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단일화 전술은 지속 가능한가?
총선과 대선이 순차적으로 치러지는 2012년 선거의 해를 앞두고, 정치권이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일년동안 누가 더 준비를 잘하느냐에 따라 정권의 향방이 결정이 되겠죠. 아직까지 야권은 내년에도 지난 지자체 선거에서 재미를 본 단일화전술로 임하겠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유권자 입장에서 단일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피곤한 것입니다. 저쪽은 일찌감치 대표선수 뽑아놓고 트레이닝 들어갔는데, 이쪽은 경기 막판까지 누가 출전할까를 놓고 게임을 벌이는 모습은 서포터들에게는 짜증 백만배인 상황인거죠. 
 
한두번쯤이야 신선하다면서 박수를 쳐 줄수도 있지만, 매번 선거때마다 지겨운 과정을 반복하겠다면 언제까지 저럴거냐는 비판이 거세질 것입니다. 아마도 내년 총선때는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감이 절정에 이를테고, 하릴없어 보이는 단일화과정에 대한 짜증과 분노가 비례해서 상승할 것이라 예상합니다. 살기도 팍팍한데, 무슨 토너먼트 스포츠도 아니고 정치인들의 서바이벌 게임까지 지켜봐야 하는 것은 정신적 고문과 다를바 없는 것입니다.
 
도대체 후보의 단일화는 가능한데 정당을 합치는건 불가능하다는 모순적인 논리를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상시적인 연립정부구성이 가능한 의원내각제도 아니고 최다득표 승자독식제를 실시하는 한국에서 말이죠. 때문에 현재와 같은 단일화전술은 지속가능하지도 않고, 진보개혁진영의 나태함 무능함 비효율의 상징처럼 되어 조만간 파탄이 날 것이라 예상합니다. 결국 진보개혁진영 정당들은 각개약진하며 지난 2007년 대선과 총선의 재방송을 틀 것인가 아니면 단일한 정당으로 합칠 것인가의 기로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상황이 조만간 닥칠 것입니다.
 
2. 진보개혁진영 분열의 씨앗, 호남의 정체성
우선 진보개혁진영이 현재와 같은 분열상을 노출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를 살펴야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호남의 유권자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에 대한 견해 차이로 갈라져 있는거죠. 호남인들을 수구 + 영남기득권 세력에 대항하는 특별하고 각성된 유권자층으로 파악하느냐 아니면 그저 지역적 행정적으로 구분되어 있을 뿐인 장삼이사들이 집합인가의 입장 차이입니다. 민주당은 전자이고, 민노당과 참여당 진보신당같은 정당 (이하 꼬꼬마정당)들은 후자입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같은 맑스주의 정당들이야 당연히 계급적 분석에 기반한 정세 분석을 해야 하므로 호남은 그저 행정기호에 불과할 뿐이라는 입장에 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참여당은 좀 특이한 케이스인데, 맑스주의 정당도 아니면서 정세 분석틀만은 계급적 분석에 의존합니다. 과거 맑스주의에 경도되었다가 전향한 지도그룹의 사상적 경향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호남은 행정기호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계급적 지향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유권자집단입니다. 즉 지역적으로는 호남이고, 계급적으로는 노동자 농민 영세자영업의 분명한 계급적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역성과 계급성을 동시에 중첩적으로 갖고 있는 유권자들의 어느 한 측면에만 주목하다보니, 계급성을 무시하는 민주당과 지역성을 무시하는 꼬꼬마 정당들 모두 정치적 오류를 범하면서 분열될 수 밖에 없습니다. 호남에 유리한 정책은 하층계급에 유리하고, 하층계급에 유리한 것은 호남에도 유리한, 동전의 양면같은 정치적 동일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 87년 대선 당시 대규모 군중 유세가 여의도에서 벌어질 때 우스갯소리처럼 유행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김대중이 유세할 때는 영등포에서 여의도로 건너오는 다리가 인산인해였고, 노태우가 유세할 때는 마포대교가 인산인해였다는거죠. 당시는 아직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이라서 부자들은 마포 종로 용산 등지의 개발된 주택가에서 살았고, 빈민들은 영등포 구로 관악 등지의 달동네에서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도심빈민들의 상당수가 바로 김대중을 지지하는 호남인들이었고, 그래서 김대중 유세 당시 지지자들의 주요 동선이 영등포에서 여의도로 넘어가는 다리가 된 것이죠.
 
