 치면, 오직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복음의 유일무이성을 증거하다가 순교한 베드로, 바울 및 수많은 신앙의 위인들 역시 죄다 근본주의자가 된다는 소리죠. 얼마나 시대와 소통을 못하고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로 일관했으면 당대의 사람들이 그들을 죽이기 까지 했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은 그런 진리에 대한 비타협적인 태도를 신앙의 기본조건으로 요구하고 있으니 여기에 대해 아침님은 뭐라고 코멘트 할 것인가를 물은 겁니다.(=그러니 대답은 없고 도킨스니 뭐니 하며 엉뚱한 얘기를 끌고 오셨지요?)

그리고 제가 B그룹(피터힉스 그룹)을 지지한다고 한 것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의 사실로 보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신앙관을 견지한 이들이 복음의 유일무이성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 순수한 "믿음 자체"를 탄압하거나 핍박해서는 안되고(=그 믿음이 과해서 불상과 같은 기물이나 공공재를 파손한다면 실정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거겠지만)나아가 그런 신앙때문에 비신자들에게 차별을 당하거나 일신의 위협이나 위해를 당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얘기를 한 겁니다. 그게 현대사회가 헌법적 가치로 보장하는 신앙의 자유의 본래적 의미일 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차원이 아닌, 공론장에서 그 믿음의 내용을 가지고 과학(및 기타 신앙에 반하는 학문적 연구들)을 핍박하거나 탄압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은 비난받아야 함이 마땅한 거고, 자신들의 신앙적 독단에 대해 당연한 반론이 가해지고 있는 것을 마치 신앙 자체를 박해한다는 의미로 오바해서 받아들이는 것 역시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의 소통방식이 그런 식이 된다면 결국에는 도킨스류의 무신론적 근본주의자들도 생겨날 수 밖에 없는 거겠죠.

2. 

기독교와 과학혁명에 대한 얘기는, 간단하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서양이 동양에 비해서 우월한 위치를 점한 것은 제국주의 시대가 개막되고 동양의 거의 모든 나라가 서양의 식민지 혹은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하면서 부터죠. 그러니 19세기 이후 현저하게 드러난 동서양의 힘의 불균형을 두고, 그 원인을 서양의 정신문화가 근원하고 있는 그리스 고전이나 기독교 신앙에서 찾거나 그로부터 만개한 과학혁명이나 정치혁명 등에서 찾고, 이 모두를 서세동점의 19세기적 현실을 태동시킨 서양에 고유한 역사적인 여건들로 파악하는 거죠. 그러니 서양의 문명적 우위는, 그리스 고전이나 기독교 신앙의 오랜 정신문화 속에 이미 예견되어 있었고(=부지불식간의 흐강님식 생각), 그러니 그것이 싹튀워져 나타난 19세기 이후의 현실은 당연한 결과였다는 유럽편향주의적 역사해석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것인데..

뭔가 제 반론의 지점이 잘 못 전달된 것 처럼 느껴져 일단 이렇게 한 줄 더 남기고, 그에 대한 여러 의견들을 듣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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