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캐스트에 크림전쟁이 올라와서 읽다가 뭐 이런 '살아있는 개그'가 있나 싶어 퍼왔습니다

글쓴이 함규진씨가 맛깔스럽게 쓴것도 있는데 하여튼 상황자체도 매우 개그스럽네요

'못말리는 람보'가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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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의 성패는 세바스토폴에서부터 크림 반도 남단을 가로지르는 보론조프 도로, 그 중간에 발라클라바로 가는 지점에 해당되는 코즈웨이 고지 부분을 원정군이 막아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원정군은 그 고지에 여섯 곳의 요새를 지어 방어 중이었다. 그런데 1854년 10월 25일 아침에 시작된 1만 명 가량의 러시아군 선제공격에 그 중 네 곳이 맥없이 점령당해버렸다. 총사령관인 영국의 래글런 경(Lord Raglan)이 적의 공격을 ‘페인트’라고 판단하고는, 고작 천 명의 튀르크군만이 맡고 있던 요새 수비 병력을 보강하지 않고 두었기 때문이었다. 튀르크군은 일방적인 살육을 견디지 못하고 달아나버렸으며, 코즈웨이 고지대 전체가 러시아군에게 넘어가는 일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래글런의 다음 명령은 그런 전망을 가중시켰다. 기병대에게 현 위치에서 벗어나 동쪽의 아직 점령되지 않은 요새들의 수비를 “보강”하라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다시 말해서 보론조프 도로를 횡단하여 곧바로 발라클라바로 들이닥칠 수 있도록 러시아군에게 문을 활짝 열어두라는 소리였고, 기병대가 그렇게 움직인다면 따로 명령을 받지 않은 550명의 하이랜더(스코틀랜드인) 연대를 1만의 적의 목구멍에 던져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기병대 사령관 루컨 경(Lord Lucan)은 ‘이런 거지 같은 명령이 어디 있나’고 욕지거리를 뱉었으나, ‘명령은 명령이니까’ 하며 곧바로 그대로 자리를 떠나버렸다.

이 천재일우의 기회에 러시아군이 정찰대만 보냈다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전열을 정비해서 단숨에 보론조프 도로를 넘었겠지만, 그들은 그저 네 곳의 요새를 점령했으니 또 다음 요새를 차지하자는 생각만 가지고, 남겨진 하이랜더들 앞으로 천천히 접근해왔다. 그때, 죽음을 각오한 하이랜더들은 믿기 힘든 용맹함을 보여주었다. 달아나거나 바짝 엎드려 있는 대신, 일제히 전진하여 하나의 횡대를 이루고 미친 듯이 사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예상보다 쉽게 요새들을 점령한 덕에 여유만만하게 진군하던 러시아군은 당황했고, 붉은 제복의 하이랜더들이 선두의 아군 기병대를 쓸어버린 다음 총검을 잡고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것을 보자, 그만 겁에 질려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하이랜더들 뒤에 적 병력이 얼마나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하나도 없었는데도!) 후퇴만이 답이라 여겼던 것이다. 하이랜더들은 “씬 레드 라인(Thin Red Line, 붉은 군복 차림으로 소수 병력이 횡대를 이룬 모양에서)”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사에서 손꼽을 만한 용맹한 전사들로 길이 기억되어, 약 백 년 뒤 태평양전쟁 상황에서도 재현된다.


래글런의 재앙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동쪽의 요새로 가서 고전하고 있는 튀르크군을 도우라고 중기병대에게 명령한 것인데, ‘고전하고 있는 튀르크군’은 그때 이미 발라클라바 근처까지 도망가 있었다. 그 명령을 그대로 수행하려면 적군이 구름처럼 모여 있는 고지로 치고 올라가야 했는데, 중기병대를 이끌던 스칼렛(James Scarlett) 장군은 역시 묵묵히 ‘거지 같은 명령’을 받아들였다. 오전 아홉 시 반, 씬 레드 라인이 스무 배나 많은 러시아군을 격퇴시킨 직후, 스칼렛도 부하들의 선두에 서서 칼을 휘두르며 적진으로 돌진했다.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식으로 베고 부딪치고 쏘고 들이받으며 밀어붙이자, 11시경부터 러시아군은 지리멸렬해서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때 카디건(Cardigan)이 이끌던 경기병대까지 합류해서 공격했다면 러시아군은 치명타를 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팔짱만 끼고 있었다. “경기병대는 적이 공격해오지 않는 한 자리를 지켜라”는, 마치 래글런만 거지 같은 명령을 내릴 특권이 있는 게 아니라는 듯한 루컨의 명령 때문이었다.

래글런도 질 수 없었다. 루컨에게 보낸 그의 세 번째 명령은 “여세를 몰아 적을 공격하여 요새들을 탈환하라. 지원할 보병대가 있다”였는데, 받아쓰는 과정에서 오탈자가 생기면서 “여세를 몰아 적을 공격하여 요새들을 탈환하라. 지원할 보병대가 있다면”처럼 되어 버렸다. 루컨이 주위를 아무리 돌아봐도 보병대라고는 없었고, 따라서 적군이 요새로 돌아가 전열을 정비할 때까지 넋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그날의 마지막 코미디가 나왔다. 하이랜더와 중기병대의 분전으로 러시아군은 코스웨이 동쪽의 요새 점령 병력과 북서쪽의 멘시코프 본진으로 분단되어 있었다(그 분전이 없었더라면, 또는 러시아군이 좀 더 상황 파악이 빨랐다면 두 병력이 합세하여 원정군을 쉽게 쓸어버렸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서야 전장 가까이에 납신(그때까지는 한참이나 떨어진 본부에서 지도나 보며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래글런이 마침 점령된 코스웨이 요새의 영국군 대포들을 러시아군이 옮기는 것을 보고는 “저들이 나의 대포를 가져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즉각 전진하여 저지하라”고 지시했다. 그 명령을 전할 전령은 레슬리(Leslie) 대위와 놀란(Nolan) 대위였다. 이들이 말을 달려 경기병대 본부에 있는 루컨에게 그 명령을 전했을 때, 루컨은 대포라니 무슨 대포를 말하는 거냐고 반문했다. 그의 위치상 시야에 들어오는 대포는 래글런이 말한 코스웨이의 영국군 대포가 아니라 북서쪽 러시아군 본진의 대포였던 것이다. 놀란은 말귀를 못 알아듣는 루컨에게 그만 화가 나서 “저거요! 저 대포들 말입니다!”라고 러시아군 대포들을 가리키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야말로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 같은 명령, “적의 사격 연습을 위해 총알받이 노릇을 해라!”는 것과 마찬가지의 명령인 셈이었다. 본진의 러시아군은 3만이 넘었고,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50문이 넘는 대포를 겨누고 있었다. 이에 맞서 루컨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천 명도 안 되었다. 루컨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역시, 명령은 명령이니까! 카디건의 경기병대에게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테르모필레의 300 스파르타군도 이보다는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싸웠다고 할 수 있을 터. 그래도 영국군 병사들은 수십 배나 되는 적군과 싸우려고 질서정연하게 전진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프랑스군의 보스케(Bosquet) 장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장엄한 광경이군. 하지만 이런 건 전쟁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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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희극으로 받아들일수있는 현재를 다행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