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PiedPiper 님의 리플로부터 핵심적인 지식을 취했음을 미러 일러둡니다



  관계론은 용어 ‘정(情)’을 어떻게 다루는가 

甲 : 나 더 이상 그 남자 만나고 싶지 않아
  乙 : 잘됐어 이년아 이참에 다른 남자 만나도 보는 거야
  甲 : 아니 근데 그렇다고 헤어지고 싶지도 않아
  乙 : 이년 또 시작이네 야 몰라 또 그 놈의 ‘정(情)’ 타령 늘어놓기만 해봐


  모든 목적은 그 목적을 ‘가치’으로 삼아낼 수 있는 그     위의 상위 목적에 대해서, 하위 가치으로 기능해낼 수 있다.
  모든 가치는 그 가치를 ‘목적’으로 삼아낼 수 있는 그 아래의 하위 가치에 대해서, 상위 목적으로 기능해낼 수 있다.

  상위 목적 A의 하위 가치 a는 그 목적 A의 ‘장래 지속 가능성’을, 누구에게나도 ‘객관화/피드백’된 검증/사정/평가하는데 있어 그 잣대로서
 소위, ‘가치판단’이 발하는 실효의 전부다. 이로운 가치를 부생(이하 부산 + 파생)시키는 그 ‘목적’은 선(善)으로서 그 자체로 장래 지속
 가능성이 충분하다. 더 이로운 가치를 더 부생시키는 그 목적은 더 선함으로서 그 자체로 더 오랜 장래 지속 가능성이 더 충분하다. 더
 선한 목적을 추구하는 인간(주체)은 더 부생된 더 이로운 가치 덕에 더 오랜 장래 지속 가능성을 누려낼 수 있다.



  한편 하위 가치들 중, 상위 목적 달성에 최근접하게 그 상위 목적 달성을 지원, 지지하는 제 1의 그 하위 가치를 가리켜 ‘최선의 가치’이라
 하는 바이다. 이른바 지식 체계의 구축을 그 상위 목적으로 하는데 있어 ‘합리(객관)’은 하위 가치들 중 ‘최선의 가치’이자 동시에,
 cosmopolitanism(세계주의, 사해 동포주의)은 상기 ‘합리(객관)’를 그 상위 목적으로 하는 하위 가치들 중 ‘최선의 가치’인 바이다.

  이때 그 놈의 ‘정(情)’은 상기 그 남자에 대한 甲의 우유부단함 즉, 그 남자에 대한 미완성의 ‘우연’을 완성의 ’필연‘이라 성급히/조급히
 정당화하려는 목적에 대해 ’최선의 가치‘인 바이다. 그 남자에 대한 미완성의 목마름을 이로우면 이로우지 해로울 것 하나없는 ’정(情)‘이란
 ’최선의 가치‘를 통해 그 남자에 대한 완성의 갈증해소에 최근접하게 지원, 지지될 수 있는 바이다.



  관계론은 용어 ‘효용, 효율’을 어떻게 다루는가

  이렇듯 상위 목적 간에는 우열이 없으나 하위 가치 간에는 우열이 있다. 즉, 어떠한 상위 목적을 추구하느냐 귀천은 없는바 그 상위 목적
 달성 과정 중에 우연히 부생되는 하위 가치들 간에는 귀천이 있는 바이다. 그리고 그 하위 가치들 간 귀천에 대한 객관화/피드백을 가능케
 하는 또는, 검증/사정/평가를 실현해내는 규격, 수치 따위를 가리켜 상위 목적에 대한 ‘하위 가치의 효용, 하위 가치의 효율’이라 하는 바이다.
 마침내 상위 목적에 대한 하위 가치를 자발적으로 거론함은 누구에게나도 ‘객관화/피드백’의 의사표시로 인식하여도 족히 무방한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