여기서 중요한 관찰포인트가 있습니다. 동향의 김대중을 지지하느라 호남인들이 수구+영남기득권에 반대하는 성향을 갖게 된 것인가 아니면 호남인들의 계급적 성격이 보다 진보적인 정치노선을 표방하던 김대중을 선택한 것이냐라는 것입니다. 저는 당연히 후자라고 봅니다. 만약 전자라면 비슷한 호남출신 유력 정치인이었던 이철승이 철저하게 몰락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겠죠. 또한 호남인들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선택하면서 구 민주당을 버렸던 것 역시 설명하지 못합니다. 즉 호남의 지역성과 계급성을 동시에 관찰하지 않으면, 매 시기 호남인들의 선택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사실 자유선진당이 충청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계급 투표에 의해 선택받지 못한, 철저히 지역 이기주의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호남의 정치적 정체성이 그렇다면, 진보개혁진영의 제 정당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는 명확해집니다. 민주당은 호남인들의 계급성을 보다 더 반영하고, 꼬꼬마정당들은 호남인들의 지역성에 내포된 역사적 맥락을 더 많이 반영하면 될 일 입니다. 그러면서 서로간에 근본적인 입장차이가 해소되어 비슷해지면, 노선 차이도 줄어들 것이고, 이후의 과정은 자명할 것입니다.  
 
3. 새로운 민주당은 진보 + 호남 연합을 기반으로 하는 사민주의 정당이 되어야한다.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의 정치인들이 입버릇처럼 자주 하는 말이, 한국은 유럽과 다르게 조직화되고 연대의식으로 뭉친 노동자계급이 없어서 자신들이 힘들다라는 소리를 합니다. 민주당이 지역주의라는 허위의식을 호남인들에게 주입하는 바람에 더 그렇다는 말도 하지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유럽에 조직화된 노동자층이 있었다면, 한국은 막강한 호남인들이 있습니다. 냉전과 분단, 패권적 지역주의, 군사독재를 거친 한국적 현실때문에 호남인 연대라는 기묘한 형태의 정치적 집단이 형성되었지만, 그 근본적 성격은 유럽의 노동자층과 한국의 호남인들이 서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쩌면 맨땅에 헤딩하며 시작했던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들보다 더 유리한 유권지 지형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무상급식이나 보편적 복지 이슈에 호남이 아주 쉽게 지지를 보내고. 타 지역의 기층민중들이 민감하게 호응하는 모습은 향후 민주당의 지향점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입니다.
 
제목으로 돌아가서, 저는 민주당이 업그레이드 되어서 기타 꼬꼬마 정당들의 지지층을 흡수하는 방향이 올바르다고 봅니다. 당연히 민노당 진보신당 참여당은 해산하고 민주당으로 들어와야 하겠죠. 기존의 민주당 세력은 호남의 지역성을 대변하고, 꼬꼬마정당들은 당내에서 전체 민중들의 계급성을 대변하며 경쟁하는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민주당이 꼬꼬마정당들과 합쳐 진보 + 호남 연합을 기반으로 한 사민주의 정당으로 거듭나는 것만이 현재의 진보개혁진영앞에 놓인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30% 근방에서 고정되고, 기타 꼬꼬마 정당들의 지지율이 합산해서 10%쯤에서 맴도는 것은 진보개혁진영의 유권자들이 무엇을 지향하고 요구하고 있는지 의미심장하게 드러내고 있다 할 것입니다.
 
최근 진보개혁진영내 가장 우파라 할 수 있는 정동영이 파격적인 복지 정책들을 내놓고, 박근혜마저 복지를 전면에 내세우는 등 한국의 정치 지형이 근본적인 변화의 길목에 서있습니다. 한나라당에 복지 아젠다마저 내주고 다시 5년을 야당으로 지낼 것인가 아니면 한국의 정치가 업그레이드되어 새로운 국가로 거듭나는가는 오로지 진보개혁진영 내부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PS) 어제 유시민이 보편적 복지는 선거용 구호라는 뻘소리를 했더군요. 모든 것을 다 떠나 분열주의 기생정치로 연명하는 정치인들은 이제 더 이상 정치판에서 사라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