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컴의 면도날을 언급하신 유물론자 오마담님의 댓글을 보면서,

무신론자, 유물론자이면서 가끔이나마 존재의 경이로움, 신비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런 사람이 대부분의 유신론자들보다 神을 더 잘 이해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신론자들은 신에 대한, 신과 관련된, 종교와 관련된 수많은 관념들과 미신들에 빠질 가능성이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神에 대한 온갖 관념들과 이미지들을 가지고 있지만,

신은 그런 어떤 것이 아니라, 그런 관념이나 이미지, 그것들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관념들과 이미지들 밖에 있는, 존재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존재 자체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기독교에서도 신은 존재 자체라는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신을 존재 자체로 이해한다면 인식이 완전히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존재 자체에는 어떤 관념도, 이미지도 붙을 수가 없습니다.

존재 자체는 어떤 분리도 없습니다.

존재 안에는 수없이 다양한 모습들이 있지만,

실상은 나와 너도 없고, 이것과 저것도 없습니다. 그런 구분이 없습니다.

[그런 구분은 관념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오직 존재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하나이면서 모든 것으로...

 

신은 존재 자체이면서 존재의 근원인지도 모릅니다.

존재도 비존재도 아닌 근원.

신이라는 관념조차 붙을 자리가 없는 존재이자 존재의 근원.

 

 

2.

단순하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만약 신이 사랑이며, 조건이 없는 사랑이라면,

그 사랑에는 "어떤 조건도 전혀 없는" 완전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만약 신이 용서하는 신이라면,

신은 어떤 조건도 없이 용서하는 완전한 용서여야 합니다.

 

만약 신이 모든 걸 용서하는 신이라면,

신은 죄에 대해 벌을 주는, 심판하는 신일 수가 없습니다.

 

그보다 먼저, 신은 "선악을 판단하지 않는" 신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에덴동산의 선악과 비유는

아담이 선과 악을 분별하게 되면서,

[나와 너를, 나와 세상을, 이것과 저것을,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하게 되면서]

신과 분리되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신에게는 분별이, 판단이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분별이, 판단이 신에게서 분리되는 '유일한' 조건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래서 신은 무엇보다도 판단하지 않는, 분별하지 않는 신이어야 합니다.

죄를 판단하지 않는, 죄를 심판하지 않는 신이어야 합니다.

완전히 있는 그대로 허용하는 신이어야 합니다.

 

그럴 때 사랑의 신, 용서하는 신, 에덴동산의 신은 완전하게 하나가 됩니다.

 

사랑하면서 용서하지 않는 신,

용서하면서 죄를 벌하는 신,

죄를 벌하면서 사랑하는 신,

 

이런 신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런 신이 성립할 수 있을까요?

 

 

3.

신은 무한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신이 무한하다면, 신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합니다.

만약 어떤 식으로든 신 바깥에, 신과 별개로, 신과 분리되어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면,

신은 무한한 존재가 아니라 유한한 존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신이 무한하다면, 신은 전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신이 전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